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이다. 《편지 가게 글월》로 따뜻한 감성을 보여줬던 백승연 작가가 이번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돌아왔다. 신작 《합리적 가정》은 ‘완벽한 가정’이라는 가장 밝은 환상 뒤에 숨은 욕망과 질투, 집착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심리 치정 스릴러다.
오랫동안 무명 소설가였던 남편을 대신해 가장의 무게를 견뎌온 희진은 남편 호재의 자전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마침내 꿈꾸던 삶을 얻는다. 고급 주택단지로 이사하고 완성된 가정의 행복을 누리던 어느 날, 그 소설의 실존 모델이 바로 옆집 여자 유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모든 균열이 시작된다. 한 울타리를 공유하는 두 가정은 겉보기에는 평온하지만, 그 안쪽에서는 성공·사랑·명예·안정이라는 이름의 욕망이 조용히 스며들며 서로를 흔들어 놓는다.
너무나 익숙한 어른들의 욕망을 보는 듯해 페이지를 넘기는 손에 스스로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네 인물 모두 각자의 결핍을 안고 흔들리며, 그 결핍이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도, 혹은 우리 안에서도 조용히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희진이 끝까지 붙들고 있던 ‘완벽한 가정’이라는 꿈은 사실 우리 모두가 마음 어딘가에 숨겨둔 작은 환상일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모서리가 있고, 사람들 역시 누구나 긁힌 면을 품고 살아가는데도 우리는 자꾸 빛나는 부분만 내보이며 괜찮은 척하려 한다.
불쾌하고 서늘하며, 때로는 측은하게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이 작품은 단순히 자극을 위한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애써 외면하고 지나쳤던 인간의 본심을 기묘하게 비틀어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의 흡인력도 강했지만, 그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쉽게 뒤틀릴 수 있는지를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욕망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잠재된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잔혹하지만 끝내 매혹적인 심리 스릴러를 찾는 독자에게 이 작품을 강력히 추천한다. 평범한 가정이라는 틀 속에 감춰진 인간의 민낯이 어떻게 일그러질 수 있는지 보고 싶다면, 《합리적 가정》은 그 욕망을 충분히 채워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자전소설. 눈이 점점 안 보이는 상황이 얼마나 좌절스러웠을지, 마음이 절절하게 흘러넘쳤다. 에세이를 먼저 읽고 이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더 짠하게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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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캄캄한 눈으로 세상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내놓겠다고 다짐한다.
(에세이 ‘소설가가 되었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