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챌린지 26일차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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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는 생각했다. 그렇다, 세상의 무관심에도 계속되었지만 대장정은 신경질적이고 과민해졌다. 어제는 미국의 베트남 점령에 반대하며, 오늘은 베트남의 캄보디어 점령에 반대하며, 어제는 이스라엘을 위해, 오늘은 팔에스타인을 위해, 어제는 쿠바를 위해, 내일은 쿠바에 반대하며, 항상 미국에 대항하며, 매번 학살에 반대하며, 또한 매번 다른 학살을 지지하면서 유럽은 행진을 계속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라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글귀이다. 본인의 상황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싶다.
쿠바 관타나모에 위치한 미군 기지에는 수용소가 있다.
미국의 영토이지만 21세기 현재에도 인권과 법이 없는 곳. 미국의 인권법이 닿지 않는, 미군들의 대테러작전을 앞세운 고문이 난무하는 곳.
이야기의 주인공인 무함마드 엘-고라니는 공부하러 파키스탄에 갔다가 두 달 만에 9.11 테러가 발생하고, 사우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인들에게 끌려가 감옥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있는 곳을 말하라며 고문을 당한다. 그의 나이가 겨우 13세였을 때의 일이다.
2008년 무죄가 입증되어 석방되었으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 이웃들의 배척, 사기, 계속되는 정부의 감시 때문에 일상을 지켜나가기 힘든 무함마드 엘-고라니.
표지에서 밝게 웃고 있는 주인공은 관타나모에서 석방될 때의 모습이기도 하도, 평소 무례한 간수들을 골탕먹이는 유쾌한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일담에서 석방 이후 계속되는 고난 때문에 기운 없이 늘어져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은 매우 서글프다.
작가가 주인공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것은 2017년, 책이 출간된 것은 한 해 뒤인 2018년,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것은 2024년. 현재 무함마드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파는 자를 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신념과 목숨을 바꾼 사내를 대면할 때면 온몸이 전율하고 만다. 그 이의 용기가 읽는 이의 가슴에 공명하기 때문이다. 용기라는 건 그렇게나 귀하고 대단한 것이다.
체 게바라는 누구보다 독립성이 투철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더불어 그 독립성과 용기를 헛되이 하지 않을 만한 정열을 품은 인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말로가 비참했음에도 체 게바라는 자유를 사랑하는 전 세계 많은 이들로부터 무한한 호의를 받는 자유주의자다.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에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체의 얼굴이 새겨진 깃발을 흔드는 건 흔한 일이고, 자본주의 상징인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체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공산주의자인 체는 죽었지만 자유주의자인 체는 여전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도 미워했던 미 제국주의는 냉전을 거쳐 세계의 유례없는 패권국가로 군림하고 있다. 혁명의 땅 쿠바는 가난에 짓눌려 혁명가의 자손마저 타이어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실정이다. 혁명은 결국 실패했고 공산주의는 패망했으며 자유주의는 자유를 존중하지 않던 이들의 무기가 되고 말았다.
누구보다 용감했던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어쩌면 그저 혁명가일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한계를 지닌 혁명, 실패하고 짓밟힐 밖에 없는 혁명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