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내용에 들어가기 전 추천사에서 번역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던지는 저자의 견해는 가독성만이 무조건 좋다는 본인의 머리를 한 대 때린 것 같았다. 가독성에 치중한 의역이 자칫 정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성과 가독성 이 둘의 세력 싸움은 번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상 영원할지니.
● 책에서 하도 많이 봐서 기억에 남는 표현으로는 ‘무장을 벗기다’ ‘신과 같은’ ‘아레스와 같은’ 등등이 있다.
●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세발솥’이다. 세발솥이 어떤 존재길래 주요 재물로써 언급되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구글 검색을 통해 세발솥이 왜 중요했는지 AI가 명료히 알려주었고, 그 사실을 공유차 본 글에도 옮겼다. 요약임에도 모바일로 주로 읽히는 플라이북 앱의 레이아웃 특성상. 보는 입장에서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양해를 부탁하고자 한다.
● “고대 그리스에서 세발솥(트라이팟, tripod)은 단순한 조리 도구를 넘어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탁의 상징 및 도구: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세발솥은 가장 중요한 종교적 상징물이었습니다. 신전의 무녀인 피티아(Pythia)는 세발솥 모양의 의자에 앉아 신으로부터 신탁받았으며, 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국가적, 개인적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권위와 존귀함의 상징: 세발솥은 '왕위' 또는 '존귀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권력과 지위를 상징했습니다. 이는 동양의 '정(鼎)' 자와 마찬가지로, 특정 인물이나 가문의 권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봉헌 및 부의 과시: 올림피아나 델포이와 같은 범 그리스 성역에서 세발솥은 신들에게 바치는 귀중한 봉헌물이었습니다. 승리나 성공을 기념하여 신전에 봉헌된 대형 청동 세발솥은 봉헌 자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경쟁의 상품: 고대 그리스에서 열린 체육 경기나 시가 경연 대회 등 다양한 행사의 우승자에게는 종종 상품으로 세발솥이 수여되었습니다. 이는 명예로운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요약하자면, 세발솥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종교 생활 중심에 있었으며, 정치적 결정 과정과 사회적 위신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상징물이었기 때문에 중요했습니다.”
● 70p에서 뜬금없이 “제가 말해보겠나이다” 서술되는 저자의 개입은 어색함이 느껴지긴 한다. 가까이서 보았기에 목격한 사실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어서였을까, 전해 들은 사실을 옮겨적은 것이라는 자백이었을까. 책의 일관된 문체와, 그를 적은 ‘호메로스’라는 필명만이 전해지는 한 인물이 자아내는 또 다른 미스터리함.
● 본 줄거리에서 그리스와 트로이의 병사들은 기나긴 전쟁에 이미 지쳐왔고,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일기토 후 종전에까지 가까웠다. 하지만 올림포스 신의 부추김과 그에 넘어간 트로이 측 상층부의 어리석음으로 잔인한 전쟁이 재개되고 만다. 결국 바닥에서 얼굴을 붙이며 서로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병사들이다. 전쟁에서 가장 밟히는 건은 백성일지니.
● 22권은 전우 폴리뭬데스의 말을 안 듣고 아킬레우스에 의한 자신의 파멸을 언급하는 헥토르의 독백과 아킬레우스의 파멸을 언급하는 헥토르의 저주가 주된 내용이다. 각 진영에서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 두 인물에 예견되는 파멸은 전쟁의 허망함을 더 나타낸다.
● 그렇게 매정한 메넬라오스 그렇게 죽기 전 영웅적 면모를 보이며 명예를 회복하는 아버지의 부성애와 서로의 소중한 자를 향한 통곡은
● 자식을 찾으려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이 수미상관의 구조를 띠고 있음을 옮긴이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가멤논에게 살아있는 딸을 찾으러 온 사제인 아버지와 죽은 자식을 되찾으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
● 살아있는 사제의 딸을 물건 취급하며 그녀의 아버지를 능멸한 아가멤논은 명예도 잃었을뿐더러 후에 그의 목숨도 잃는 것에 대한 동정의 여지조차 잃는다.
● 하지만 프리아모스의 아픔에 공감하고 헥토르의 시체를 능멸한 졸렬함에서 벗어나 트로이 왕의 아들의 몸을 돌려주고 무사하게 트로이에 돌아가게 하는 아킬레우스는 보편적 인류애를 통해 명예를 회복한 영웅의 모습을 보인다.
● 책의 마지막에서 프리아모스의 아들에 대한 추모와 아킬레우스의 친우에 대한 추모의 대조는 신들의 개입을 제외하고 전쟁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인 파리스의 헬레네 도적질을 원망하게 만든다. 충분히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에.
●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세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23장의 주요 줄거리인 파트로클로스 추모 체전의 종목은 기원전 9세기 올림픽 고대 체전을 연상시킨다. 올림픽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던 것 같다.
● 24권에서 파리스라는 인간이 한 황금 사과 주인을 고른 선택에서 헤라와 아테나가 느낀 능멸이 그리스와 트로이 양측에 거대한 상처의 주요 원인임이 드러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 문헌을 읽을수록 ‘올림포스 신들의 졸렬함’에 대한 인식이 강해진다. 올림포스 신들처럼 살지 알아야 한다는 반면교사의 심정이 독서를 통해 다져진 긍정적인(?) 소양일까.
● 부록으로 실린 책에 등장했던 인물에 대한 소개 글은 앞서 서술된 분 스토리를 다시 되짚을 수 있게 하는 유익한 기능을 한다.
1300년 3월 25일 목요일 밤, 부활절의 성 금요일을 하루 앞둔 밤. 단테는 잠에서 깨어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 두려움에 떨던 단테 앞에 존경하던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영원의 세계로 인도해 줄 것을 약속한다. 그리하여 금요일 저녁 지옥에 도착하고, 사후 세계로의 일주일간 순례가 시작된다. 단테는 지옥에서의 사흘, 참회와 회개의 공간 연옥에서 사흘, 그리고 천국에 가기 전 스승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지고, 꿈에서만 그리던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천국을 경험한다. 이 책은 단테의 여정 중 지옥에서의 사흘간의 여정, 지옥의 9개 원을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프리태니커 인포그래픽 백과-광활한 우주>책에서는 우리는 별로 이루어졌단다. 우리 몸은 산소와 탄소 등 여러 가지 화학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소들은 맨 처음에 어디에서 왔냐면 몇몇 원소는 폭발하는 별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또 다른 원소들은 빅뱅 순간에 생겼을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는 우주로 다시 떠돌게 된다 치더라도, 만약 영혼이 존재한다면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리가 우주의 모든 신비로운 현상을 알아낼 수 없듯이, 사후 세계를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확률은 반반이다. 사후세계가 있거나 없거나. 없다면 다행인데, 있으면 어떡하겠는가? 죽어보니 사후세계가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스크루지 영감은 크리스마스이브날 죽은 친구 유령이 찾아와 사후 세계와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며 회개하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나는 단테의 <신곡>도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사람들이 실제 겪지 못한 사후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가 있다고 단정하건 없다고 단정하건 확률은 50%다. 그렇다면 지옥에 대한 인식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단테는 지옥을 어떻게 그려놓았는가? <아이네이스> 저자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의 9개 원을 여행한다. 지옥의 원은 죄의 성격에 따라 구분되며,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데 이를 ‘콘트라파소’라고 한다. 책을 읽을 때 죄에 걸맞은 콘트라파소를 유추해 보길 권한다. 또한 죄에 경중에 따라 형벌의 종류도 천차만별인데, 단테의 상상력은 가히 놀랍도록 상상을 초월한다. 중세 판타지 소설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다. 또한 단테가 살던 시절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로, 중세 말에서 근대로 가고 있던 시점이라 <신곡>에는 중세 가톨릭의 세계관이 곳곳에 드러나기도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 인물뿐만 아니라(단테는 정치활동을 하다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했고 죽기 전까지 약 20여 년에 걸쳐 유랑 생활을 하며 집필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당대 인물뿐만 아니라 자신의 측근 인물들도 꽤 나온다.) 신화적 인물, 당대의 정치인, 교황, 지식인들까지 지옥에 배치하며 단테 자신만의 윤리적, 정치적 비판을 문학으로 풀어낸 것이다.
우리 인생길 바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1곡, 1-3행)
단테가 그린 지옥에는 어떤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있을까? 크게 스스로가 무절제한 자, 타인과 자신과 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 타인을 두고 배반한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 나는 단테가 그린 9고리의 지옥을 간단하게 모두 나열해 보고자 한다.
지옥의 첫 번째 고리에서 다섯 번째 고리까지는 개인의 무절제로 인해 벌은 받은 자들이 있는 곳인데 제일 첫 번째 고리에는 예수 탄생 전에 활동했던 사람들이 있다.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베르길리우스 등 수많은 학자들이 세례를 받지 않은 이유로 림보에 억류되어 있다. 두 번째 고리부터 진짜 지옥이 시작된다. 거기서부터는 사랑으로 삶을 버린 아킬레우스, 파리스와 헬레네, 트리스탄 등이 등장한다. 세 번째 고리는 거만하고 시기하며 남을 이기려는 탐욕을 지닌 자들이 영겁의 비에 고통받는다. 네 번째 고리는 세상에 공평하게 주어진 물질을 독점하거나 방탕하게 소비한 자들, 다섯 번째 고리는 스틱스 강의 늪에서 분노의 죄를 지은 자들을 그리고 있다.
천사가 지옥의 문 ‘디스’로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무거운 죄를 지은 자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단테는 자신의 무절제는 자신만을 타락시키지만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자연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듯하다.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악행을 저지른 죄는 무겁게 보고 있다. 여섯 번째 고리는 해로운 사상을 믿고 퍼트린 이단자들이 가는 곳, 일곱 번째 고리에선 3개의 원으로 나뉜다. 제1원에는 폭군과 독재자들이 있는 곳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디오니시우스 1세 등이 있는 곳이다. 제2원은 자신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이 있는 곳이다. 자살하거나 재산을 탕진하는 자들이다. 제3원에서는 하느님과 자연의 순리에 해를 끼친 자들이 모이는데 여기는 신성 모독자들, 동성애자, 이상성애자, 고리대금업자들이 있다. 자살하는 자를 포함시킨 것은 당대 기독교에서 범죄로 취급되었기에 그런 듯하다. 여덟 번째 고리는 원어로 말레볼제라 칭하며, 사람만이 범하는 죄, 배신과 기만을 다룬다. 이 고리에서는 10겹의 구덩이에서 10종류의 벌을 받고 있는 곳이다. 폭력보다 배신과 기만죄가 더 아래에 있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단테는 사회의 근본과 질서를 더 어지럽힌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제1원은 금전을 목적으로 남을 성적 착취한 뚜쟁이들이 악마들에게 채찍질을 받는다. 제2원에서는 아첨꾼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아첨을 이용한 자들이 똥물에 처박혀 있다. 제3원은 교황 니콜라우스 3세, 교황 보니파시오 8세(당시 현직 교황이었음), 교황 클레멘스 5세가 등장한다. 그들은 종교를 이용해 금전과 권력을 취한 자들이다. 제4원은 점쟁이, 예언가가 등장한다. 미래는 하느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을 인간이 예언하는 것에 목이 뒤로 꺾이는 벌을 받고 있다. 제5원에서는 탐관오리들이 끈적끈적한 역청에서 허우적거리며 벌을 받는다. 제6원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 납으로 된 무거운 망토를 덮고 걸어가는 벌을 받는다. 그중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유대인 제사장 가야바는 땅바닥에 못 박힌 채로 다른 죄인들에게 밟히는 벌을 받고 있다. 제8원은 모사꾼이 있는 곳인데 거기서는 불꽃에 휘감겨 있다.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트로이의 목마를 계획하여 악행을 뒤에서 조장했다며 벌을 받는다. 제9원은 무함마드, 알리가 있다. 그들은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를 분리했기에 분열을 조장했다는 죄목이다. 제10원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아버지와 죄를 저지르거나 유서 변조, 화폐 위조, 위증하는 위조자들이 질병으로 고통받는다.
마지막 9번째 고리는 지구 중심이자 지옥의 최하층이다. 코키토스는 지옥의 강들이 마지막으로 고이는 얼음 호수다. 이곳도 제1구역부터 제4구역까지로 나뉜다. 제1구역은 ‘카이나’로 가족과 친족들을 배반한 자들이 모여있다. 제2구역은 ‘안테노라’로 조국이나 단체를 배반한 자들이 모여있다. 제3구역은 ‘프톨로마에아’로 손님, 안전을 보장해 줬던 자들을 해한 자들이 모인 곳이다. 제4구역은 이우데카로 은인을 배신,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자들이 모여 있다. 이곳에는 유다가 있다.
신곡의 나오는 모든 죄를 적은 이유는 이 죄가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살면서 혹시 내가 이런 죄들을 저지른 적은 없었나?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다.
단테의 <신곡>에서 죄인에게 벌을 내리는 모습을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형식을 띄고 있다. 죄에 상응하는 벌을 내린다.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에게는 목이 꺾이는 벌을 주고, 탐관오리들에게는 역청을 뒤집어쓰게 만든다.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또한 현직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혹평이 많이 등장하는데, 잃을 것 없는 단테의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고, 그의 대담성, 타락한 중세 교회의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너는 <윤리학>이 하늘이 원하지 않는
세 가지 마음의 상태를 부절제와 악덕, 수심으로
널리 밝혀 내고 있음을 잊었느냐? (11곡, 79-81행)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단테가 죄를 나눈 기준점은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이다. 추가로 키케로의 <의무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도덕철학을 토대로 지옥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책을 읽으며 단테가 죄를 이렇게 나눈 기준을 어디서 참조했을까 궁금했는데, 이 구절을 읽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테는 망명길 20여 년 동안 수많은 고전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경, 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의 저서와 철학자들, 그리스 로마 신화 인물들, 유다, 솔로몬 등 수많은 군상들이 등장한다.
인간이 영원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요.
지금 제가 얼마나 기쁜지는, 살아 있는 동안
기록할 저의 말로 드러날 것입니다. (15곡, 85-87행)
…
내가 함께 있을 수 없는 무리가 저기 오고 있구나.
나의 책 <보전>을 기억해라.
아직 난 거기에 살아 있다. 다른 부탁은 없다. (15곡, 118-120행)
단테는 지옥에서 실제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루네토 라티니를 만난다. 그는 단테에게 불멸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라티니 또한 <보전>을 썼고, 자신은 불별했다고 자처한다. 단테는 7고리 꽤 깊은 지옥 밑에서 스승을 만났다. 스승이 지옥에 있는 모습을 본 단테의 심경은 애처롭기만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단테 아닌가. 그는 스승이더라도 죄목에 대해선 단호했다. 스승은 뛰어난 업적으로 불멸했으나 남색(성적 문란)으로 철저히 심판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 앞에서도 죄의 심판은 피해 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제야말로 네가 나태함을 벗어 버릴 때로구나.
베개를 베고 이불 속에 누워 편안함을 즐기다가는
명성을 얻을 수 없느니라!
24곡에서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언덕을 오르며 나누는 대화는 인상적이다. ‘모든 사람이 개개인만의 언덕을 오르고 있다. 그처럼 저마다 인생의 수행과제가 있다. 내 인생의 수행과제는 무엇일까?’
나는 꽤 완전한 인간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옥의 가장 하부의 죄들을 보자. 가장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은 그 사람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도 누군가를 배신하라는 뜻도 아니다. 배신을 당했어도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뜻이다. 배신한 이에게 앙심을 품고 똑같은 행위를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에서 일어날 법한 행동이다. 지옥이라는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단계 위의 차원으로 즉, 다른 차원으로 노력해야 한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 스승과 힘겹게 언덕을 올랐던 것처럼(그것은 육체적 어려움이었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정이 있어야만 내 육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아닌, 진정 내 영혼이 다다를 수 있는 최선의 길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Op.23
오랜만에 나의 전공 관련 이야기 책을 읽었다.
예술가의 영역 중에서 음악가의 영역은 무언가 내 생각을 보태기가 조심스러웠다.
어설프게 건드리다 멈춘 내 삶의 한 영역인 것 같아서.
유튜브에서 호로비츠의 '트로이메라이' 연주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 흘렸던 적이 있다.
흑백 필름 속에 담겨진 호르비츠의 모습과 숨 죽인 객석 러시아인들의 교감은 이방인인 내가 느끼는 것 이상의 영역이 있었을 것이고 애환이 담겨 있었을 것이었지만,
그 영상을 본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아마 마음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60 여 년 간 지속된 공산주의 체제 속에 지친 러시아인들에게 돌아온 노년의 초라한 모습의 피아니스트.
그가 61년 만에 고국의 무대에 오르며 앙코르로 연주한 곡은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독일어로 '꿈', '몽상')였다.
그 짧은 곡은 불안한 정세와 독재 속에서 자유를 그리며 버텨온 고국의 국민들에게 그 세월에 대한 보상처럼, 개혁의 시작을 여는 문을 두드리듯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거장과의 60면 만의 해후였다.
시대를 거스르며 자신의 삶을 음악에 투영한 피아니스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 속에 다 담겨져 있다.
Op, 즉 Opus 는 라틴어로 '작품'을 의미한다.
이 단어 속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많은 작곡가의 시간이 담겨져 있다.
유럽 각지의 언론에서 호평 받은 한국의 피아니스트 조가람의 시선으로 그리고 그녀만의 해석으로 소통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어설프지만 내 대학 시절의 전공과 같은 영역이라 더 신나게 읽어나갔다.
물론 지금은 글을 쓰는 작가, 또는 교육자라는 직업이 더 어울리는 나의 현재의 위치가 맞물려 잊고 있었던 나 만의 시간을 되돌려주는 시간이었다.
리스트의 전설적인 곡 '사랑의 꿈'은 그가 겪은 사랑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꿈이라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 꿈을 영원히 잠들지 않는 노래로 남긴다면"
깨어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그 꿈을,
음표 하나 하나에 새겨 넣은 리스트의 그때 그 시간의 마음을
읽어내며 그 곡을 다시 들어보기도 했다.
예술이 정치적 갈등이나 민족주의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음악가들 사이에서 독일 음악을 연주 금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을 때 '음악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예술 철학으로 이에 저항했다.
"변화는 항상 이전 세대의 눈초리와 견제를 받으면서 일어나고,
도리어 그 반발을 자양분 삼아 발전한다"
예술이 모든 것의 목적이자 근원인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는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된다.
그것은 젊음과 늙음, 외모, 직업, 재력과는 무관하다.
라흐마니노프는 고모의 딸 나타샤와 결혼을 했다.
슈만은 스승의 혹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딸 클라라와 결혼했다.
예술가는 자신의 영혼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자신의 영역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이해하고 삶을 같이 걸어가는 것!
그러한 연유로 음악가들 사이에는 자신을 가르쳐 준 스승과 결혼하는 이들이
유독 많았던 것일까?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는 그의 나이 17세에 스승 케제라체를 만났다.
그녀에게 15번의 레슨을 받은 후 그녀에게 청혼했다.
21살 연상의 스승에게 말이다.
'랩소디 인 블루'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조지 거슈윈은 16세 때 어깨 너머 배운
화성학 하나로 출발해 음악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청년이었다.
훗날 성공 후 모리스 라벨에게 음악을 배우러 갔지만,
라벨은 그를 거절했다.
이때 라벨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신은 이미 일류 거슈윈인데, 왜 이류 라벨이 되려고 하느냐"
과연 위대한 예술가는 그냥 그 명성을 얻는 것이 아니다.
라벨의 성품은 랄로의 비난에 지혜롭게 대응했던 일화로도 남아있다.
랄로는 라벨의 데뷔 시절 수십 년 간 그를 끈질기게 공격한 인물이다.
어느 날 랄로가 라벨에게
"당신은 재능은 있으나 드뷔시를 모방하느라 큰 빚을 졌으니,
이제는 베토벤을 모방하라" 는 독설을 퍼부었다.
라벨은 응답했다.
"프랑스 전통에 충실한 위대한 개성을 지닌 드뷔시를 나는 깊이 존경한다.
천재는 스스로의 법칙을 창조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존재다.
나는 드뷔시를 존경하지만, 나의 본성은 그와 다르다.
나는 항상 그의 상징주의와 반대되는 방향을 따라왔다."
피아니스트 조가람의 입으로 듣는 피아니스트의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로울 수 없다.
그녀의 빛나는 연주 경력 만큼이나 그녀의 글이 이 책 속에서 빛난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오래도록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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