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하게 인간을 바라보고 그려냈다. 실제 다 있는 인물이고 사건인듯 생생하다.
그만큼 찝찝하고 불편함도 함께 남았다. 차갑고 선뜩하기도 하다. 그리하여 잘 쓴 것과 별개로 취향은 아니었다.
글은 진짜 똑똑하게 기획하고 잘 쓰는듯. 천재적이지만, 나는 다른 천재들이 더 좋은듯하다. 이를 테면 김애란이나 황정은 결.
2024년 12월 3일. 가짜 뉴스라고 믿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불안에 덜덜 떨면서 계엄 해제를 기다렸다.
2026년 1월 4일.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다 읽었다. 바닥에 가라앉았던 기억이 긁혀 올라왔다. 언제라도 끌려 내려갈 수 있겠다는 공포와 지켜낼 수 있다는 결의가 겹쳐진다. 말차하임을 살까, 말차빈츠를 살까 고민하는 삶으로 돌아옴에 감사, 감동, 다행이다.
이름조차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 땅의 여성들에겐 이름이 없었다. 대갓집 마나님은 누구누구 부인이라고, 여염집 아낙은 어디어디 댁이라고들 불렸다. 죽어서도 마찬가지. 비석이며 기록에도 오로지 성씨만이 남기 일쑤였다. 5만 원 권 속 신사임당조차 사임당이란 호가 문집에 남아 알려진 것일 뿐. 이름은 완전히 소실돼 찾아볼 길 없다.
황정은의 소설은 가족의 연대기를, 특히 보이지 않는 짐을 잔뜩 업고 사는 옛 여성의 이야기를 개별적으로 짚어낸다. 당연하지 않은 짐을 당연하게 져왔던 그네들의 사정이 삶 가운데 비슷한 감정을 겪었을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 자극이 위로며 응원을 의도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못된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구도가 지겨운 건 사실이다. 올해만도 다섯편, 그렇고 그런 이야기의 반복이 아닌가. 그럼에도 누구에겐 의미가 있겠거니. 입을 다물고서 의미나 더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