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지만떡볶이는먹고싶어#백세희
죽음과 떡볶이 사이,
모순된 마음에 건네는 솔직한 위로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 우울과 불안 속에서도 작은 빛을 찾고 싶다면
✔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감정들과 싸우고 있다면
📕 책 소개
가벼운 우울 증상인 #기분부전장애 를
장기간 앓았던 작가님이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나눈
솔직한 상담 기록을 담은 산문집이다.
"죽고 싶다"는 충동과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
이 모순된 두 감정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았다.
🔖 한 줄 소감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수많은 감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가님의 고백을 따라가다보면,
힘들고 우울한 날에도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토닥여 줄 수 있게 된다.
작가님이 전하는 위로가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
#감사합니다#RIP#우울불안#상담기록#마음챙김#마음건강#심리에세이#2025_267
초반이 조금 루즈하고... 후반부의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조금 역겹다.. 하지만 재밌었다
엄마가 넘 이해 안됨.. 어캐 10대 딸 두 명이 있는 집에 만난지 한 달 된 남자를 들일 수 있는지.....
레드 플래그로 점철된 남자랑 어캐 결혼까지 할 생각을 하는지...
18살(한국 나이로는 20살쯤...?) 된 딸한테 죽고싶다고 할 수 있는지....
제일 이해 안 가는 건 아빠임....
아내는 떠날 수 있다 치지만 딸들까지 팽개치고 간다고..?
딸이 뇌종양으로 수술 받았는데 코빼기도 안 비춘다고...?
이거는; 지원이 지원해도 뭐.. 유죄는 아닐듯
조지랑 조프리 이름 비슷해서 헷갈렸는데 이것도 의도한걸까
사이다였는데 거기까지 가는 게 좀 힘듦
이름 모를 학생 둘은 RIP
● 본 내용에 들어가기 전 추천사에서 번역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던지는 저자의 견해는 가독성만이 무조건 좋다는 본인의 머리를 한 대 때린 것 같았다. 가독성에 치중한 의역이 자칫 정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성과 가독성 이 둘의 세력 싸움은 번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상 영원할지니.
● 책에서 하도 많이 봐서 기억에 남는 표현으로는 ‘무장을 벗기다’ ‘신과 같은’ ‘아레스와 같은’ 등등이 있다.
●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세발솥’이다. 세발솥이 어떤 존재길래 주요 재물로써 언급되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구글 검색을 통해 세발솥이 왜 중요했는지 AI가 명료히 알려주었고, 그 사실을 공유차 본 글에도 옮겼다. 요약임에도 모바일로 주로 읽히는 플라이북 앱의 레이아웃 특성상. 보는 입장에서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양해를 부탁하고자 한다.
● “고대 그리스에서 세발솥(트라이팟, tripod)은 단순한 조리 도구를 넘어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탁의 상징 및 도구: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세발솥은 가장 중요한 종교적 상징물이었습니다. 신전의 무녀인 피티아(Pythia)는 세발솥 모양의 의자에 앉아 신으로부터 신탁받았으며, 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국가적, 개인적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권위와 존귀함의 상징: 세발솥은 '왕위' 또는 '존귀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권력과 지위를 상징했습니다. 이는 동양의 '정(鼎)' 자와 마찬가지로, 특정 인물이나 가문의 권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봉헌 및 부의 과시: 올림피아나 델포이와 같은 범 그리스 성역에서 세발솥은 신들에게 바치는 귀중한 봉헌물이었습니다. 승리나 성공을 기념하여 신전에 봉헌된 대형 청동 세발솥은 봉헌 자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경쟁의 상품: 고대 그리스에서 열린 체육 경기나 시가 경연 대회 등 다양한 행사의 우승자에게는 종종 상품으로 세발솥이 수여되었습니다. 이는 명예로운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요약하자면, 세발솥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종교 생활 중심에 있었으며, 정치적 결정 과정과 사회적 위신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상징물이었기 때문에 중요했습니다.”
● 70p에서 뜬금없이 “제가 말해보겠나이다” 서술되는 저자의 개입은 어색함이 느껴지긴 한다. 가까이서 보았기에 목격한 사실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어서였을까, 전해 들은 사실을 옮겨적은 것이라는 자백이었을까. 책의 일관된 문체와, 그를 적은 ‘호메로스’라는 필명만이 전해지는 한 인물이 자아내는 또 다른 미스터리함.
● 본 줄거리에서 그리스와 트로이의 병사들은 기나긴 전쟁에 이미 지쳐왔고,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일기토 후 종전에까지 가까웠다. 하지만 올림포스 신의 부추김과 그에 넘어간 트로이 측 상층부의 어리석음으로 잔인한 전쟁이 재개되고 만다. 결국 바닥에서 얼굴을 붙이며 서로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병사들이다. 전쟁에서 가장 밟히는 건은 백성일지니.
● 22권은 전우 폴리뭬데스의 말을 안 듣고 아킬레우스에 의한 자신의 파멸을 언급하는 헥토르의 독백과 아킬레우스의 파멸을 언급하는 헥토르의 저주가 주된 내용이다. 각 진영에서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 두 인물에 예견되는 파멸은 전쟁의 허망함을 더 나타낸다.
● 그렇게 매정한 메넬라오스 그렇게 죽기 전 영웅적 면모를 보이며 명예를 회복하는 아버지의 부성애와 서로의 소중한 자를 향한 통곡은
● 자식을 찾으려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이 수미상관의 구조를 띠고 있음을 옮긴이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가멤논에게 살아있는 딸을 찾으러 온 사제인 아버지와 죽은 자식을 되찾으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
● 살아있는 사제의 딸을 물건 취급하며 그녀의 아버지를 능멸한 아가멤논은 명예도 잃었을뿐더러 후에 그의 목숨도 잃는 것에 대한 동정의 여지조차 잃는다.
● 하지만 프리아모스의 아픔에 공감하고 헥토르의 시체를 능멸한 졸렬함에서 벗어나 트로이 왕의 아들의 몸을 돌려주고 무사하게 트로이에 돌아가게 하는 아킬레우스는 보편적 인류애를 통해 명예를 회복한 영웅의 모습을 보인다.
● 책의 마지막에서 프리아모스의 아들에 대한 추모와 아킬레우스의 친우에 대한 추모의 대조는 신들의 개입을 제외하고 전쟁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인 파리스의 헬레네 도적질을 원망하게 만든다. 충분히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에.
●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세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23장의 주요 줄거리인 파트로클로스 추모 체전의 종목은 기원전 9세기 올림픽 고대 체전을 연상시킨다. 올림픽의 탄생은 필연적이었던 것 같다.
● 24권에서 파리스라는 인간이 한 황금 사과 주인을 고른 선택에서 헤라와 아테나가 느낀 능멸이 그리스와 트로이 양측에 거대한 상처의 주요 원인임이 드러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 문헌을 읽을수록 ‘올림포스 신들의 졸렬함’에 대한 인식이 강해진다. 올림포스 신들처럼 살지 알아야 한다는 반면교사의 심정이 독서를 통해 다져진 긍정적인(?) 소양일까.
● 부록으로 실린 책에 등장했던 인물에 대한 소개 글은 앞서 서술된 분 스토리를 다시 되짚을 수 있게 하는 유익한 기능을 한다.
누런 벽지
이와 같은... 누런 벽지로 가득 찬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한다면... 누구라도!
파멸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작가의
현실 고발을 담은 책
이미 미쳤거나
미쳐가고 있는 중이거나
결국엔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단숨에 읽고 깊어지는
월간 내로라
누런 벽지
내로라 출판사에서
한 달에 한 편
영문 고전을 번역해
단편 소설 시리즈를 출간할 당시
거의 초창기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단편 소설
원서와 번역본 나란히 수록
번역자의 생각을 더한
더 깊어지는 페이지까지
읽는 내내 흥미롭고
읽고 나면 여운 가득한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는
제가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입니다.
🏷
누구라도
이걸 읽는다면
미쳐 버릴 것이 분명하며,
그렇기에 이 소설은
절대로 출간되어서는 안 될 것!
_ 《누런 벽지》 출간 후 보스턴 주의
어느 의사가 'The Transcript'에 기고한 글
《누런 벽지》는 집안에 갇힌 채 미쳐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미쳐 있었거나 그 경계를 아슬하게 걷고 있는 중인 이 여성은 결국 미쳐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요, 그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1인칭 독백만이 가질 수 있는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감정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는데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해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랍니다. 기필코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
1891년 책 출간 당시에는 신경 쇠약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휴식 치료법'을 적용했다고 해요.
환자의 완벽한 휴식을 목표로 6~8주간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어떤 지적 활동이나 창의적 활동도 제한했고요. 영양 공급을 위해 고단백 위주로 식단을 구성했습니다. 15킬로그램 체중 증가가 치료의 성공 지표였다고 해요.
◾️◾️누구라도... 미쳐...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상일 수 있을까요?
🏷
그들은 몸보신, 여행, 신선한 공기, 운동, 뭐 이런 것들을 함께 처방했고, 완전히 건강해질 때까지 모든 '일'을 절대 금지했어.
내 생각에, 그 처방은 틀렸어.
《누런 벽지》 p.27
의사 남편과
유명한 의사 오빠마저도
같은 처방을 내립니다.
✔️야외 활동 금지
✔️글 쓰는 것 금지
✔️사람들과 교류 금지
✔️아기와의 만남조차 금지
✔️오로지 침대에서만 생활하기
무척이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유서 깊은 대저택의 맨 꼭대기 층
여름 한 철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곳
'지금까지 맡아본 냄새 중에서 가장 은은하고 또 오래가는' '정말 독특한 악취'를 풍기는 '누런 냄새'로 가득한 누런 벽지에 둘러싸인 공간.
'그 색깔은 혐오스럽고 역겹기까지'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햇볕을 받아 변색된 것 같은, 들끓는 불결한 누런색'.
'전반적으로 칙칙한 색인데, 군데군데 폭력적일 만큼 선명한 오렌지색이 섞여 있고, 나머지 부분은 매캐한 유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누런 벽지로 둘러싸인 대저택의 최상층에 위치한 옥탑방 같은 곳.
그곳에서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합니다.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
분명 이 대저택의 아래층에는
아름다운 공간이 많이 있어요.
왜, 하필,
감옥 같은
이 방에서 지내야 할까요?
신중하고 다정한데
말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
이런 공간에서
매일 더 미쳐가는 여주인공
몰래
글을 쓰는 것으로
심정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열한 편의
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정말이지 읽는 내내
미쳐 버릴 거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왜? 왜? 왜?라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
저는 사람들을
광증으로 밀어 넣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닙니다.
광증으로
떠밀려 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썼습니다.
이 책은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 The Forerunner 》에서 발췌
이 소설은 현실을 고발하는 책입니다.
작가 역시 심각한 신경 쇠약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의사는 책의 주인공에게 내린 처방과 같은 치료법을 작가에게 권했고 얼마간 충실히 따랐습니다.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어요. 더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에서 작가는 홀로 방법을 모색합니다. 마침내 신경 쇠약에서 벗어난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며 이 문제를 공론화합니다.
🏷
책이 출간된 이후
신경 쇠약증에 관한
다른 치료법이 도입되었다고 해요.
이전까지는 대부분 마시지 요법과 전기 충격 요법을 병행했고요, 마약 성분을 함유한 신경 안정제 주사는 비용적인 측면 때문에 중산층 여성들에게만 적용했다고 해요.
특히, 주인공 여성에게 적용했던 무자극 무활동 처방은 신경쇠약증 환자뿐 아니라 과하게 활동적이고 사회적인 여성들을 '교정'하기 위해서도 적용했다고 해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런 시대에
출간된 《누런 벽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값진 승리이자
여성을 향한
편견에 반기를 드는
마중물 같은 책이었을 것입니다.
🏷
만약 제가 《누런 벽지》만 읽었다면
책의 의미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혼미했을지도 몰라요. 다행히 내로라 시리즈로 만난 책에는 작품을 쓴 경위와 그 당시 사회적 상황, 이 책이 일으킨 반향까지 함께 수록하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로라 시리즈를 애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작품을 슬쩍 읽고 흘려보내게 하지 않습니다. 곱씹는 동안 의미를 더하게 만들지요.
작품을 알아가고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내로라 시리즈!
📌
《누런 벽지》는
다소 기괴하고 찝찝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읽어요?라고 물으신다면
그렇기에 읽어 보세요!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사회 문제를 직시한 소설!
자기 파멸적 상황을
뚫고 나온 작가가 쓴
이 소설 덕분에
신경 쇠약증에 관한
치료법까지 바뀌게 되었습니다.
소설이 한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어떻게 바로잡아 나가는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