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는 이 책에서 네로황제가 사망한 이후 트라야누스가 등장할 때까지 29년간 로마가 처한 상황을 밀도있게 그리고 있다. 이 기간은 로마제국에 있어 고뇌와 비탄으로 가득찬 시대이다. 그러나 저자는 "로마는 위기의 시대였던 이 시기를 벗어난 뒤 전례없는 번영기를 구가했다" 고 말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융성을 이룩하는 로마인의 지혜를 보여준다.
두려움과 열등감은 조급함을 만들고,
조급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옥좨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보잘 것 없는 집안의 서민 출신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굳이 법제화 하지 않아도 될 '황제권'을 법제화 함으로써, 자기자신의 불안감은 해소할 수 있었겠지만,
결국 이러한 조치가 본인의 둘째 아들 도미티아누스의 암살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삶은 정말...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서기 70년경, 네로 황제의 자살 이후 1년 사이에 황제가 세 명이나 바뀌는 극심한 혼란 상황에서, 갈리아 속주민들의 거센 반란을 제압하고 사후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로마인들이 보여준 전후 처리 방식은 보복이 아닌 관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는 그것이 "휴머니즘에 눈을 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이런 현실적인 해석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이러한 해석은, 몇십년에 걸쳐 고대 로마 하나만을 생각한 연구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난 일화가 있는데,
꽤 오래전 EBS 다큐멘터리에서 본 미국의 어마어마한 수퍼리치 기업인이자, 어마어마한 기부자의 이야기였다.
당시 그 분 인터뷰가 나에겐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왜 그렇게 큰 돈을 정기적으로 사회에 기부하는지를 묻자, 그 분의 대답은 대충 이러했다.
"나에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쓸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나에게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내가 1년에 사는 바지의 수는 10벌 남짓인데, 내가 가진 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그 사람들이 사는 바지는 1년에 몆 천벌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시장의 수요가 많아지고, 기업은 더 많은 것을 생산하게 되서 결국 나같은 기업인도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말... 기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려운 사람을 돕는 휴머니즘의 실현이라는, 기부의 숭고한 정신적 가치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지속가능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나에게, 이러한 "기부의 논리적인 이유"야말로, 단순히 인간의 착한 심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어찌보면 다소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과 맞물려 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부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세상은 절대로 나 잘났다고,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곳임을...
우리가 왜 이웃을 살피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하는지를...
그것이 바로 "나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반란자들에 대해 보복이 아닌 관용을 택한 2천년 전의 고대 로마인들도, 어쩌면 그것이 로마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