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의 운하는 동심원을 그리며 도시를 감싼다. 클라망스가 그 물길을 단테의 지옥에 빗댈 때, 나는 지옥에도 이렇게 단정한 질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래 머물렀다. 내가 떠올린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익숙한 길로 출근하고, 커피를 마시고, 저녁이면 제 방의 불을 끈다. 누군가의 고통은 그들의 하루를 잠시도 지연시키지 않는다. 비명이 들리더라도 곧 생활의 소음에 섞일 것이다. 그 풍경이 두려웠던 것은 우리가 지옥을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그곳을 집처럼 여기게 될지를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변호사로 살아가던 클라망스 역시 그런 평온 속에 있었다. 그는 약자를 변호하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며 자신을 선량한 사람으로 믿었다. 나는 그의 선행을 전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타인에게 내미는 손이 동시에 자신을 어루만지는 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돕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며 안도했던 마음을 나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의 속에 자신을 사랑하려는 욕망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쉽게 떼어낼 수 있는 얼룩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깨끗하다고 믿어온 천의 무늬에 더 가까웠다.
그런 그가 어느 밤,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댄 여자를 지나친다. 얼마쯤 걸어간 뒤 등 뒤에서 몸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비명이 들려온다. 그는 멈추지만 돌아보지 않고, 끝내 그 자리를 떠난다. 내가 오래 생각한 것은 그 몇 걸음 뒤에도 그의 삶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한 사람이 물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다른 한 사람의 내일은 어김없이 도착한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며, 자신이 믿어온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잘못은 삶을 즉시 파괴하지 않아서 더욱 두렵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이어지는 하루하루가, 그날 밤에도 아무 일 없었다고 조금씩 설득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 뒤, 다른 밤의 다리 위에서 들려온 정체 모를 웃음소리가 그 평온에 틈을 낸다. 내게 그 웃음은 이미 끝났다고 믿었던 재판에 뒤늦게 도착한 증언처럼 느껴졌다. 누구도 그를 고발하지 않았고, 그의 명성에 달라진 것도 없는데, 이제 그는 자신을 예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어떤 기억은 우리가 충분히 멀어졌다고 믿을 때 비로소 제 무게를 드러낸다. 사건은 과거에 남아 있어도, 그 사건이 나에 관해 말해주는 사실은 지금의 나를 찾아온다. 그가 신뢰했던 선량함 아래에는 누군가의 비명을 듣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자신이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그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를 자꾸 생각하게 됐다. 그 여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의 안에서 얼마나 다른 무게였을까. 타인의 고통을 뒤늦게 알아보는 마음과, 그 고통 앞에서 훼손된 자기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나 역시 쉽게 구별할 자신이 없었다. 후회하면서도 우리는 상처받은 사람보다 후회하는 자신에게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클라망스는 자기 얼굴의 일그러짐을 알아보았지만, 그 얼굴에서 눈을 떼는 법까지 배운 것은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를 재판관이자 참회자라고 부르며 택한 방식은 그래서 더욱 서늘했다. 그는 자신의 치부를 낯선 사람 앞에 펼쳐놓고, 듣는 이가 그 안에서 제 모습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고백을 듣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같은 죄를 지닌 사람으로 그 곁에 앉게 된다. 그렇게 모두가 유죄인 자리를 만든 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죄를 인정한 사람으로서 다시 심판할 권리를 얻는다. 한때는 자신의 선량함이 그를 남들보다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면, 이제는 인간의 추악함을 남들보다 잘 안다는 자부심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의 고백은 무릎을 꿇고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방법이었다.
그제야 암스테르담의 물길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망스의 말은 멀리 흘러가는 듯하다가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선행을 이야기하든 비겁함을 이야기하든,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원의 크기는 달라졌어도 중심은 그대로였다. 나는 그가 지옥을 벗어나는 대신 그곳의 지리를 익혔다고 느꼈다. 길을 잃지 않게 된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도 같은 곳을 걸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걷던 나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의 고백에 숨은 의도를 알아챘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했다. 적어도 나는 저런 방식으로 내 잘못을 정당화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문장을 쓰려는 순간, 그를 비난하는 일이 얼마나 손쉽게 나에 대한 칭찬이 될 수 있는지를 느꼈다. 그의 위선을 알아보는 나는 그보다 정직하고, 그의 오만을 불편해하는 나는 그보다 겸손하다는 식으로. 클라망스에게서 멀어졌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나는 다시 그와 닮아가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고 싶은 마음은, 그 판결에 이르는 말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못 본 척 지나쳤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넘긴 일들이 뒤늦게 마음에 걸렸고, 나는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는 것만으로 조금은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조차 내가 바라본 것이 후회하는 내 모습뿐이었다면, 정작 내가 외면했던 사람은 어디에 남아 있었을까. 클라망스가 어떤 인간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 여자를 거의 잊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선량함을 시험하기 위해 그 밤에 나타난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그녀는 클라망스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장면이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의 절박함이 다른 사람의 자기 이해를 위한 재료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그제야 슬펐다.
처음에 나는 지옥의 가장 두려운 모습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평온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덮을 때는 그 옆에 또 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자신의 비겁함을 정확히 설명하면서도, 그 설명 안에서 여전히 자신만을 돌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망각을 피했다고 해서 그 원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죄책감마저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내가 머물기 편한 방이 될 수 있고, 나는 그 안에서 고통을 겪는 나 자신을 위로하며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불편함에 서둘러 의미를 붙이지 않으려 한다. 아직 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그러니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나면, 이 긴 생각도 다시 나를 향해 둥글게 닫힐 것 같아서다. 물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는 동안만이라도 나에 대한 판결은 잠시 미뤄두고 싶다. 그곳에는 나의 결백과는 상관없이, 끝내 대답을 듣지 못한 한 사람의 부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