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상처 입은 용
작곡가 윤이상은 1917년 산청군 덕산면에서 선비 출신의 부친 윤기현과 농민 출신 모친 김순달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책을 읽기 전 윤이상은 통영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 태어난 곳은 산청이며 그로부터 3년 후 통영으로 이주해서 유년시절을 통영에서 보내게 된다.
1933년 통영에서 서당과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해 상업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서울에서 독일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의 제자의 제자인 바이올린 연주자로부터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게 된다.
이후 윤이상은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일본 등지에서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작곡과 음악이론을 배우며 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여 전쟁 직전 귀국하였으나 징용 중 반일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두 달간 옥고를 치른다.
1950년 부산사범학교 국어교사 이수자와 결혼하여 자녀 둘을 낳고 1957년 베를린에 가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운다.
1967년 베를린에서 한국 중앙정보부원들에게 납치되어 서울로 끌려와서 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심에서 사형을 구형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선고받고 제2심에서 15년 형으로 감형, 다시 제3심에서 10년형으로 다시 감형 받고 1968년 석방된다.
교도소에서 작곡활동으로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완성하였고 국제적인 항의와 독일 정부의 노력으로 석방 후 서베를린에서 활발한 창작의 의지를 불태우게 된다.
1995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영면하셨으며 결국 고향인 통영에 묻히지 못한 채 그의 음악은 아픔만 간직한 채 시대의 역사 속에 잠들어 있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윤이상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항일 저항운동과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선 지식인으로서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불리는 정치적 탄압 속에 그의 음악은 2년간 성장을 멈추었다.
윤이상은 지금 우리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존재이지만 그의 음악적 영혼과 울림은 영원히 멈출 수가 없다.
그것은 정치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절대 정적 속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우리에게 선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