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서 지음 | 문학실험실 펴냄

그(틂 창작문고 11)(양장본 HardCover) (윤해서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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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0.6.23

페이지

252쪽

상세 정보

틂-창작문고 시리즈 11권.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와,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와 중편소설 <암송> 그리고 주체와 타자에 관한 소설적 반성을 완성한 장편 <0인칭의 자리>를 발표한 윤해서 작가의 중편소설.

<0인칭의 자리>가 "화자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점묘화처럼 제시"하면서 "시점을 수시로 바꾸는 형식을 통해 이른바 '타자(他者)되기'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씨네 21 서평 중에서)이었다면, 이번 신작 소설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타자를 지우는 방식의 소설 쓰기"라는 소설 실험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서사물의 입장에서라면 다소 의외일 수 있는, '타자화가 존재하지 않는 작품'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대상을, 인물을, 타자화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자신이 작품 안에 존재해야 하는, 전도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독자는 작품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의 형체를 인지해 가게 된다.

이것은 누구라도 내가 될 수 있다는 일반적 범주의 객체화가 아니라, 사건 밖으로 튀어나온 '그(나)'와 동접할 때만이 글 읽기의 지속성이 가능해지는, 일종의 텍스트를 통한 '들림 현상'의 구체화이다. 그리하여 사건은 무위, 무화되지만, 체화된 '그(나)'는 삶의 본질적인 촉감, 이물감, 안도감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야 하는 자로 재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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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타인의 삶 속 한 인물의 이야기를 엮으면 서사가 된다. 그 인물의 인생이 탄생한다. 어쩌면 편협한 사고의 결과물로서 못난 성품의 사람일 수도 있겠고. 매력적인 사람일 수도 있겠고. 특별하거나 지난할 정도로 무색무취의 인간일 수도 있겠다. 윤해서의 그는 적당한 인간이다. 오히려 적당해서 평범하지 않은. 그냥 그런. 그러나 그냥으로 설명하기엔 약간은 어려운 사람. 뭐 그럴 수도. 우연과 필연을 제멋대로 넘나들고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혹은 그러한 인상을 주는—사람. 우리는 서로의 삶의 대변자이다. 서술자이다. 나는 너가 없으면 완전하지 못하다. 상호 보완의 관계.

“네가 욕망하는 걸 내가 욕망하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분노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물론 너는 나를 알 필요도 없고. 지치면 눈을 감아. 악을 쓰고, 울지 말고. 혼자 잠들 줄 몰라서 우는 애처럼 굴지 말라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문장. 나는 ‘그’를 간직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며 내가 마치 이방인이 아닌 책 속 등장인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나와 실제로 관계를 맺은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이토록 수치심이 드는지.

“신이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부재의 방식으로 편재하는. 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은 꼭 신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구나. 문득 혼잣말을 하다가. 나도 엄마처럼 혼잣말을 하는구나. 혼잣말도 혼자 못하게. 엄마가 또. 서봄은 당구대를 가만히 내려보다 혼잣말을 했다. 각자 살자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살자며. 당구대에 눈물이 떨어졌다.”
이 문장이 적힌 페이지를 읽을 때—1부에서와 2부에서 같은 문장을 보고 같은 충격을 받았다, 동일한 크기로—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신과 같은 방식으로, 내 곁에 실재하지 않으나 항상 깃들어 있는. 눈물이 났다. 어디에나 있어서. 있어줘서. 각자 살지 않아서. 우리가 우리를 읽어내고, 적어내리고, 기대어서.

책을 목차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열 중 여덟은 가지고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습관이다. 아무튼 오늘도 책을 펼쳐 목차를 보았고, 이 중편 소설은 2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1부 그, 2부 그. 그와 그. 독특한 이름 구성이다. 읽어보니 더 독특했다. 1부와 2부는 평행 세계처럼 인물들의 성별 반전,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찌 보면 2부는 1부의 인물만 전환해서 나타낸 것 같다가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하고. 당신은 수많은 이들에게 읽혔고, 읽힌다. “그는 켜졌다, 꺼졌다.”

윤해서 지음
문학실험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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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틂-창작문고 시리즈 11권.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와,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와 중편소설 <암송> 그리고 주체와 타자에 관한 소설적 반성을 완성한 장편 <0인칭의 자리>를 발표한 윤해서 작가의 중편소설.

<0인칭의 자리>가 "화자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점묘화처럼 제시"하면서 "시점을 수시로 바꾸는 형식을 통해 이른바 '타자(他者)되기'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씨네 21 서평 중에서)이었다면, 이번 신작 소설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타자를 지우는 방식의 소설 쓰기"라는 소설 실험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서사물의 입장에서라면 다소 의외일 수 있는, '타자화가 존재하지 않는 작품'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대상을, 인물을, 타자화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자신이 작품 안에 존재해야 하는, 전도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독자는 작품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의 형체를 인지해 가게 된다.

이것은 누구라도 내가 될 수 있다는 일반적 범주의 객체화가 아니라, 사건 밖으로 튀어나온 '그(나)'와 동접할 때만이 글 읽기의 지속성이 가능해지는, 일종의 텍스트를 통한 '들림 현상'의 구체화이다. 그리하여 사건은 무위, 무화되지만, 체화된 '그(나)'는 삶의 본질적인 촉감, 이물감, 안도감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야 하는 자로 재탄생하게 된다.

출판사 책 소개

한국문학, 언어 예술의 새로운 지평과 마주하다.
윤해서 신작 중편소설
『그』

언어가 되지 않은 것. 마음에 이는 파문.
잠깐 스쳐 가는 것들. 멈취 서게 되는 순간.
절대로 모를 ‘당신’의 순간들

한국문학의 실험 소설 계보를 이어가는 윤해서의 신작 중편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와,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문학과지성사, 2017)와 중편소설 『암송』(아르테, 2019) 그리고 주체와 타자에 관한 소설적 반성을 완성한 장편 『0인칭의 자리』(문학과지성사, 2019)를 발표한 윤해서 작가의 신작 중편소설이 독립 문학 단체인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의 <틂-창작문고 시리즈>의 11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0인칭의 자리』가 “화자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점묘화처럼 제시”하면서 “시점을 수시로 바꾸는 형식을 통해 이른바 ‘타자(他者)되기’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씨네 21 서평 중에서)이었다면, 이번 신작 소설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타자를 지우는 방식의 소설 쓰기”라는 소설 실험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서사물의 입장에서라면 다소 의외일 수 있는, ‘타자화가 존재하지 않는 작품’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대상을, 인물을, 타자화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자신이 작품 안에 존재해야 하는, 전도(顚倒)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독자는 작품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의 형체를 인지해 가게 된다. 이것은 누구라도 내가 될 수 있다는 일반적 범주의 객체화가 아니라, 사건 밖으로 튀어나온 ‘그(나)’와 동접할 때만이 글 읽기의 지속성이 가능해지는, 일종의 텍스트를 통한 ‘들림 현상’의 구체화이다. 그리하여 사건은 무위, 무화되지만, 체화된 ‘그(나)’는 삶의 본질적인 촉감, 이물감, 안도감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야 하는 자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냥 그런. 어떤 우연은 필연이 되고 어떤 필연은 우연이 되기도 하겠죠.”
윤해서의 신작 중편은 사건과 사건을 받아들이는 의미는 사라지고, 읽는 자를 향한, 읽는 자의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살아돌아옴을 목도해야 하는 소설이다. 여기에서 이른바 전통적인 서사적 사건은 존재할 수 없다. 오로지 서술 자체가, 문장 자체가 사건이다. 우리가 익히 알아온 ‘타자화된 서사’는 힘을 잃고 형체를 잃는다. 윤해서의 작품에서 서사는 읽은 자의 기억의 강바닥에 눌어붙은 단단한 진흙과도 같다. 화면 속과 카메라의 눈과 창밖의 세계가 아닌, 자신의 내면의 강바닥을 긁어 올릴 때, 사건은 형체를 가지며, 그때서야 서사는 마치 맑은 물속에서 퍼져나가는 탁한 뭉게구름처럼 우리의 의식 속에서 피어오른다.

“‘그’와 ‘그’ 사이에서, 혹은 ‘나’와 ‘나’ 사이에서”
윤해서의 신작 중편소설에는 마치 평행우주처럼 두 개의 ‘그’가 존재한다. ‘같은 서사의 두 개의 의미’로도 읽히고, ‘같은 의미의 두 개의 서로 다른 서사’로도 읽히는 이 형식 실험은,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찾아오는, 심미적 충격에 비하면 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거듭 이 두 차원의 평행성은 인칭이나 타자화에 관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삶과 문장(관습적 언어) 사이의 불화가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비극일지도 모른다는 자책으로부터, 내 안의 타자를 발견함으로써 그 타자와 더불어 감성(희노애락)의 무한한 평형 상태를 유지할 무기를 얻게 되었다는 몽상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은 새로운 소설 읽기의 지평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일상을 통해, 혹은 미디어를 통해 우리 세계를 향해 질문한다. 그것은 특별한가? 아니면 그것은 평범한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형성의 비정형화는 시시때대로 순간적으로 이뤄진다. 반대로 비정형성의 전형화 또한 손바닥을 뒤집 듯 일상적이다. 우리 삶은 이 두 변화를 마주보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소 놀이와도 같다고 할 것이다. 윤해서의 소설은 그 시소 놀이의 정점의 상태를 포착한다. 독자는 그 정점의 상태에서 ‘그(나)’를 목격함과 동시에 텍스트 밖으로 튕겨져 나와 하강과 상승이라는 가속의 구간으로 급격하게 내몰리고 만다.

그가 잠깐 살아 돌아온다면.
이 소설은 처음부터 다시 쓰여야 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오류를 수정하려 할 것이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런 말도. 사실 난. 억울함을 표현할 수도. 그건 내가 아닌데. 나는 그 나라에 간 적도 없어. 다른 기억을 지적할 수도. 절대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당신과 거기 있었던 건 누구지?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수영을 못해. 물에 뜨지도 못한다고. 진실을 밝히고 싶을 수도. 초록 호두 열매를 처음 본 순간의 감동에 대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땐 내가 열 살이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연보를 다시 쓰고 싶을 수도. 그렇지만. 이미 모두 지나간 일인걸. 서글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는 다른 사람.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나는 그날 아침, 3202호의 문을 열고 나섰다. 새벽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순간은 묘사할 수 있지만. 시간을 묘사할 수는 없다. 묘사는 정지다. 묘사가 시작되는 순간, 시간은 묘사를
빠져나간다. 스쳐 지나간다. 묘사할 수 없는 시간. 삶은 그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쉼 없이 변형된다. 카메라가 포착하듯이. 영화는 인간이 기억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기억은 삶의 순간들을 잘라내고, 연결한다. 끌어당기고, 확대한다. 강렬한 이미지를 붙잡는다.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풀과 아교. 이어지는 문장과 문장들, 빈칸과 쉼표들. 전혀 다른 사람. 나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눈송이들을 하나로 뭉친다.

소설은 시작될 것이다.

_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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