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닌 곳보다 자기 것이라고 믿었던 곳에서 더 쉽게 길을 잃는다. 처음부터 낯선 곳이라면 헤매는 일이 당연하지만, 분명 오래 살아왔고 모든 길을 안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문득 방향을 잃으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적지와 왕국>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유배는 그런 것이었다. 먼 곳으로 쫓겨나는 일이 아니라, 분명 내 삶인데 어느 순간 그 안에서 내가 이방인이 되어버리는 것.
그래서 자닌이 한밤중에 남편 곁을 빠져나와 사막의 밤하늘 아래 서는 장면이 오래 남았다. 그녀는 낯선 곳으로 와서야 이상하리만큼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진다. 아무도 그녀를 모르고, 아무도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오히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각만큼은 선명해진다. 나는 그 장면이 마치 너무 오랫동안 실내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와 처음 찬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숨이 막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어쩌면 익숙함은 아주 느린 방식으로 사람을 길들이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것도 오래 견디다 보면 생활이 되고, 생활은 나중에는 운명처럼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 몸을 맞추며 산다. 좁으면 몸을 조금 접고, 낮으면 고개를 조금 숙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몸을 접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 자세가 원래의 나라고 믿는 일이 더 편해진다.
자닌이 사막에서 만난 것은 새로운 세계라기보다, 그렇게 접어두었던 자기 자신의 크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별을 바라보는 순간보다 다시 남편 곁으로 돌아와 우는 순간이 더 슬펐다. 사람은 한 번 넓어지고 나면 이전의 크기로 돌아가기 어렵다. 몸은 같은 침대로 돌아왔지만 마음까지 그 안에 가지런히 눕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 번 밤하늘을 본 사람에게 천장은 이전과 같은 천장이 아니다.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버렸으니까.
<적지와 왕국>을 읽는 내내 나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자유를 모르는 동안에는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있었는데, 아주 잠깐 자유로워진 뒤부터 오히려 삶이 좁아질 수도 있다는 것. 왕국을 발견하는 일이 반드시 구원은 아닌 셈이다. 어쩌면 왕국은 우리가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이 유배지였음을 깨닫게 만드는 한순간의 빛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창문 없는 방에서는 벽이 답답한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러나 벽에 아주 작은 틈 하나가 생겨 바깥의 빛이 들어오는 순간, 방의 어둠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빛은 어둠을 없애기도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카뮈가 말하는 왕국이 그런 빛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 속 사람들은 끊임없이 어딘가에 속하려 하면서도, 완전히 속하는 순간 다시 숨이 막힌다.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외롭고,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면 자신을 잃는다. 혼자이고 싶어서 문을 닫아놓고도 문밖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누군가의 곁에 앉고 싶어 다가가면서도 자신만의 작은 침묵 하나쯤은 남겨두고 싶어 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모순처럼 보였다. 그런데 책을 덮을 즈음에는 오히려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완전히 혼자인 것으로도,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 타인에게 닿고 싶어 손을 내밀면서도 그 손에 붙잡혀 끌려가고 싶지는 않는다. 사랑하면서도 사라지고 싶지는 않고,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 보면 유배와 왕국은 서로 반대편에 놓인 두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처음에 이 제목을 하나의 이동이라고 생각했다. 유배지를 떠나 언젠가 왕국에 도착하는 이야기.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둘 사이에는 건너야 할 국경 같은 것이 없었다. 같은 장소가 어떤 순간에는 유배지가 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왕국이 된다. 자닌에게 남편 곁의 침대는 오래도록 안식처였겠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가두는 장소가 되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막은 오히려 잠깐이나마 자기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결국 달라진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적지와 왕국>을 읽고 나서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보다, 그곳에서 얼마나 나로 남아 있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유배란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모두가 나를 받아주고 있는데 정작 내가 나 자신에게서 너무 멀리 와버린 상태일 수도 있다. 반대로 왕국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잠깐이라도 자기 자신과의 거리가 사라지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닌은 그날 밤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사막에 정착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삶을 버린 것도 아니다. 다음 날이면 다시 남편과 길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전과 완전히 같은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번 자기 안에 얼마나 넓은 밤이 있는지를 본 사람은, 다시 자신을 작은 방 하나의 크기로 믿기는 어려울 테니까.
어쩌면 그것이 카뮈가 말하는 왕국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도착해서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영토가 아니라, 아주 잠깐 자신에게서 유배되지 않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눈을 감으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별빛 같은 것.
사람은 결국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
다만 한 번 밤하늘을 본 사람에게는, 천장이 예전만큼 낮아 보이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