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게임이다. 무엇보다 묘한 건 왕이다. 왕은 고작 사방 두 칸 짜리 궁성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의 무력하다시피 해서 심지어 상대방 병졸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나는 이 점이 장기의 가장 고리타분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무기력한 왕과 왕을 비호하는 군대. 싸우는 이유는 오직 하나, 왕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격하고 수비한다. 먹히고 먹는다. 한 번 움직인 말은 무를 수 없다. 인생을 장기판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생은 몰라도 장기는 좀 아는 사람일 것이다.
장기가 인생을 닮았다면 번번이 예측을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장기판의 말들처럼 인생이란 종잡을 수가 없다.
상자 속 고양이는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독가스가 퍼지기 전에 상자를 열어 고양이를 꺼낸다면 고양이는 죽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 세계와는 조금 관계있는 일이다.
나는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다. 내게 소중한 것이 있다면. 찾아보면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서너 개쯤.
환상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친구다. 안으면 위로가 되는, 털이 부드럽고 귀여운 곰 인형처럼.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하지만 곰 인형을 안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날이 온다.
나도 잘 모르겠다. 세상 곳곳이 갈라지고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 분쟁과 갈등, 혐오와 폭력, 증오와 분노, 전염병과 기아. 전조는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굳이 누군가 개입하지 않아도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그게 수순이다. 다름 아닌 인간들이 자초한 일이다. 이기심과 믿음은 서로 무관한 듯 보이지만 두 개가 더해지면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세상과 남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이기심과 그래도 자신만큼은 끄떡없을 거라는 믿음이 만나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악의 에너지다. 어둠의 세력은 그런 틈을 귀신같이 파고든다.
나는 불길이 치솟는 도시가 지옥의 모습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옥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일상이 무너지는 게 지옥이었다. 작고 사소한 것들로 유지되는 곳이 세상이었다.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이 사라진 세상은 지옥과 다르지 않았다.
장기의 모든 말은 서로 협력해서 움직여야 한다. 한 개의 말이 독단적으로 움직여 공격하려 하면 적의 포진을 허물기 어렵고 오히려 전체 형세가 무너져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규칙이 절대적으로 들어맞는 건 아니다. 장기에 존재하는 수는 무궁무진하다. 장기는 저 넓고 빛나는 우주처럼 신비롭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