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델로의 희곡선1을 읽고 타인에 대한 주제넘음, 가식, 관념, 모순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1.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거죠에서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때로 진실은 드러나지 않을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있다. 모순되지만, 진실이 빛을 밝히는 순간 그 진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어둠속에 묻혀버린다.
상호간의 암묵적인 동의로 모순을 감싸안고 살아가는 경우 그것과 상관없는 타자에 의해 그것도 단순 호기심이나 쓸데없는 참견으로 그 삶의 방식이 깨어져 버렸을 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당사자가 그를 둘러싼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은 여러분이 그렇다면, 그런거죠... 정도일 것이다.
2.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잉태된 가족이 어느날 부터 작가를 찾아와 점 점 스스로 움직이고자 할 때 의 이야기라고 할까?
창작되어진 그들은 시작이 허구인 지라 그 결론이 이미 나와버린 상황에서, 되풀이되는 작품을 통해 영원히 살아가는 아이러니의 돌림표이다.
3. 엔리코 4세의 희곡은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척하며 미치지 않은 타인들을 향해 의사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모두 정신병, 날카로운 신경, 아이러니에 둘러싸인 사실공방(각자의 입장에선 진실이지만 결코 조율되지 않는), 괴기스러움이 묻어난다.
147 바로 여기서 모든 불행한 일들이 생겨요. 말들 속에서!
우린 모두가 자기 내부에 온갖 사물들에 대한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각자 자기 나름의 세계를요!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우릴 서로 이해할 수 있겠어요. 선생, 나는 내가 하는 말속에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면, 한편 듣는 사람 쪽에선 불가피하게 그들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로 그 말들을 받아들일텐데 말이죠? 우린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전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봐요, 내 연민이, 이여자에 대한 (어머니를 가리킨다.) 나의 연민이 이 사람 쪽에서 볼 때는 잔인한 짓 중에도 가장 고약한 것으로 바당들여진다 이거요.
191 (신경질이 나서 몹시 거칠게 어깨를 들먹이며) 어이구, 드라마는 없어! 다른 사람들도 다 자기 드라마가 있어요! 저 사람도 드라마가 있고(아버지를 가리킨다.) 당신 어머니도 드라마가 있어! 한 사람이 그렇게 너무 튀게 무대를 차지해서 다른 사람들을 눌러버리고 할 수는 없어. 하나의 조화로운 틀에다 모두를 다 담아야 돼. 그리고 공연할 수 있는 걸 공연해야지. 나도 잘 알아. 각자가 모두 자신의 내부에 자기 인생을 가지고 있고 그 걸 밖으로 표출하고 싶어 한다는 거. 바로 그게 어려운 점이라고. 다른 사람들과 배율을 맞추어서, 필요한 만큰의 것만을 밖으로 끄집어 내고 적은 부분이지만 그 안에서, 내부에 남아있는 나머지 인생 전불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게 말이지.
194 제가 말씀드렸던 그 영원한 순간이라는 겁니다. 선생, 저 앤, (의붓딸을 가리킨다.) 날 붙잡아다 꼼짝 못하게 하고, 내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고 부끄러운 그 한 순간에다 날 영원히 대롱대롱 매달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여기에 있는 겁니다.
200 (부드러운 톤으로, 겸손하게) 정말로 당신이 지금 어떠한지 알려면, 예를 들어 옛날의 당신이 어떠했는가를 보세요. 당신이 그 당시에 가졌던 모든 환영들, 또 당신한테 어떠어떠하게 보이고 실제로 당신에게 존재했던 당신 내부와 주위의 모든 사물들, 이것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 지금은 어떠한지를 보면 됩니다.그렇습니다, 선생, 과거의 그 환영ㄷ르이 지금은 더 이상 당신에게 똑같지 않다는 것,, 또 그 당시 당신에게 어떠어떠했던 모든 사물들이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 점들을 생각해 보신다면 갑자기 땅이 꺼져버리고, 무대 바닥을 말하는 게 아니고요, 온통 발 디딜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같은 식으로 오늘 당신이 느끼고 있는 '이 사람'이 , 즉 오늘 이러이러하다고 느끼고 있는 당신의 모든 실재가, 내일이면 환영으로 보일 운명에 처해 있다는 걸 추론해 보신다면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295 흥, 뻔뻔스럽게 감히 인간들이 누굴 도와주는 티를 내고 있어, 동정심 때문이지, 또 이미 세상 밖으로, 시간 밖으로, 인생 밖으로 밀려난 이 가엾은 인간이 성나서 발광하지 않게 하려고 그러지! 에, 그게 아니라면, 생각해봐, 이 가엾은 인간이 지금 같은 이런 수모를 겪겠는가? 저 인간들은 부당하게도, 그래, 매순간, 다른 사람들이 언제나 지들이 바라는 대로 있길 기대하지, 하지만 그건 전혀 수모는 아니야! 뭐냐! 그건 그 자들이 생각하는 방식이고, 보는 방식이고, 느끼는 방식일 뿐이지. 누구나 다 각자 자기 방식이 있어! 너희들도 역시, 너희들의 방식이 있지, 응? 틀림없지! 그럼 너희들의 방식은 어떤게 있을 까? 대다수 무리들이 가진 방식이지! 비참하고, 유약하고 불확실한 것이지... 그리고 다른 놈들은 그것을 이용하지, 너희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자기들의 방식을 너희들에게 받아들이게끔 만들지. 너희들이 지들 방식대로 보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야! 적어도 그렇게 되리라고 그 자들은 착각을 하지! 왜, 무엇이 그 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강요할 수 있게 만드는 걸까? 말 때문이야! 누구나 각자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나서는 다시 되풀이해 옮기는 그 말들!이러저러한 연론이란 건 바로 그런 식으로 형성이 되는 거야! 어느 날 어떤 사람에게 모두가 되풀이 해 옮기는 그런 말들 가운데 하나가 낙인찍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에겐 불행한 사태지.
297 말의 무게로 사람이 짓밟혀버리는 거? 아무 것도 아니야! 뭐냐면? 한 마리 파리새끼 같은 거지! 인생 전체가 온통 이렇게 말들의 무게에 의해서 짓밟혀버리는 거야! 죽은 것들의 무게지! 여기 내가 이렇게 있지, 네들 엔리코 4세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진정으로 믿을 수 있어? 하지만, 자, 보렴, 나는 살아있는 네들에게 말하고 명령하고 있잖아. 네들이 그렇게 하길 바라고! 네들한테는 지금 죽은 자들이 계속해서 삶을 산다는 이것도 장난 같아 보이지? 그래, 여기서는 장난이지! 그런데 여기서 한번 나가봐, 살아있는 세상으로. 날이 밝기 시작하지. 시간은 너희들 앞에 있어. 동이 튼다!네들은 말하지, 우리 앞에 놓인 이 날을 만들어 갈 거야라고! 그래? 네들이? 너희들은 모든 관습에게 절을 올리는 거야! 너희들은 낡아빠진 모든 관습에게 절을 올리는 거야! 너희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근데 그건 이미 사람들이 언제나 해왔던 말들을 ㅁ두 되풀이해 옮기는 것일 뿐이라고! 너희들은 지금 너희가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네들은 그저 죽은 자들의 삶을 되풀이해 반복할 뿐이야
300 이 친구들아! 자신이 미친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뭘 뜻하는지 네들 알고 있느냐? 그건 너희들 안에, 너희들 주위에 세워 놓은 모든 것들, 너히들의 그 모든 것을 구성하고 있느느 논리, 그 논리를 밑바닥 근본부터 뿌리 채 흔들어 놓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는 거야!에! 너희들, 미친자들한테 뭘 바라나? 미친 자들이란, 참 행운아들이지, 그자들은 논리가 없거든! 아니면 그 논리란게 있어도 하나 뿐인야.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는 하나의 논리! 언제든 변할 수 있어! 변할 수가 있다고! 오늘은 이렇고, 내일은 아무도 몰라, 어찌될지! 너희들은 자신을 강하게 억제하며 지키지, 하지만 미친 자들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아. 그 자들은 변화가 가능해
324 피란델로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주제는 인생과 형식의 관계를 다루는 것으로 피란델리스모라고도 불린다. '이 사상은 변하지 않는 하나의 형식 즉 외관 혹은 사회적 형식을 가지고서 한 사람의 가변적이고 늘 흐르는 실재 즉 내적 자아를 규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 안의 모든 것, 우리의 인생은 늘 가변적잉어서 일정한 하나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각자는 각기 다른 개체에 의해 '다른 ' 식으로 보인다. 우리 내면의 태도, 견해 역시 결론은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보였던 것이 내일이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고 믿는 그는 동시에 '십만 명'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를 보는 사람들이 자기들 수만큼의 각자 자신의 틀안에서 그를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는 결코 하나의 고정된 개성이 아니라 무수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어느 가면으로도 우리 존재의 깊숙한 내용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치를 형식에 전념하려는, 즉 어떤 일정한 식으로 그리고 오로지 그 식으로만 자신과 타인들을 가두려 한다는 것이다. 형식에 전념한다는 것은 진짜 감옥을 만들어 그 안에 주체가 스스로 갇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는 '인간사이의 몰이해와 의사소통 불능현상'을 만들어내는 심각한 결과를 야기 시킨다. 거기에서 그들의 고독과 사는 것에 대한 고통이 발생한다. 거기에서 그들의 고독꽈 사는 것에 대한 고통이 발생한다. 피란델로는 이점에 대해 그의 L'Umorismo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인생에 대한 이상, 어떤 절대적인 개념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시간, 사건, 운에 딸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감정을 지닌다.
작금의 논리학이란 여러 감정들에서 개념드을 추출해낸다. 그리고는
거기에 가변적이고 변화무쌍하게 늘 흐르는 것을 고정시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즉 상대적인 가치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미 인간이 그 자체로 지니고 있던 막대한
불행'을 한층 더 악화시킨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산다는 것을
느낀다'는 첫 번째 불행의 근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늒지 못한다. 나무에게 땅, 해, 공기, 빛,
바람, 비는 나무가 아닌 다른 어떤 것들이 아니다. 반대로 인간은
태어나면서 산다는 걸 느끼고 그 결과에서 기인한 환상을 갖게 되는
슬픈 특권을 지닌다. 즉 가변적이고 다양한 인생에 대해 가지는
내적인 감정을 자신의 외부적 현실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위의 외부적 현실이란 곧 하나의 형식을 뜻한다. 인간은 그저 '사는'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사는 것 이외에도 인간이 만든 법, 도덕, 관습 등 온간 사상과 고정관념의 생활 형식에 묶여 고뇌하게 된다. 산다는 것을 느끼면서 겪는 고통 그 위에, 인간은 인생에 대해 가지는 다양한 내부의 감정들을 하나의 절대적인 외부적 형식 속에 가두려한다. 따라서 인간은 더욱 불행해진다. 그러나 인간의 및나는이성이 규정지어 만든 온간 절대적인 신념들이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또 인간간의 관계나 공간에 따라 그 가치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다를 수 있다. 한 가지 기준에 따라 항상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만은 없으며 서로 다른 다양한 진실들이 존재한다. 그의 작품들은 바로 이처럼 변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는 '가변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서로 고통을 주는 인간의 미극적 현실을 다루고 있다.
인생은 계속해서 흐르는 것인데 우리는 그걸, 우리의 안과 밖에,
일정하고 한정된 형식으로 붙잡아 고정시키려 애쓴다. 왜냐면
우리가 이미 고정된 형식들이기 때문이다. 그 형식들은 다른
움직이지 않는 것들의 와중에서 움직이고 있는 까닭에, 인생의
흐름의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굳어지다가 멈추진 않더라도 이미
조금씩 늦추어지게 되면 그때에, 그 형식들은 흐름을 뒤쫓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지속적인 흐름을 붙잡아 안에다 고정시키려
하는 그 형식들이란 개념들과 이상들이다. 우리는 이 개념들과
이상들에다, 우리가 창초해내는 모든 허구들 즉 우리가 형식의
상태 속에 일정하게 세워놓으려 하는 모든 조건들을, 일관성 있게
보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 안에 있으며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고 우리 안의 인생이라는 그 흐름은, 우리가 하나의 의식을
구성하고 하나의 개성을 만들기 위해 불가피하게 필요로 하는
한계선 너머로든, 제방 벽 밑으로든, 구별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흐른다. 폭풍우가 부는 순간이면 그 흐름에 치여 우리의 모든
고정된 형식들은 비참하게 부서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또한
제방 벽 밑으로든 그 한계선 너머로든 통과하지 못하는 흐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는 뚜렷하게 정체를 보이던 그 흐름이, 또
우리가 애정을 갖고, 우리에게 부과된 의무감에서, 우리가 설계한
습관대로, 정성 들여 운하를 터놓아 주었던 그 흐름이 그만 어느
순간엔가 가득 범람하여 모든 것을 전복시켜버린다. 불안해진
영혼들은 거의 끊임없는 용해 상태에 놓이고 딱딱하게 응고되어서
하나의 혹은 다른 형식 속에서 편안히 쉬던 볻 안정된 상태의
영혼들에게도 용해는 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즉 인생의 흐름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늘 움직이고 융해되는 영혼에 비해,
변하지 않는 이목구비로 늘 고정되어 있는 우리의 육체는 이따금 고통을 나타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