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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작가의 어머니가 치매를 앓기 시작하면서 돌아가실 때까지의 문병 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가 40대 중반일 무렵 어머니가 교통사고 이후 홀로 생활이 불가능해져서 함께 생활하다가 처음에는 치매임을 알지 못하다가 변하는 모습에서 병원으로 옮긴 후 치매 진단과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요양병원에서 생활이 시작되고 작가가 어머니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문병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외국이든 한국이든 노년의 질병과 돌봄은 돌보는 이의 관점에서 서술될 수밖에 없다. 고통의 시간이 시작될 때 변해버린 부모의 모습에 힘들어지기도 하고 육체만이 남은 노인의 모습이 나의 부모인가 싶어질 때도 있다. 또한 부모의 모습은 나의 미래라는 생각이 짙어지는 중년의 시간들은 또다시 삶의 관점들이 변화하는 시기이다.
프랑스에서 나름 유명한 좌파 할머니 작가라고도 말할 수 있는 저자의 이 글은 문병일지를 쓰는 글쓰기로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도 작가로서의 기질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치유 프로그램 중 글쓰기 치유도 있지만 '작가의 말'을 통해서 보면 이 글을 쓸 때는 피폐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하게 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기록과 그 순간 속에서 언뜻 보이던 자신의 어머니의 본 모습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순간의 기록을 수정하지 않고 출간을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출간한 작가의 말에서 소회를 읽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타인의 이야기가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 이야기의 경우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미래를 살고 있기에 찬찬히 읽어 보게 된다.
국내에서 출간된 간병 일기나 간병 경험 에세이를 읽을 때 전해지는 '감정의 결'과는 조금은 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보다는 부모 자식 간의 독립이 일찍 이루어지고 '타자' '개인'으로서의 개념이나 인식이 더 사회적으로 확립되어 있기에 적정한 거리감에서 오는 감정과 그럼에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서 전해져 오는 감정의 밀도도 함께 읽었다.
기록 당시에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작가는 이 글의 출간이 애도의 과정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다는 작가의 의식은 제3자의 시점과도 같았다가 1인칭 시점 같기도 한 다층적 관점으로 요즘 유행하는 부캐와 본캐의 혼합적 시선의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은 그런 관점은 좀 덜 드러나지만 고통의 잔재로서 읽어주길 바란다는 말이 고통도 기록하는 마음을 새삼 되새겨 보게 한다. 고통의 잔재로서의 기록.
소설인줄로만 알았는데 작가의 병상일기 형태였다
자꾸만 나의 엄마가 생각이 나서 책장을 넘기기 힘겨웠다
어떤 책이었던가, 영화였던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비슷한 문구가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 후, 네가 없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고
엄마도 내게 그런 존재다.
독립을 일찍 한 편이라 집을 나와서 살게된게 이제는 함께 산 날을 앞질러 가려 하고있지만.. 멀다는 이유로 일년에 한 두번 얼굴 보기가 힘들지만, 늘 이 세상에 있는 존재.
너무나 당연한 그 사실이 이제 사실이 아닐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가끔 악몽으로 나타나기도 할 정도로 무섭다
작가는 그런 두려움 속에서 이제는 사라질지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들을 기록해나가고 있다.
너무 적나라해서 거북하고 나까지 괴로워지기도 한다
이 얇은 책이 차라리 빨리 끝났으면 하기도 했다.
내일은 부모님께(너무 엄마만 찾았던가 뒤늦은 후회가..)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그런 책…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