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입을 모아 "이제 노벨문학상만 받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필립 로스는 작가에게 허락된 거의 모든 것을 성취한 작가다. 그런 그가 지난 2012년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저는 다 끝냈습니다. <네메시스>가 제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네메시스>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nemesis를 찾아보니 응당받아야할 벌, 천벌로 나와있다.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1944년은 폴리오(소아마비)의 공포속에 있던 시절이었다. 인간이 세균으로부터 불가항력에 처해 있는 존재, 세상에서 가장 미물에 대항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무엇을 잘못하여 인류가 이렇게 벌을 받고 있을까? 하지만 주인공 켄터가 겪은 죄책감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꽉 막히 사람의 전형이라 생각든다.
우연히 발생한 불행에 의미를 두고 무게를 둔다면
그것으로 나에게 정서적 학대까지 가한다면
삶이 무너지지 않을수 있을까?
내가본 주인공은 가진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것에만 집중하고 안타까워 하는것이
가장 큰 불행에 원인이었던것 같다
그는 침착하고 이성적인것처럼 보였지만
등장인물중 가장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불행을 핑계삼아 주변에서 내미는 손길도
스스로 판단하고 거부하고
그런 행위를 배려라고 옳은 선택이라고 여기는 행동도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불행은 인생에서 최소 한번씩은 겪는다
하지만 그 불행 하나로 인생 전체를
버리고 외면하는건 너무 아깝지 않을까?
나를 불행에 빠뜨리는건 우연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인것 같다
이야기는 폴리오라는 전염병이 극성을 부린 1944년 여름 미국 뉴어크의 한 유대인 마을에서 시작된다.
'네메시스'는 우리나라 말로 '천벌'이다.
그 당시만 해도 미지의 전염병이었던 폴리오를 많은 사람들이 천벌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진일보한 지금도 적지 않은 종교인들이 하늘의 벌을 명명해 내고 있으니 그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이 책은 생물학적 천벌이 아닌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스스로를 짓누르는 천벌을 받는 버키 캔터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출산중에 죽은 어머니도, 도둑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나쁜 시력 때문에 군대에 가지 못한 것도 모두 버키 캔터에게는 천벌이다. 폴리오 처럼 그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짐을 혼자 짊어 맨 사람들이 있다. 결국 스스로 짊어 맨 짐에 주저 앉게 되어있다. 모두가 자신의 관리 영역 안에 있다는 오만, 모든 것의 의미를 찾으려는 오만으로 들쳐 맨 짐이기 때문이다.
책 속의 주인공인 버키 캔터가 그렇다. 의무감과 책임감에 똘똘 뭉친, 아이들의 존경과 주변 사람의 신뢰를 한몸에 받던 젊은 남자가 결국 자신의 권한 밖의 책임과 의무에 무너져 버렸다.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어졌다. 감정적으로 그가 되어버렸다.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화자로 버키의 과거를 조망하는 아널드 메스니코프는 운동도 못하고 수줍고 조용한 놀이터의 아이로 버키와 정반대되는 인물이다. 똑같은 해에 풀리오에 걸려 장애를 얻었지만 그냥 불운 했을 뿐이라 여기며 떨쳐내고 불운에 덕을 본 사업도 운이 좋았다 여긴다. 그는 천벌이 아닌 우연속에 살아가고 있다.
가혹한 운명은 그 자체로 가혹한가 아니면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가혹해 지는가?
똑 같은 일을 당해도 누구는 우연으로 치부하고 누구는 운명으로 여긴다.
우연과 운명..그것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은 그냥 모르는 것으로 두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짐만 지자.
주변의 손길을 뿌리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