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곳에 온 이후로 기한이 지난 임대 묘지들이 수없이 파헤쳐지고 청소되며 고인의 유골이 납골당으로 옮겨지는 걸 목격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망자들은 이제 더는 아무도 찾지 않는 분실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늘 그 모양이다. 죽은 지 오래될수록 산 사람들에게 끼치는 죽은 사람들의 영향력은 미미해진다. 세월이 삶을 풍화시킨다. 세월이 죽음을 풍화시킨다.
나와 세 명의 산역꾼, 우리는 하나의 묘도 방치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시 당국의 안내문이 붙은 걸 보며 곤혹스러워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곳에 잠든 고인의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은가.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묘지에 수많은 묘비명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흐르는 세월의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추억을 꼭 붙들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묘비명은 이것이다. “죽음은 당신 꿈을 꾸는 사람이 더는 아무도 없을 때 시작된다.”
일단 묘지의 철문을 닫고 나면 모든 시간이 온전한 내 것이 된다. 오직 나만이 시간의 주인이다.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건 값진 일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 중 하나가 아닐까.
모두가 떠나고 사샤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혹시 들은 것도 저장하는지 물었다. 그러니까, 추도사를 어딘가에 따로 기록해두는지.
“그건 왜?”
“레오닌의 장례식에선 어떤 말이 나왔을지 궁금해서요.”
“그런 건 저장 안 해. 채소는 올해 자랐다고 이듬해에도 자라지 않아. 매년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해. 방울토마토는 예외지만, 방울토마토는 혼자서로 잘 자라. 아무렇게나, 어디서나.”
“왜 그런 얘길 하시는 거예요?”
“삶이란 이어달리기와 같아, 비올레트. 내가 누군가에게 바통을 넘기면,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바통을 건네지. 내가 너에게 바통을 넘겨줄게. 언젠가 너도 다른 누군가에게 바통을 건네도록 해.”
내가 헛되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면, 사샤는 나를 설득했다. 필리프 투생이 악의 씨를 뿌렸다면, 사샤는 선의만을 심었다.
“비올레트, 담쟁이는 나무들을 숨 못 쉬게 해. 잊지 말고 잘라줘야 해. 절대 잊어선 안 돼. 너도, 생각들이 너를 어둠 속으로 끌로 들어가면 그 즉시 전지가위를 들고 괴로움을 잘라버려.”
“비올레트, 계속 그렇게 그 생각을, 가슴속에 단단히 붙들어 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