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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트, 묘지지기 (발레리 페랭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비올레트, 묘지지기

발레리 페랭 지음
엘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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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온 이후로 기한이 지난 임대 묘지들이 수없이 파헤쳐지고 청소되며 고인의 유골이 납골당으로 옮겨지는 걸 목격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망자들은 이제 더는 아무도 찾지 않는 분실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늘 그 모양이다. 죽은 지 오래될수록 산 사람들에게 끼치는 죽은 사람들의 영향력은 미미해진다. 세월이 삶을 풍화시킨다. 세월이 죽음을 풍화시킨다.
나와 세 명의 산역꾼, 우리는 하나의 묘도 방치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시 당국의 안내문이 붙은 걸 보며 곤혹스러워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곳에 잠든 고인의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지 않은가.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묘지에 수많은 묘비명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흐르는 세월의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추억을 꼭 붙들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묘비명은 이것이다. “죽음은 당신 꿈을 꾸는 사람이 더는 아무도 없을 때 시작된다.”

일단 묘지의 철문을 닫고 나면 모든 시간이 온전한 내 것이 된다. 오직 나만이 시간의 주인이다.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건 값진 일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 중 하나가 아닐까.

모두가 떠나고 사샤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혹시 들은 것도 저장하는지 물었다. 그러니까, 추도사를 어딘가에 따로 기록해두는지.
“그건 왜?”
“레오닌의 장례식에선 어떤 말이 나왔을지 궁금해서요.”
“그런 건 저장 안 해. 채소는 올해 자랐다고 이듬해에도 자라지 않아. 매년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해. 방울토마토는 예외지만, 방울토마토는 혼자서로 잘 자라. 아무렇게나, 어디서나.”
“왜 그런 얘길 하시는 거예요?”
“삶이란 이어달리기와 같아, 비올레트. 내가 누군가에게 바통을 넘기면, 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바통을 건네지. 내가 너에게 바통을 넘겨줄게. 언젠가 너도 다른 누군가에게 바통을 건네도록 해.”

내가 헛되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면, 사샤는 나를 설득했다. 필리프 투생이 악의 씨를 뿌렸다면, 사샤는 선의만을 심었다.
“비올레트, 담쟁이는 나무들을 숨 못 쉬게 해. 잊지 말고 잘라줘야 해. 절대 잊어선 안 돼. 너도, 생각들이 너를 어둠 속으로 끌로 들어가면 그 즉시 전지가위를 들고 괴로움을 잘라버려.”

“비올레트, 계속 그렇게 그 생각을, 가슴속에 단단히 붙들어 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2022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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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불빛이 켜졌다고 꼭 된다는 건 아니야."
"될거야."
마이클이 말했다.
"둘 다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걸 우리가 알 방법은 없을까?"
"그런 건 없어."
기비 물음에 리지가 말했다.
"모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책읽는곰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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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선 기세가 팔 할이야. 실령 승부에선 지더라도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차라리 감춰. 니 생각, 감정, 숨소리까지,,,, 그 어떤 것도 상대에게 드러내지 마."

"모든 것은 체력이다... 불쑥 손이 나가는 경솔함, 대충 타협하려는 안일함, 조급히 승부를 보려는 오만함... 모두 체력이 무너지며 나오는 패배의 수순이다. 실력도 집중력도, 심지어 정신력조차도 종국에 체력에서 나온다. 이기고 싶다면 마지막 한 수까지 버텨낼 체력부터 길러."

"그렇게 견디다가 이기는 거요. 쓰라린 상처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돋고! 그렇게 참다 보면 한 번쯤은 기회가 오거든.... 조국수. 바둑판 위에선, 한 번 피하기 시작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승부 각본집

윤종빈 외 1명 지음
스튜디오오드리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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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우리를 계속 살게 도와주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종교가 있으면 자살이 ‘그릇된 짓’이라는 생각이 윤리적 저지책 역할을 한다. 물론 죽음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칠 영향이나 모방 자살 염려도 자살을 저지한다. 또 앞에서 봤듯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진화적 항상성(내부와 외부의 자극에도 형태와 생리적 특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것 - 옮긴이)이라는 자기 보존 본능도 있다.
인지 붕괴에 빠지면 이런 장벽들이 하나씩 무너진다. 의미 있는 생각을 하는 사고력을 잃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만 몰두한다. 정상일 때는 고통의 숨은 의미를 찾는 생각이나 영적인 생각을 낳는 추상적인 사고를 한다. 그런데 자살 앞에서는 이런 사고가 놀랍도록 사라진다. 슈나이드먼은 "자살학에서 가장 위험한 어휘는 네 글자로 된 단어(욕설 fuck을 의미 - 옮긴이)뿐이다." 라고 말했다. 달리 말해 자살 의향자는 모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는다. 상황이 흑백이 되었고, 은유적 미묘함 따윈 없이 오직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

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제시 베링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지음
더퀘스트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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