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너무나 나 같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정확한 문장으로 짚어낸다" "표현력이 대단하다"는 평을 받으며 독자들의 마음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진단해온 《라비우와 링과》 김서해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여름은 고작 계절》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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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고작 계절 내용 요약 🌞
《여름은 고작 계절》(김서해, 위즈덤하우스, ISBN: 9791171713929)은 《라비우와 링과》로 주목받은 김서해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로, IMF 외환 위기 이후 200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소녀 제니의 우정과 성장통을 그린다.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 질투와 열등감, 사랑과 상처로 얼룩진 관계를 섬세하게 풀어내며, 청소년기의 복잡한 감정과 자아 형성을 탐구한다. 2025년 6월 출간된 이 작품은 가혹하면서도 애틋한 우정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전한다.
한번쯤은 떠올려봤던 생각이나 감정인데 글로 적어보거나 말로 뱉어본 적은 없는 감정들. 작가는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이 미묘한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세밀한 감정들이 꽤 적확해서 이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그런 느낌을 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실제로 작가의 경험 기반 글이었음)
윤리적,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피로도가 큰 책이라는 서평을 봤다. 근데 나는 오히려 사건이 벌어진 후 변명인지 후회인지 모를 그 감정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화자를 보며 잘못의 유무를 내가 판단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사고가 일어났고, 이 친구는 이런 감정을 느꼈구나 라고 흐름을 따라가면서 읽었다.
왜냐면 대부분의 10대 소녀는 항상 관계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사람들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며, 자기 가치관에 맞춰 판단하기 어려운 시절을 보냈을 거라서.
책의 전반적인 구성이나 화자의 인간성보다는 맘에 와닿는 구절이 많아 오히려 좋았던 책이다.
✏️
P.8
과거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매번 다른 모습이 된다. 기억들은 계속 변화한다. 하지만 내 이야기에는 바뀌지 않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고, 나는 그것을 빈틈없이 헤아리고 싶다.
P.9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함부로 선망하고 가진 것을 폄하하는 데 일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천국은 언제나 밖에 있고, 집은 지옥이다.
P.11
무엇이든 밀도가 너무 높으면 다른 것이 끼어들 수 없게 된다. 엄마는 어느새 온몸이 슬픔으로 이루어진 금속이 되었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쉬지 않았다.
P.26
입학한 첫해 동안 일기를 쓸 때마다 서럽다는 말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수없이 고민했다. 서럽다는 'sad'와 달라서 더 길고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했다.
서러움은 억울함이 잔뜩 섞인 답답한 슬픔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밑바닥에 자글자글 깔린, 그런 슬픔이었다.
P.28
그 순간만큼은 엄마가 정말로 구원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기쁨이라는 확신이 어쩐지 위험해 보였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아서 일부러 벅차다, 충만하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 같았다.
P.30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꼭 머리통 너머의 미래를 보려고 한다.
P.32
권리를 가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게 그건 당신 탓이라고 누가 함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상황도, 맥락도 살피지 않으면서, 판사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리 쉽게 판결을 내리려고 했을까.
P.37 🩵
사람은 어떻게 빚어지는 걸까. 인상 깊은 사람과의 충돌 속에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의 교집합 속에서 삶이 매일같이 둔탁하게 움직인다.
P.43
외국어를 구사하는 일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것과 비슷하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니까. 계속해서 주춤거리거나 나아가거나 돌아서야 한다.
머릿속의 생각, 자극, 불편함을 여실히 느끼면서, 내가 가진 단어들을 재배치하곡 또 재배치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대 위에 홀로 남겨지는 듯한 묘한 긴장 속에 놓인다.
이 춤에는 웅크리는 안무도 없다.
P.50
🩵
내가 나에게만 중요하다는 사실은 가끔 너무 잔인하고, 다행이다.
P.66
가만히 있는 것도 욕망이라니, 가만히 있기를 선택하는 것도 실은 무언가를 행하는 것만큼이나 욕망으로 가득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내가 가만히 있었던 순간들은 절대로 조용하거나
단순하지 않았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도, 보기 싫은 모습을 보아도 입을 열지 않는 건 아주 빠르고 요란한 동조였다.
P.68
한 사람이 폭력을 당할 때,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샅샅이 이해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건 폭력을 멈추는 일이 아닌가?
나는 내 얼굴을 보고 있었어야 했다. 나의 얼굴과 내 머릿속에 든 생각, 나의 끔찍한 방관을 직시해야만 했다.
P.236
시에 대해 생각하고, 한나에 대해 생각하고, 관계들에 대해 생각했다. 정서, 분위기,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무언가를 새롭게 알게 되는데도, 배우고 깨닫는데도 왜 마음의 틀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왜 원하던 것을 계속 원하고, 두려운 것은 계속 두렵고, 집착을 놓을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P.243
"제발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제니."
P.250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도저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흐리멍텅한 혼란일 뿐이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는 것을 특별하고 멋진 일로 포장하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사랑은 자신을 조각내어
검열하고 상대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는 일이다. 수많은 단점을 골라내 억지로 감추거나 바꾸느라 자신의 초상을 일어버리는 일이다.
사랑할 때 나는 가려지고 훼손된다.
하지만 그게 원래 사랑이 하는 일이라면, 사랑의 목적이라면.
나를 가리고 훼손하려고 사랑이 나를 찾아온 것이라면.
그렇다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적응과 비슷해진다. 몸과 마음을 깎고 자신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땅에, 모르는 언어에, 미지의 두려움과 아름다움에 공명하는 일, 사랑은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P.338
글을 마치면서, 이제야 사람들이 어떻게 상실의 슬픔을 회복하고 사는지 알 것 같다. 수없이 쌓인 슬픔의 부스러기 위에서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만이 미래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