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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푸른숲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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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바다
#나와당신의작은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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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거실이 좀 더 넓어서 양이들과 편히 지냈으면하고 바라거나, 베란다가 조금만 더 넓어 테이블을 놓고 거기에서 햇빛받으며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만 가지고 있었다.
집안이 여행지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나에겐 신선한 책이다. 집안 살림 하나하나를 이렇게 소중히 대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다시 한번 읽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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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게 머무르는 곳이지만 가장 여운을 남기는 현관은 우리의 작은 공항이다. 여행에서 힘겹게 돌아온 당신을 껴안고, 야근으로 지친 당신을 다독이고, 취해 비틀거리는 당신을 부축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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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고 싶은 말을 쓰지 못한 채 당신에게 건네진 편지. 그곳에 채 쓰지 못한 나의 문장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것. 쓰지 못했지만 당신은 읽어주고, 말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들어주는 것. 당신이 쓰거나 말하지 못했지만 만약 내가 당신의 말을 읽거나 듣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명확하게 들리는 것을 듣는 능력은 실은 능력이 아니다.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확인'이나 '점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는 일에는 사랑의 능력이 필요 없다. 만약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서 시작된다면, 그것은 빛이 너무 많은 공간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곳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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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어떤 유물이나 그림을 보기 위해 먼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는 이유가 단지 원본을 본다는 만족감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가서 <사이프러스 나무와 별이 있는 길>을 직접 보는 일은 1890년의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흐를직접 마주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캔퍼스에 새겨진 실제 물감의 움직임을 따라 우리의 시선이 이동할 때, 130년 전 고흐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눈과 손을 움직이고 있다. 고흐의 시간과 내 시간은 이 그림을 앞에 두고 만난다. 그의 그림을 직접 본다는 건, 고흐의 말과 표정과 감정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먼 곳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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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내 삶도 천천히 살펴볼 때다. 가끔씩 천천히 거울에 담긴 '얼굴'을 바라본다. 그럴 때, 얼굴은 먼 곳이 된다. 타인처럼, 낯선 여행지의 풍경 처럼, 때론 달의 뒷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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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일보다 극복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해도 결국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체념하면 어려운 것들이 조금은 쉬워지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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