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가 그린 연인들의 모습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침해 보인다. 살짝 걷힌 커튼 사이로 환한 빛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작품 <키스>의 배경은 한낮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빛을 피해 어두운 골방에 숨어 입을 맞추고 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윤곽선이 뭉개져 하나로 합쳐질 듯하다. 하지만 이곳에 사랑의 환희는 없다. 그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관계를 놓지 못하는 희망 없는 몸짓이 있을 뿐이다. p.53
<태양>은 뭉크에게 유명세를 안겨 주었던 초창기의 어두운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눈부신 색채를 안고 있다. 내게는 뭉크가 작품을 통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있지만 저 환한 빛으로 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잘 되지 않더라도 힘을 내 볼 거라고. 그래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어둠보다는 빛을 이야기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아마도 이 작품이 그 유명한 <절규>를 제치고 지폐에 오른 이유도 작품이 품고 있는 희망의 빛 때문이 아닐까. p.58
가끔은 엄마가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엄마에겐 왜 최소한의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지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건 자기 자신보다 더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란 걸, 바로 나 때문이란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정작 사람이 강해지는 건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닌, 자존심마저 던져 버렸을 때다. -<응답하라 1988>, '월동 준비' 편 p.164
외로움이란 걸 알게 될 때쯤에는 이미 혼자 잘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요. p.186
나이를 먹어 갈수록 외로움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은 타인과의 부대낌에서 오는 감정들이었다. 특히 가까운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더 깊게 마음을 상하는 일이 많았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고 내 뜻대로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내 잘못이 당연히 컸다. 그렇지만 확실히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서로의 가장 민감한 부분들을 건드리는 일이 잦았다. 혼자라서 고독하다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이해받지 못할 때 오히려 더 외롭다고 느꼈다. p.187
첫 사회생활에서 서비스 업무를 질리도록 한 뒤로는 어디에서도 직원의 친절함을 크게 바라지 않게 되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분이 몇 명에게 시달렸을지, 그중에 몇 명이 눈물을 속으로 집어삼키게 했을지 나는 모른다. 오히려 눈이 가는 것을 그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다. 상대에게는 처음이지만 자신에게는 수천 번을 반복했을 어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따스함이 어리도록 하는 것은 진정 엄청난 능력이다. p.260
그것이 원래 미술관의 매뉴얼이었는지 아니면 직원 개인의 호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 순간 직원의 진심을 다한 따뜻한 말투와 표정만큼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자신에게는 매일 하는 지겨울 노동에 불과할 어떤 일에 마음을 온전히 담는다는 것, 그 시간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에는 뜻밖의 잔잔한 감동이 있다. p.261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네.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 p.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