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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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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줘서 고마워요 (일하는 행복을 실현한 무지개색 분필 회사의 기적)의 표지 이미지

일해줘서 고마워요

고마쓰 나루미 지음
책이있는풍경 펴냄

어린 학생 시절의 그 친구를 기억한다.
어딘가 말이 어눌고 쉽게 화를 내서 모두가 '쟤 좀 이상해'라고 생각하던 아이.

십수 년 뒤에 사회복지기관에 등록된 내 가게로 그 아이가 지적장애인으로서 의무고용이 되어서야 당시 이 친구가 지능점수가 낮은, 그러나 일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지표를 가진 장애인이었다는 걸 알았다. 여전히 그림을 잘 그려서 가게를 본인의 그림으로 꾸미고, 훈련받은대로 주문을 받고 내가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친구.

몇 년 뒤 그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그 친구의 고용은 의무적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사람 역시 관련 업계에 있던 사람이니 그 룰을 잘 알고 있으리라 여겼고. 그런데 내가 가게를 옮기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친구의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현 주인이 그 친구의 고용시간을 자꾸 줄이고 있다고. 그 친구는 정해진 시간에 배운 만큼의 일을 해내도록 훈련을 받았는데 그 시간에 일을 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훈련이 무용지물이 된다고 했다. 친구는 갑자기 일방적으로 바뀌어버린 근무시간을 이해하지 못해 계속 같은 시간에 같은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고, 고용인은 화를 내며 돌려보내고, 그 순간 기억에 혼선이 온 친구는 가게 앞에서 패닉이 와서 난동을 피운다고. 이 친구의 패닉증상은 비명과 고함, 자해였다. 나는 이미 정해진 매뉴얼만큼의 인수인계를 끝낸 사람이었지만 향후 몇 달간은 그 친구의 입장에서 고용인과 많은 대화를 해야했다(사실 그 사람이 법을 어긴 건데 편법이 많았던 때라 처벌이 제대로 안됐다).

낮은 지표의, 일반인과 많은 차이도 나지 않는 가벼운 수준의 지적장애인이었던 이 친구 정도만 돼도 여러 문제가 생긴다. 그 친구와 같이 일했던 그 몇 년은, 근무 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해해도 계산대 맞은편의 손님은 모르니까, 이해하지 못하니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이 친구가 패닉에 빠지고 나는 심신이 지쳤다. 솔직히 가게를 인계하고 나오면서 말할 수 없는 해방감에 주 원인은 이 친구였을 거다.

대충 그런 거다, 장애인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여기에는 장애인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어 비장애인의 입장은 미담 정도로 밖에 나오지 않는다.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들에게 감화되어 이하생략. 일하는 기쁨과 남을 도우면서 얻는 행복을 넘어선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지 그 긴장감 넘치는 시간은 서술되지 않았다. 아마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서비스 업종이었다면 이런 미담은 없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계속해서 그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아직, 일부의 사람들만이 그 현실 속에서 일한다. 유사한 경험을 한 나도 고개를 내젓게 되는데 과연 책 속의 사람들만큼 감화되어 살아가는 사회가 오기나 할련지. 나는 단지 그런 사람들이 대단하다 감탄하고 그런 사회가 되기를 노력하는 그들을 응원만 할 소시민일 뿐이다.
👍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추천!
2021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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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희

@kangsanghee

보면서 에반게리온이 자꾸 생각나는데.. 내가 씹덕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 애니에서 에피소드 마지막에 둘이 남아있는 그 장면이 떠오른다고..

작별인사

김영하 (지은이) 지음
복복서가 펴냄

2022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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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희

@kangsanghee

읽다보면 그 시절의 어른들이란 사실 지금의 우리 부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런 사람들 밑에서 자란 부모님의 가치관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 건지 알아도 상처받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내가 상처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건 체념일까 희망일까.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건 사랑인가 미련인가.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연인보다 더 복잡 할 때가 많다.

밝은 밤

최은영 (지은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22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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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희

@kangsanghee

요즘은 기행문이 이렇게 설렘.
내가 가 본 장소에 대해서는 공감과 함께 나와는 색다르게 즐긴 시각을 새롭게 본 것에 대한 재미,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는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에 읽게 되는게 아닐까.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은이)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 떠나고 싶을 때 추천!
2022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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