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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문학세계사 펴냄

한 장소에서 두 명의 대화 만으로 진행되는 소설이기에
대학로 소극장에서의 작은 연극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조금 섬뜩한.

마지막 역자의 글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나의 내부를 가르고 지나간 정신상태를
순서대로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황당함 > 역겨움 > 섬뜩함 > 충격"
아마도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독자들의 감정이 비슷할 것 같다.

좋아하는 내용은 아니기에 길지 않은 소설이어서 다행이었다.


- “연극은 그만 집어치우시오. 대체 나를 언제부터 쫓아다닌 거요?"
“저런, 대단한 자아도취로군! 내가 당신을 쫓아다녔다니!”
“처음에 당신은 자기 쾌락을 위해 아무나 붙잡고 들들 볶아대는
이야기를 내게 억지로 들려주는 척했소.”
"그건 사실입니다.”
"그 아무나가 그럼 늘 당신 손에 아내를 잃은 사람들이었단 말이오?”
"뭐, 뭐라구요? 그럼 당신이 이사벨의 남편?”

- “이런 무식한 사람 같으니, 화장법이란 보편적 질서의 학문이자
이 세상을 결정하는 지고의 도덕률이라오. 이처럼 기막힌 용어를
미용사들이 들먹거린다 해서 내 잘못은 아닙니다. 만약 내가 당신한테
덥석 달려들어 모든 걸 까발렸다면 그건 화장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을 겁니다. 애당초 당신이 타깃이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신성한
현기증 속에서 실감해야만 했으니까요.”

- "이 자 말이오!"
제롬은 빙그레 웃고 있는 텍스토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공공질서의 담당자들께서는 그러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다시금 앙귀스트에게로 고개를 돌렸을 땐
흡사 이런 생각을 하는 표정이었다 : '웬 미친 녀석이야?'

- "하지만 나더러 얘기하라고 명령하는 게 자네인걸. 자네가 그 머리 속에
설치해놓은 철통 같은 방어벽이 이제 더는 지탱할 수가 없게된 것이네.
이젠 너덜너덜해졌다고, 지난 10년 동안이나마 자신한테서 결백을
요구할 수 있었던 걸 다행으로 여기게나. 오늘 아침 자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르셀로나로 떠날 채비를 했지. 그러다 우연히달력에 눈길이
갔던 거야. 1999년 3월 24일이라는 날짜에. 그래도 자네 머리는,
그 날짜가 살인행각 10주년이 되는 날이라는 걸 자네자신한테 알려줄
경보벨을 건드리지 않을 만큼은 조심스러웠지. 하지만 자넨 나한테까지
그걸 덮어둘 수는 없었어."

- 벽에다가 머리를 처박을 때마다 그 남자는 똑같은 고함소리로 자신의
동작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외치던 소리는 이런 것이었다.
“자유! 자유! 자유!”
2021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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