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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행동하면 그 행위는 스스로 해명 될것이고, 당신이 행한 다른 모든 성실한 행동들도 자연히 설명 된다.
하지만 순응하는 행위는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독자적으로 행동하라. 당신이 예전에 독자적으로 행동했던 것들이 지금의 당신을 정당화 해줄 것 이다.
위대한 행위는 미래에 호소한다. 오늘 내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단호하게 옳은 일을 할수 있다면, 나는 예전에도 그렇게 올바른 행동을 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과거의 올바른 행위는 지금의 나를 정당화 해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 한다면, 지금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라.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결국엔 항상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의 힘은 차곡차곡 쌓인다. 지난날에 행한 미덕의 힘이 오늘에 미친다.
유명 인사가 식사를 함께 하러 우리 집에 온다고 하자. 나는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내 기분을 맞추어주길 바란다. 나는 그를 중요한 인물로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맞이하고 싶다. 손님에게 친절해야 하겠지만 나자신을속이면서그렇게하지는않을것이다.
이 세상의 매끈한 평범함과 비열한 만족감에 과감히 맞서고 그것을 질책하자. 인습과 거래 행위와 관청의 면전에 모든 역사의 귀착점인 다음과 같은 사실을 던져주자. 인간 행동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 행동의 원인이 된 위대한‘사상가’와‘행위자’가 있다는 것, 참된 인간은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도 속하지 않고 만물의 중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참된 인간은 한사람 한사람이원인이고, 국가이고, 시대이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공간과 수학과 시간이 요구된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마치 그에게 예속된 부하 처럼 그 참된 인간의 발자취를 따르게 될것이다.
모든 역사는 몇몇 용감하고 열정적인 인물의 전기로 간단하게 환원되는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알고, 모든 것을 발아래 두어야 한다. 세계가 나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이므로, 고아나 사생아 혹은 도둑놈처럼 이곳 저곳을 엿보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살금 살금 숨어 다녀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은, 탑을 세우고 대리석에 신상을 조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힘에 상응하는 가치 있는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지 못하는 탓에 탑과 신상을 보면서 비참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의 것이다. 그의 주목을 끌기 위해 청원하고 있으며, 그가 능력을 발휘해서 자신들을 소유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의 눈 앞에 걸려 있는 그림은 그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이 그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칭찬을 바라며 호소하는 그림을 놓고 어떻게 할지 그가 결정하는 것이다.
‘신뢰받는 자’는 누구인가? 보편적 신뢰의 근거가 되는 본래의 ‘자신’이란 무엇인가?
과학을 당혹스럽게 하는 저 별, 독립심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으면 사소하고 불순한 행위에까지 아름다움의 빛을 쏘는 별, 시차視差도 없고 측정 가능한 요소도 없는 별의 본질과 힘은 무엇인가?
이 물음을 따라가면 재능과 덕과 생명의 본질, 우리가 ‘자발성’ 또는 ‘본능’이라고 부르는 근원에 닿게 된다. 후천적으로 배우는 교육과 대비시켜 우리는 이 근원적 지혜를 ‘직관’이라고 한다. 그 심오한 힘 속에, 분석이 불가능한 궁극적인 사실 속에, 모든 사물의 공통된 근원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조용한 시간이면 인간 영혼의 내부에서 존재의 감각이 솟아오른다. 그 감각은 사물, 공간, 빛, 시간, 인간과 구별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있다. 그 감각은 또 생명과 존재가 연유한 바로 그 근원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도 처음에는 만물의 근원인 생명을 공유한다. 그런데 그 후 인간 이외의 것은 자연 현상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도 동일한 근원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인간 행동과 사고의 원천이 있다. 인간에게 지혜를 주고, 불신자나 무신론자가 아닌 다음에는 부인할 수 없는, 영감靈感이 숨쉬는 허파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광대한 지혜의 무릎 위에 누워 있다. 그 지혜는 우리에게 진리를 들려주고, 우리를 통해 활동한다. 우리가 정의를 분별할 때, 우리가 진실을분별할 때,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지혜의 빛을 통과 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식적인 행동과 무의식적인 지각을 분별할 수 있다. 그리고 무의식적인 지각이야말로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의식적인 지각을 말로 표현할 때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의 존재는 낮과 밤처럼 명백해서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반면, 의식적인 행동이나 살아오면서 획득한 것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변한다. 근거 없는 공상, 아주 희미하고 소박한 감정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경의를 지배한다.
생각 없는 이들은 다른 사람이 무의식적인 지각을 말로 표현하면 그것을 의견으로 여기고 간단히 부정해버린다. 아니, 의견보다 더 쉽게 부정한다. 그것은 지각과 의견을 분간하지 못하는 탓이다. 그들은 당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각은 기분 내키는 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숙명적으로 일어난다. 만약 내가 어떤 특성을 깨닫는다면, 내 아이들도 그것을 깨달을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온 인류가 깨달을 것이다.
소박한 마음으로 신성한 지혜를 받아들일 때 낡은 것들은 사라진다. 수단, 교사, 경전, 신전이 무너진다. 정신은 현재에 살고, 과거와 미래를 현재의 시간으로 통합해 흡수한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눈이 만들어낸 생리적 색채이지만, 영혼은 빛 그 자체이다. 빛이 지금 있는 곳은 낮이고, 예전에 있었던 곳은 밤이다. 그리고 역사는 나의 현재와 미래에 관계된 유쾌한 교훈담이나 우화에 지나지 않으며, 그 이상이면 주제 넘고 해로운 것이다.
👍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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