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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우다영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죠>는 세 서사가 번갈아 등장하며 흘러가는 소설이다. 제목과는 다르게 사람이 사람을 돕지 않거나, 도우려고 했는데 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하는 순간들이 모여 직조된 서사들에는 공통적으로 ‘거북’이 등장하고, 여기서 우리는 이 이야기들이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은 특정 사건과 항상 직접적인 연관을 띠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운명을 표상하는 ‘징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함의가 어떤 방향이었든지 우리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삶에 아주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특정 상황에서의 어떤 선택은 단 하나의 길로만 우리를 이끈다. 그렇기에 “딱 한 장면일 뿐”(216쪽)임에도 빼버린다면, 그것은 나의 인생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길에서 다가올 수많은 부정적 일은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가?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패배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죠”처럼 바른 방향을 지시하는 이정표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은 지나가고” 결국 “사라지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219쪽)는 주문 역시도 우다영의 세계와 인물들에 깃들어 있는 전언이다.

<메조와 근사>에서 화자인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회상에 잠긴다. 우리는 무언가가 시작된 순간은 기억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 끝날지에 대해서는 잘 감각하지 못한다. 끝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끝이었고,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남자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납득하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하는 화자가 그 예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화자는 평화로운 해파리 호수를 보며 “내가 그 일로부터 빠져나왔다는 사실”(251쪽)을 자각한다. 애초에 알지 못했기에 끝은 끝으로 작동하지 않고, 매 순간 그저 확실한 끝(죽음)에 가까워지는 것만 확실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메조(meso)와 근사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이렇게 우다영의 인물들이 세계와 대면하는 기제는 ”어느 순간 무언가를 깨”(257쪽)닫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이는 소설을 읽는 우리의 삶으로까지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해변 미로>는 자매인 아라과 아성의 서사가 교차 제시되는 소설이다. 각 서사에서 서로는 죽었고, 따라서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어야 하는 모순 관계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꼭 대치해야만 할까? 두 서사에 모두 등장하는 기원이 자매와 각각 사랑하게 된다는 의미심장한 사실서부터 시작하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화하고, 나조차도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믿을 수 없고 놀라운 일인가? 그렇게 서로의 순간을 포착해 동결하려는 시도는 덧없을 수 있지만, 명백히 누군가의 삶은 사랑으로부터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될 거”(134쪽)라는 기원의 확신 가득한 말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날”(135쪽)이 아라에게 펼쳐질 것을 선언하고, 죽은 아성이 들려준 인생 이야기 역시 다른 기원(혹은 같은)이 자기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기원(origin)’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가능태를 목도한다. “모든 게 그물처럼 이어져 있”(131쪽)는 것이다. 세상이 곧 미로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건, 미로 그 자체가 아니라 미로가 되게 하는 능동적인 움직임이다. 도처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의 징조를 발견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사랑과 운명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확한 방식을 통해 풀어낸다.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기에 이곳저곳을 거듭 살펴보느라, 독자인 우리는 이 「해변 미로」에서 헤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다영이 사람과 삶과 세계와 운명을 그려내는 방식이 좋다. 이런 이야기는 계속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미로 안에서.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2021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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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보러 다대포 가는 1호선 안에서 박솔뫼의 「여름의 끝으로」를 읽다가 이런 부분이,

“차미를 안고 등에 코를 묻으면 땅콩 냄새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일정한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차미의 등에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잠이 올 것 같은 냄새였다.” (33쪽)

어젠 요가원에 좀 빨리 갔고, 한참 동안 나와 선생님 그리고 고양이 샨티밖에 없었는데, 샨티는 내 요가 매트 위에 올라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앉아 있고, 바즈라아사나로 요가를 준비하려던 나는, 금세 샨티의 집사가 되어, 샨티의 등을 주물주물, 코를 대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과 따듯한 샨티의 등을 동시에 만졌다. 여름의 끝이구나.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박솔뫼 지음
스위밍꿀 펴냄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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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부산 가는데 『미래 산책 연습』 진짜 안 챙기려 했거든? 방금 후루룩 훑었는데 도무지 안 들고 갈 수가 없네··· 이를테면 이런 장면,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비빔밥을 시킬걸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제 하루가 지났고 남은 휴일은 무얼 하지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테이블에 커다란 보리차 주전자가 탕 소리를 내며 놓였고 커다랗고 따뜻한 주전자를 보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고 보리차를 마시자 반찬이 나오고 상추가 나오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할 틈도 없이 테이블 위에 빠짐없이 차려진 밥을 먹기 시작했다." (47쪽)

나도 정말 제발 진실로 진정 이렇게 여행하고 싶다···
2023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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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문학평론가가 주고받은 열두 편의 서신을 모아 놓은 책. ‘지금-여기’의 책들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라 무척 재미있다. 두 분이 함께 읽은 책 중에는 내가 살펴보았거나 읽었던 책이 왕왕 있었고. 김대성, 김봉곤, 김지연, 김혜진, 서이제, 알렉세이 유르착, 유성원, 임솔아, 임현, 장류진, 조지 오웰, 한병철의 작품. 3분의 1 이상은 알고 있어서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작품에 관해 나누는 서간을 읽을 때도 역시 즐거웠다. 온종일 한국문학 이야기 정말로 자신 있는 나로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가지고 양껏 수다 떠는 걸 지켜보는 게 못내 좋았다. 문학이 수다를 떨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로 좋다!

*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꼈을 때. 올해도 앞으로도 마음껏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장정일 외 1명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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