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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책세상 펴냄

💡 자유의 원리와 한계

자유와 인간

우리는 ‘자유’라는 단어를 진지하고 깊이있게 생각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자유가 공기나 물처럼 우리의 삶에서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유의 의미나 정의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 누군가 나에게 “자유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당장은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겠는가? 막막함을 넘어 정신의 아득함을 느낀다.

순환논리 같긴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자유를 모르는 이유는 결국 자유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면 나의 자유는 현재 인정받고 있는 것인지, 타인의 자유를 내가 침해하고 있는지, 정부를 비롯한 권력기관에서 개인의 자유는 제대로 인정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는게 인문학이지도 모르겠다. 150년 전 영국에서 이와 동일한 고민을 한 사상가가 있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자유에 관한 명료한 정의는 물론이고 자유의 기본적인 영역, 자유의 원리, 자유의 한계, 자유의 역사 등 자유와 연관된 대부분의 주제를 다룬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주제일 것 같지만 의외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것이 자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자유론에 관하여

이 책의 논리 전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책 전체의 기본 명제를 이해하고 동의할 필요가 있다. 사회가 개인의 대해 강제나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경우를 최대한 엄격하게 규정하기 위해 저자인 밀은 다음과 같이 자유에 관한 원리를 정의한다. “인간사회에서 누구든 — 개인이든 집단이단 —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사자의 의지에 반해 권력이 사용되는 것도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유의 한계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기 전까지라는 말이다.

저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 자유의 기본 영역을 내면적 의식의 영역, 기호와 희망의 추구, 결사의 자유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우선 내면적 의식의 영역에서 자유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제적이거나 사변적인 것, 과학∙도덕∙신학 등 모든 주제에 대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양심의 자유, 생각과 감정의 자유, 그리고 절대적인 의견과 주장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를 즐기고 자기가 희망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 즉, 각각의 개성에 맞게 자기 삶을 설계하고 자기가 좋은 대로 살아갈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개인의 자유에서 이와 똑같은 원리의 적용을 받는 결사(結社)의 자유가 도출된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그리고 강제나 속임수에 의해 억지로 끌려온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성인이 어떤 목적의 모임이든 자유롭게 결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음의 네 가지 이유를 근거로 다른 의견을 가질 자유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1) 침묵을 강요당하는 모든 의견은,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 2) 침묵을 강요당하는 의견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일정 부분 진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3) 통설이 진리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해도, 다른 의견과 토론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진리의 합리적인 근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4) 또한, 그 주장의 의미 자체가 실종되거나 퇴색하면서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주제는 스스로 책임지는 한, 다른 사람에게서 모든 물리적∙도덕적 방해를 받지 않고 각자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자유, 즉 '개별성'에 관한 고찰이다. 밀은 개별성은 결국 인류 문명 발전의 핵심 요소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천재들의 재능 발현에도 ‘자유로운 개별성’이 최우선 조건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현재(18세기 후반)는 대중 여론과 관습의 전제(專制)로 개별성은 큰 시련을 겪고 있다. 하지만 유럽 발전의 기저에는 문화의 다양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자유의 정의, 자유의 영역, 개별성과 다양성의 가치 등을 논의한 궁극적인 이유, 즉 『자유론』을 통해 존 스튜어트 밀이 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결국 ‘어느 경우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정당한가?’ 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밀의 대답은 명확하다. “어떤 행동이든 그것이 또 다른 사람의 이익에 부당하게 해를 가하는 것이라면 사회(정부, 국가, 공동체)는 그러한 해를 가하는 행동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 사법적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며, 사회가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런 행동에 대해 사회적 또는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이러한 ‘부당하게’를 정확히 정의하기 위해서는 ‘입법’의 관한 논의로 이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밀은 『자유론』의 범위 밖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 자유란?

📖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의 중요함만을 끝까지 주장했다면 이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자유의 절대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지만 이를 넘어 ‘개개인의 무한한 자유 추구(개별성)가 사회를 이루는 공동체에도 좋은(유리한) 것일까?’라는 질문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유의 한계를 ‘타인의 자유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독자들의 생각 폭을 더욱 넓혔다고 할 수 있다.

『자유론』은 1859년 밀의 나이 53세 때 출판되었다. 약 150년 전에 저술된 책이라고 하기에는 책의 주제, 수려한 문체, 논리 전개 방식, 저자 사상의 치밀함 등이 놀랍도록 세련되게 느껴진다. 자유를 논한 교양서를 넘어 앞으로 살아갈 때 필요한 인생의 푯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자유’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자유’가 없다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소중함을 몰랐던 가치 자유, 19세기 영국 사상가의 정수가 담긴 『자유론』을 읽으며 사유해 보기를 권한다.
2021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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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 건너에 있는 눈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한 남자의 허무와 대비되는 두 여인의 열정

사람에게 있는 첫인상처럼 소설에는 첫 문장이 있다. 『설국』처럼 첫 문장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소설도 드물다. 이 문장으로 독자들은 꿈에서 볼듯한 장면을 상상하며 이야기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주인공에 빙의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 기차의 규칙적인 덜컹거림이 지겨워질 때쯤, 격변을 예고하듯 을씨년스러운 터널 안으로 기차와 나의 의식을 빨려 들어갔다. 또다시 불편한 소음이 귀에 익으려 하자, 농이라고 던지듯 터널의 출구가 또 다른 세상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벌컥” 소리와 함께 터널의 출구를 지나자 하늘과 땅의 구분이 모호한 세상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드넓은 수평선이 숨어있던 바다가 파란색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면 새하얀 눈은 반가움도 미움도 아닌,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눈의 고장은 그렇게 별 표정이 없다는 게 첫인상이다.

금수저 출신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설국'에 왔다. 그곳에서 만난 두 여인 고미코와 요코는 그와 다르게 연민과 사랑으로 열정이 넘친다. 사실 이 소설에서 서사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표정, 동작, 말투를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과 계정의 변화 과정을 서글프도록 아름답게 그려내는 몽환적 문체가 소설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구체화한 과정도 저자의 단편적인 연작을 모아 구성했기 때문에 서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기는 쉽지도 않고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 소설의 즐거움은 간결한 문체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가와바타(저자)만의 문체를 감상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민음사 펴냄

2022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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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길들여진 말과 인간이 서로를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갈 때 ‘회복'이라는 기적이 발생한다.

하프 브로크(half broke)는 승마 용어로 ‘반쯤 길들여진’이라는 뜻이다. 말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가족에게, 사회에게 그리고 인간들에게 완벽히 적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들여진 척, 적응한 척', 익숙한 척하며 다들 인생을 이어나간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며 이 책의 등장하는 말들도 그런 면에서 인간과 닮아있다. 완적히 길들여지지 못해 낙오되고 버려진 말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진저 개프니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려서부터 인간의 언어보다 동물의 행동에 민감했던 저자는 길들이기 힘든 말을 잘 다루는 ‘조교사'로 성장한다. 우연한 기회에 대안 교도소 목장의 말을 돌보는 기회를 얻으면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깨닫는다. 목장의 제소자들과 함께 말을 훈련시키며 상처받은 말과 상처받은 제소자들의 관계에서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면서 말과 제소자는 물론 자신까지 ‘회복'이라는 기적을 경험한다. 길들이기 어려운 말을 길들이는 조교사로서 저자의 생생하고 세밀한 관찰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인간의 언어보다 말의 언어는 행동과 습관을 통해 전해진다. 말들은 자신을 허례허식의 껍질로 위장하지 않는다. 인간보다 자신의 감정에 훨씬 솔직하다. 그러한 말과 교감하면서 저자도 자신을 타인에게 솔직하게 들어내는 것이 ‘회복'의 시작임을 독자들에게 강조한다. 뉴멕시코의 광활한 대지에서 펼쳐지는 회복과 치유의 서사는 독자들을 따뜻한 감동과 공감의 세계로 이끈다. 실화를 바탕으로 써진 글이라는 점은 그 감동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하프 브로크

진저 개프니 (지은이), 허형은 (옮긴이) 지음
복복서가 펴냄

2022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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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의해 한 개인의 명예가 생매장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은 그 언론사 기자가 총으로 피살되는 ‘눈에 보이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노골적으로 한 여인에 의해 피살되는 기자의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당연히 독자들은 ‘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궁금증을 갖고 책을 읽어나간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론사가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선동하여, 한 개인의 사회적 생명을 어떻게 무너트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정부라는 직업은 엘리트나 지식인보다 서민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축제 기간에 우연히 알게 된 범죄자를 도운 죄는 언론에 의해 ‘범죄자를 도운 빨갱이', ‘부모까지 빨갱이', ‘욕정을 주체 못 한 이혼녀'로 변모한다. 언론의 대중 선동은 이렇게 비연하고 추잡하다.

카타리나 블룸은 형사에게 심문당하는 내내 자신이 쓴 어휘와 문장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 이 사건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가장 많이 보여준 인물은 오히려 심문을 당한 블룸이었다. 이에 대비해 모든 사건의 정황을 자신들이 정한 결론에 끼워 맞추는 언론사의 행태는 가히 대단했다.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커다란 ‘죄악'이라도 되는 듯이 언론사의 ‘염원'을 담아내는 헤드라인은 인디언 기우제와 다를 바 없다.

언론의 권력을 이용해 성적인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블룸을 찾아왔던 기자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모습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더 비극적이다. 이 소설은 1974년에 독일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75년이라는 세월과 독일과 한국이라는 거리도 ‘기레기'의 만행은 초월했다. 미디어 대변혁의 시기와 함께 진짜 뉴스가 보기 힘든 요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지음
민음사 펴냄

2022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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