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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혜원

@mahy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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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신용목 소설)의 표지 이미지

신용목 (지은이) 지음
난다 펴냄

시인의 소설을 읽고 지금의 나는 먼 과거의 나와 그보다 더 먼 미래의 나를 동시에 마주하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변해갈 것이고 우리의 시간도 달라지겠지"만 분명 나는 그곳에 있었다.

모와 현, 섭과 수의 이야기 가운데 놓인 화자가 갈지자를 그리며 얼기설기 온몸으로 엮어가는 이야기를 눈만 따라 쉽게 읽어버린 내가 금방 미안해졌다.

함께 발을 동동 구르고 잠뜻을 향해 내달리다가는 미리 꾼 꿈인지 이미 꾼 꿈인지 몰라 갸우뚱하고 싶다.

"대지를 잃어버린" 화자의 등을 두드려 재워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신용목 #시인 #소설 #난다출판사
👍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추천!
2021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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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혜원

@mahyewon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나희덕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
바람이 와서 자꾸만 살을 저며 간다
누구를 벨 수도 없는 칼날이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
...

꽃들을 지키려고 탱자는 가시를 가졌을까
지킬 것도 없이 얇아져가는 나는
내 속의 칼날에 마음을 자꾸 베이는데
탱자 꽃잎에도 제 가시에 찔린 흔적이 있다

...

🙏 오늘의 이야기

상처받는 것만 기억하고 상처 낸 일은 금세 잊는다고 한다. 대부분 그렇게 산다고 들었고.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개정판 시인의 말에 쓰인 것처럼 그때의 시인은 "왜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마음을 찔리면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한 줌의 재와 침묵을 겪고 있었던 것일까."

내 안에 언제 자리 잡은 줄 모르던 가시가 나를 찌르고 타인을 찌르고. 그렇게 살이 얇아지면서도 동그랗게 웅크려 "누구를 벨지도 모르는 칼날"을 껴안으려 했던 시인.

나 또한 시인이 "안쓰러운 생각에 책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산문집 하나, 시집 하나를 가방에 넣어 다닌다. 화나거나 슬퍼지면 시집을 꺼내는데. 만나는 페이지가 그날의 마음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시집을 열어보는 것이다.

피어나는 꽃들이 꿀 향을 풍기는 요즘. 당신의 가방에도 시집 한 권이 필요할 것이다. 꽃이 기어이 피는 오늘 같은 날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당신의 마음을 수호하기 위해.

시인도 탱자 꽃잎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문학동네 펴냄

👍 외로울 때 추천!
2022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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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yewon

지난 연말과 연초를 고스란히 이책에 바쳤다. 전쟁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통과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지나 다시 나를 뚫고 지나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벼운 마음으로 매일 썼던 리뷰도 쓰지 못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가 여러 목소리를 담은 전투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면. 이 책은 전쟁을 온 몸으로 겪었지만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은, 타락한 여성으로 취급받던 성노예 '비랑가나'의 이야기다.

(*비랑가나 :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에서 파키스탄 군에 의해 성노예로 학대당한 방글라데시 여성들에게 전후 방글라데시 국가에서 부여한 '여성영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

이 책은 마리암이라는 한 여성이 큰 줄기가 되어 그녀의 옷깃을 스친 여성들이 살거나 죽게 된 서사를 다룬다. 그 과정은 소년과 함께 영화관에서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고향에서 쫓겨나듯 떠나온 어린 마리암을 시작으로 대학 시절 임신 후 버려진 마리암을 통과한다. 이어 전쟁 속으로 끌려다닌 마리암과 여성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살아내고 싶었던 마음이 복잡하게 얽힌다.

이 책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딸을 향한 엄마를 포함한 가족, 친척들이 지닌 양가적인 감정이 세심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이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틀에서 한 세월 이상을 견뎌왔을 우리 나라의 여성 어른들과 "그렇게 힘들었으면 왜 자살하지 않았지?" 라는 말로 괴로움을 끊임없이 저울질 당하던 책 속의 인물들이 겹쳐진다. 위안부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나에게 너무 먼 일이라고 생각했음에 죄책감이 더 크게 남는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읽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한다.

159쪽. 과거의 날들이 소맷부리에 매달려 그들을 잡아당긴다. 시험공부를 하고 암기하는 지루하고 피곤하게 공부하던 일상. 아니면, 연애편지를 쓰다가 들켜 무척 당황했던 날들. 조원들 모두에게 기만과 거부의 경험이 있다. 때때로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자살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 앞에서 이 모든 낡은 슬픔은 증발하고 만다. 단조로운 과거는 다채로운 색깔로 넘치고 꿈처럼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된다.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샤힌 아크타르 (지은이), 전승희, 파르하나 라흐만 샤시 (옮긴이) 지음
도서출판 아시아 펴냄

👍 에너지가 방전됐을 때 추천!
2022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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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혜원

@mahyewon

“이 시선집은 1979년부터 2019년까지 시인이 펴낸 시집 가운데 절판된 아홉 권의 책에서 가려 뽑은 시로 엮었다.”(알려두기 中)

장석주 시선집,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쩌다 시를 쓰게 됐을까?”

내가 시인이 될 운명이라 믿고 지내던 몇 날이 있었다. 일상의 모든 일이 낯설고 새삼스러웠다. 벅찬 해가 떴다가 무장 슬프게 지는 날도 있었다. 그냥 그런 날들이 “우연의 일이고 신기한 사건”처럼 나에게 왔다. 실감 나지 않은 일은 나를 스치듯 지나갔고. 그 뒤 잘 읽지 못하던 날들이 계속되었다.

시인이 말한 “눈꺼풀만큼 가벼운 우울로 빚은 시”를 몇 달에 걸쳐 곱씹다가는 바위만큼 무거운 우울로 가득 찬 이제야 내뱉게 되었다. 하도 오래 씹어 단물이 빠진 글자들이 이제야 마구 달려온다.

시를 짓는다는 것과 시를 먹는다는 것은. 아마 “달의 엉덩이가 구릉에 걸리”는 일. 내주는 자리에 엉덩이 온기 꾹 눌러놓고 가는 것, 넘겨받은 자리의 온기를 느끼며 기꺼이 앉는 일. 어제의 나는 “함부로 몸을 버려 오늘의 물속에 휘어져 숨”었고 오늘의 나는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하며 내일의 나는 다시 “허리를 곧추세울 것” 이다. 아프고 적확한 시의 배치는 나의 입을 벌려 시를 먹게했다. 나는 순서대로 성실하게 씹었던 것이다. 그렇게 단물 빠진 글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고 나는 또 읽는다.

시 없이 살아온 날보다 시와 살아진 날이 긴 시인은 말한다. “나는 문장노동자다, 라고 뻥을 쳤으나 / 두루마리 휴지 기백 기천 개나 쓰고 / 떠날 자들에 속할 따름이다 / 구두 밑창 몇 개도 닳아없앨 예정이다.” “노동으로 등이 휜 적이 없”는 절박한 문장노동의 증거를 4부에 남긴 단상으로 증명한다. 애써 알아봐 주어라 한 일 없지만 깊이 살피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어둠 속에서 울부짖는 고라니의 울음 따위를 숙성시켜” 시로 빚어내는 시인의 둥그런 등을 본다. 시를 시인 줄 모르고 만지던 열다섯 소년의 등이 맞닿는다. 그들은 이제 막 서로를 기대어 앉는다. “그건 우연의 일이고 신기한 사건”이다.

시는 제때 온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111쪽)

어쩌다 시를 쓰게 됐을까?(4쪽)
시가 내 차가운 이마를 콕 찍어 호명했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어느 날 내 안에 시의 싹이 조그맣게 돋아났으니 그건 우연의 일이고 신기한 사건이었다.(4쪽)
눈꺼풀만큼 가벼운 우울로 빚은 시를 골라 엮은 시집 한 권을 펴낸다.(5쪽)
(그리운 나라) 달의 엉덩이가 구릉에 걸리고(13쪽)
(나의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하여) 어제의 물은 함부로 몸을 버려 오늘의 물속에 휘어져 숨고(17쪽)
(태안 저녁바다) 과거가 된 시간은 결코 돌아갈 수 없다(79쪽)
(물오리 일가) 나는 문장노동자다, 라고 뻥을 쳤으나 / 두루마리 휴지 기백 기천 개나 쓰고 / 떠날 자들에 속할 따름이다. / 구두 밑창 몇 개도 닳아없앨 예정이다.(108쪽)
138. 어둠 속의 울부짖는 고라니의 울음 따위를 숙성시켜 질박한 몇 줄의 언어를 얻겠다.(188쪽)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장석주 (지은이) 지음
난다 펴냄

👍 외로울 때 추천!
2022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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