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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30년 전에 쓰여진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하지만 주가 조작, 작전 세력, 공매도, 선물옵션, 뉴스와 정보만을 좇는 개미 등 전혀 낯설지 않은 요소들은 지금의 주식시장에 대입해도 전혀 무리가 없고 그래서 오히려 읽는 재미를 준다.
부동산 투자에 실패해 알거지가 된 사카르는 아믈렝, 카롤린 남매를 만나 그들의 아이디어에서 돈 냄새를 맡고 만국은행을 설립해 원대한 계획을 실행하려 하는데...
그저 주가를 올리는 것만이 목표인 사카르는 차명으로 주식을 매수하고, 분에 넘치는 증자를 하고, 만국은행에 호의적인 기사를 내기 위해 신문사를 사들인다. 그 덕에 주가는 500프랑에서 3000프랑까지 고공행진을 하지만, 그건 말그대로 사상누각이었다.
펀더멘탈이 약한 기업이 상장 5년만에 6배가 오른건데, '거품이다, 고평가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기업가치가 아닌 주가가 오른다는 이유만으로) 보란듯이 주가가 치솟는 기업들이 아직도 있는거 보면 투기는 시대불문이다.
냉철한 유대인 투자자 군데르만은 그걸 꿰뚫고 (자존심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락에 배팅하며 100억 프랑 이상의 자본을 기반으로 공매도한다. 반대로 사카르는 말그대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공매도를 방어한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군데르만이 사카르와의 대결에서 지고 남작부인이 만국은행은 빈 껍데기라는 걸 알려주기 전, 자신의 논리를 의심하고 다른 데나 투자할걸 그랬다며 후회하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빅쇼트의 마이클 버리 박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맞았다, 틀렸다'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당장 자신의 논리에 반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질 때 피어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 불안을 잠재우는 건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본인 논리에 대한 강한 믿음과 상당한 인내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투자가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 절묘한 장면이었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조르당 부인 마르셀이 만국은행 주식을 사지 않았다고 하자 드주아의 딸 나탈리가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면이다. 2020년 하반기, 모두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이야기하고 코인발 '돈 복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때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을 바라보던 시선들이 생각났다. 지하철을 탔는데 옆자리 앉은 아주머니가 자기 친구랑 통화하면서 주식으로 돈 벌기가 얼마나 쉬운지 강의를 하는데... 그 분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실까?
여담으로 소설 초반에 마조가 가족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위의 짤이 생각났다. 이 짤의 제목은 '사실상 자살선언'. 그리고 그는 실제로...
연극으로 만들면 재밌겠다. 계속 머리속에 무대가 그려져~~~ 아 그리고 카롤린같은 헛똑똑이 스타일 딱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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