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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봄 펴냄

사실 동성애 요소가 있다는 걸 모르고 마냥 주변에서 재밌다고 하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했다. 신화 속 인물들 이름 복잡하고 너무 많이 나와서 초반에 그만둘까 생각도 했는데 기왕 책 편거 절반까지만이라도 읽고싶었다. 그렇게 결국 끝까지 다 읽은 뒤... 왜 재밌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됐음.

소설 내 여자들은 다 재물로 바쳐지고, 성노예로 다루어지는 점이 보기 너무 불편했으나 이 점은 고전 신화를 각색한 것이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물론 머리론 이해하지만 가슴은 못 받아들여서 -0.5로...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크게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었지만, 한 편으론 또 다른 철학적인 사색에 잠기게도 한다. 아킬레우스가 케이론과 얘기 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어느 나라 출신이건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느냐."
"하지만 그 자가 제 친구라면요? 제 형제라면요? 그래도 이방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합니까?"
"너에게는 그자가 더 소중할지 모르지. 하지만 그 이방인도 누군가의 친구이자 형제다. 그러니 누구의 목숨이 더 중요하겠느냐?"

살육병기로 자라기를 기대받던 아킬레우스에게 꼭 필요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어느 형제를 죽였고, 그 형제가 헥토르의 가족임을 알게 됐지 않는가.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 역은 성립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역의 역도 성립하게 된다.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결국 둘은 '이방인'을 죽였고, 각자에게 소중한 사람인 그 이방인은 차가운 시체로 돌아온거다. 내게 소중하지 않다고 남에게 소중하지 않은건 아니다, 이들은 죽일수밖에 없는 환경에 머물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걸 생각해야만 했다. 특히 아킬레우스. 얘는 자기 자존심 지키느라 남이 소중한 건 신경도 안썼고 그 결과 자신의 소중한 연인을 잃어버렸다.

파트로클로스는 다정했고, 아킬레우스는 살육병기로 자라야했다. 대전도 같이 하지 못하고, 친근한 관계를 쌓을 수 없었던 아킬레우스에게 파트로클로스는 무슨 의미였을까. 모두가 아킬레우스를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친구로서 대해주고 그 나잇대 소년으로 있게 해주는 파트로클로스를 어떻게 친애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전장을 누비는 사령관으로서의 아킬레우스는 연식이 뛰어나보이는 전쟁터 속의 장군이었지만, 파트로클로스와 있는 그의 모습은 항상 편안하고 안정적이게 보였다. 둘 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는 아킬레우스가 정말 성인도 되지 않은 유약한 소년으로 남을 수 있었다.
2022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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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인생과 가치관을 가감 없이 마주하는 일은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일과 같았다."

분량이 많지 않아서 가볍게 읽기 좋았다.
청소년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닌데, 율의 시선은 자주 들어오기도 했고 한번 보고싶긴 했었어서 후루룩 읽음.

이야기는 PTSD를 가지고 있는 율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상처가 버거워 무감각 속으로 도망쳐버릴 수 밖에 없었던 중학생 율이,

가정 환경으로 따돌림을 당한 이후, 자신을 숨기고 살게되었던 진욱이,

쓰레기집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북극성을 보며, 지구를 떠나고 싶어했던 도해.

제각각의 상처를 지닌 소년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고,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던 처음에슨 진욱이와 도해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그저 남들처럼 다재다능하고 꼬인구석 없는 남자애, 그리고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는 비정상적인 아이. 그러다 율의 시선이 바닥에서 하늘로, 누군가의 어깨 너머에서 입술로, 그리고 결국에는 다른 사람의 눈동자를 담았을때 율은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율은 어린 날의 상처로 자신을 숨기고, 거짓에 물든 삶을 살아왔지만 도해와 함께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며 오롯이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진욱은 비록 율의 무심한 행동에 상처를 받게 되었으나, 율의 무심함에 위로를 받고, 균열이 일었던 아버지와의 관계에 본드를 발라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도해에 관해서는.. 어렵다.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 애는 무너지지 않았고, 북극성이라는 작은 빛에 의지하며 살아가려 했던 도해는 너무 강인하고 멋진 생명이었던 것 같다. 그가 쌓은 모래성이 무너질 뻔 했으나, 무너지지 않고 지구에 머무르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율의 시선, 시선을 마주치기 힘들어하던 율이는
도해의 시선에 비추었던 작게 빛나는 북극성을 보았고
그제야 비로소 타인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게 된 이야기.

율의 시선

김민서 지음
창비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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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제목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닐스 비크라는 페리 운전수의 삶을 통해 인간의 탄생과 죽음, 그 사이에 엮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보여준다. 죽기 전 주마등이 보인다고들 하는데, 이 소설이 닐스 비크의 주마등이 아닐까.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은 보통 어둡고, 슬프기 마련인데 닐스 비크의 이야기는 죽음보다는 그의 삶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라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그저 고요한 마음으로 차분히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읽다보면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되나, 가볍게 읽으면 내용 이해가 안되니 조금은 생각하며 읽어야하는 이야기.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프로데 그뤼텐 지음
다산책방 펴냄

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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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존재에 대한 이야기]

너무나 많은 여름이 우리를 찾아오더라도 그럼에도 사랑하라.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가 아마 위 문장이 아닐까싶다.

소설인 줄 알고 산 건 맞지만, 읽다보니 어라.. 소설 맞나? 에세이인가? 하고 여러번 찾아봤다. 엄청난 단편이라 내용이 끊기는건 당연한거긴 하지만 가끔 '뭐를 말하고싶었던거지.' 싶어지는 순간은 문득문득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저 주제를 맴돌고 있어서 영 다른 이야기들로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아직 많은 여름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아마 나이때문도 있을거고, 이미 지나왔지만 큰 기억에 남지 않은 여름들도 있을테다. 그럼에도 사계절은 언제나 있듯, 내게는 무수한 여름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것이고, 그럼에도 사랑은 멈추지 말아야 할 것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레제 펴냄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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