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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세계문학전집 13,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의 표지 이미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은이), 이영의 (옮긴이) 지음
민음사 펴냄

💡 주인공은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비극이다. 평범한 개인이 집권 세력의 허망한 이념 경쟁에 내몰리면 수용소 생활도 행복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러한 불합리한 비극은 누구의 책임인지 저자인 솔제니친은 묵직하게 묻고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후 슈호프로 통일) 소련을 반역했다는 명목으로 수용소에 들어왔다. 하지만 사실 그는 반역한 적도, 죄를 지은 적도 없다. 스탈린이 집권하던 소련은 슈호프처럼 무고한 시민도 손쉽게 죄인이 되는 야만의 시기였다. 같이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죄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모두가 평범한 소시민이다. 물론 기득권에 빌붙어 근근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사는 몰염치한 인간도 있다. 무고하든 아첨을 하든 수용소에서 같은 생활을 반복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저자인 알렉사드르 솔제니친은 슈호프의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그래서 더 비참하다.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열정적인 어휘로 맹렬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하루를 잔잔히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의 부조리는 충분히 전달된다. 저자는 실제로 소련 내 여러 세력에게 압박을 받았으며, 직접 경험한 수용소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구체적인 문장은 더욱 빛을 발한다. 단지 소련의 스탈린 시대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지배 계층의 횡포로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것은 항상 사회 최악계층이었다. 따라서 역사의 암흑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인류 역사 전체에게 묻고 있는 것이라도 할 수 있다.
2022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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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 건너에 있는 눈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한 남자의 허무와 대비되는 두 여인의 열정

사람에게 있는 첫인상처럼 소설에는 첫 문장이 있다. 『설국』처럼 첫 문장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소설도 드물다. 이 문장으로 독자들은 꿈에서 볼듯한 장면을 상상하며 이야기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주인공에 빙의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 기차의 규칙적인 덜컹거림이 지겨워질 때쯤, 격변을 예고하듯 을씨년스러운 터널 안으로 기차와 나의 의식을 빨려 들어갔다. 또다시 불편한 소음이 귀에 익으려 하자, 농이라고 던지듯 터널의 출구가 또 다른 세상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벌컥” 소리와 함께 터널의 출구를 지나자 하늘과 땅의 구분이 모호한 세상이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드넓은 수평선이 숨어있던 바다가 파란색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면 새하얀 눈은 반가움도 미움도 아닌,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눈의 고장은 그렇게 별 표정이 없다는 게 첫인상이다.

금수저 출신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설국'에 왔다. 그곳에서 만난 두 여인 고미코와 요코는 그와 다르게 연민과 사랑으로 열정이 넘친다. 사실 이 소설에서 서사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표정, 동작, 말투를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과 계정의 변화 과정을 서글프도록 아름답게 그려내는 몽환적 문체가 소설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구체화한 과정도 저자의 단편적인 연작을 모아 구성했기 때문에 서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기는 쉽지도 않고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 소설의 즐거움은 간결한 문체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가와바타(저자)만의 문체를 감상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민음사 펴냄

2022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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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쯤 길들여진 말과 인간이 서로를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갈 때 ‘회복'이라는 기적이 발생한다.

하프 브로크(half broke)는 승마 용어로 ‘반쯤 길들여진’이라는 뜻이다. 말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가족에게, 사회에게 그리고 인간들에게 완벽히 적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들여진 척, 적응한 척', 익숙한 척하며 다들 인생을 이어나간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며 이 책의 등장하는 말들도 그런 면에서 인간과 닮아있다. 완적히 길들여지지 못해 낙오되고 버려진 말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진저 개프니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려서부터 인간의 언어보다 동물의 행동에 민감했던 저자는 길들이기 힘든 말을 잘 다루는 ‘조교사'로 성장한다. 우연한 기회에 대안 교도소 목장의 말을 돌보는 기회를 얻으면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깨닫는다. 목장의 제소자들과 함께 말을 훈련시키며 상처받은 말과 상처받은 제소자들의 관계에서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면서 말과 제소자는 물론 자신까지 ‘회복'이라는 기적을 경험한다. 길들이기 어려운 말을 길들이는 조교사로서 저자의 생생하고 세밀한 관찰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인간의 언어보다 말의 언어는 행동과 습관을 통해 전해진다. 말들은 자신을 허례허식의 껍질로 위장하지 않는다. 인간보다 자신의 감정에 훨씬 솔직하다. 그러한 말과 교감하면서 저자도 자신을 타인에게 솔직하게 들어내는 것이 ‘회복'의 시작임을 독자들에게 강조한다. 뉴멕시코의 광활한 대지에서 펼쳐지는 회복과 치유의 서사는 독자들을 따뜻한 감동과 공감의 세계로 이끈다. 실화를 바탕으로 써진 글이라는 점은 그 감동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하프 브로크

진저 개프니 (지은이), 허형은 (옮긴이) 지음
복복서가 펴냄

2022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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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의해 한 개인의 명예가 생매장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은 그 언론사 기자가 총으로 피살되는 ‘눈에 보이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노골적으로 한 여인에 의해 피살되는 기자의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당연히 독자들은 ‘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궁금증을 갖고 책을 읽어나간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론사가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선동하여, 한 개인의 사회적 생명을 어떻게 무너트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정부라는 직업은 엘리트나 지식인보다 서민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축제 기간에 우연히 알게 된 범죄자를 도운 죄는 언론에 의해 ‘범죄자를 도운 빨갱이', ‘부모까지 빨갱이', ‘욕정을 주체 못 한 이혼녀'로 변모한다. 언론의 대중 선동은 이렇게 비연하고 추잡하다.

카타리나 블룸은 형사에게 심문당하는 내내 자신이 쓴 어휘와 문장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 이 사건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가장 많이 보여준 인물은 오히려 심문을 당한 블룸이었다. 이에 대비해 모든 사건의 정황을 자신들이 정한 결론에 끼워 맞추는 언론사의 행태는 가히 대단했다.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커다란 ‘죄악'이라도 되는 듯이 언론사의 ‘염원'을 담아내는 헤드라인은 인디언 기우제와 다를 바 없다.

언론의 권력을 이용해 성적인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블룸을 찾아왔던 기자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모습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더 비극적이다. 이 소설은 1974년에 독일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75년이라는 세월과 독일과 한국이라는 거리도 ‘기레기'의 만행은 초월했다. 미디어 대변혁의 시기와 함께 진짜 뉴스가 보기 힘든 요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지음
민음사 펴냄

2022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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