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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의 표지 이미지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펴냄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꿈꿔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맛있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p.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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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차별은 혐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된다.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와 '우리 편'에 대한 사랑. 농장장이 어떤 식으로 남에게 비춰지든 간에 그가 나에 대한 호의에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겨우 삼일 전에 알게 됐을 뿐이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같은' 한국 사람에 대한 도리였다. 차별에 구체적인 형태를 제공하는 것은 혐오지만 그것에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사랑이다. 게다가 그런 사랑을 통해 얻은 이익을 거절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등의 원칙에 공감하지만 자신이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명백한 경우엔 노골적으로 차별을 요구하기도 한다. 문제를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이런 지점이다.
p.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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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학자의 말을 바꿔서 표현해보자면 생명관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은 동물을 아끼고 악한 사람은 동물을 학대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 그것은 대부분 동물은 물건이라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p.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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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세상'은 사장이 제대로 된 사료 대신 음식 쓰레기를 개들에게 먹일 수 있게 해줬고 그가 산과 논을 더럽혀도 그대로 내버려뒀고 노동자들을 혹사시켜도 문제 삼지 않았다.
p.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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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닥을 물로 한 번 씻어내고는 칼 역시 물로만 헹구고 자리를 떴다. 안에는 테이블도 없어서 장화 발로 돌아다니는 바닥에 대고 칼질을 했다. 그런데도 칼이며 바닥이며 소독은 고사하고 주방 세제로도 닦아내는 법이 없었다. 세균을 제거할 수 있는 물질은 말라비틀어진 비누 조각뿐이었는데 손을 닦을 때만 썼다. 만약 보통의 고기를 생산하는 시설이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면 퇴출당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곳이 몇이나 있을까? 사장은 개고기도 고기의 하나일 뿐이라고 했지만 생산 과정을 살펴보면 고기라고도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육식에도 부정 당할 수 없는 미덕이 있을지 모르고 개고기 업계에도 스스로를 정당화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날 본 모습 중에 회색 영역에 속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잘못되어 있었다.
p.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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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살면서 뭘 해도 지배를 했지 남의 지배를 받으면서 일한 적은 없는 사람이야."
그의 말 속에는 이 개 농장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담겨 있었다. 그는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다른 존재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지쳐서 노골적으로 힘든 내색을 해도 그는 무슨 일이냐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당시에는 그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오해였다. 그에게는 사람이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땡볕 아래서 일을 하게 되면 느끼게 될 괴로움을 머릿속에서 떠올려보는 능력이 부족했다. 말하자면 그는 다른 존재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에 철저하게 무능했다.
p.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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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넘김과 동시에 나는 더 이상,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2022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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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agonggan

소설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이 짧다 보니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장편소설은 소설의 세계로 독자를 서서히 끌어들이는 느낌이라면, 단편소설은 갑자기 소설의 한 가운데로 끌고 가는 느낌이랄까. 지하철에서 읽기 좋은 사이즈라서 무심히 챙긴 책이었는데 이토록 흡입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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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작가님의 “윤광호”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두 마음이 인상 깊었다. 양가감정. 동전의 양면 같은 마음이 나에게도 있기에 짧지만 여운이 길었던 것 같다. 갈팡질팡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마음이 여전히 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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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정 작가님의 “아무도”는 평온한 결혼생활 중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남편이 있었던 이전의 일상과 별거한 현재 그 어딘가의 경계에 있는 모습이 기존의 일상에서 탈출했지만 그 내면에 깔려있는 불안함과 혼돈을 느끼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였다. K 직장인으로서 가끔은 반복스러운 일상 속에서 그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솟아오르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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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작가님의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라는 수술을 하는 주인공의 영혼이 빠져나가면서 이야가는 시작한다. 영혼의 모습으로 과거의 행적을 되짚으며 소설은 흘러가는데 나열되는 사건들의 주된 감정이 사람 사이의 “오해”였다. 주인공이 과거의 사건에서 사람에게 오해를 받는 과정과 주인공이 겪은 힘듦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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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깊은 글을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

소설 보다

김병운, 위수정, 이주혜 (지은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022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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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agonggan

작은 무심함으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결국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에 큰 피해를 안깁니다.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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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생산을 통해 쉽게 얻어지고 쉽게 버려지는 음식을 보며 우리는 풍요롭다 말하지 않습니다. 좋은 음식을 다 같이 골고루 나눌 때 비로소 풍요롭다 말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p.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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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깨끗하게 만들어지는지 아닌지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우리의 과도한 소비가 유발한 공장식 생산과, 그곳에서 굴러가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우리의 모든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련된 최선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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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TV 예능에 쏟아져 나오는 많은 먹방 프로그램들은
우리 앞에 놓일, 우리가 먹어야 할 음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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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놓여진 음식들에 모든 감각이 집중된다.
음식을 먹을 때, 음식 너머의 것들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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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채우기 급급했고, 배가 부르면 남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전 세계 9명 중 1명은 아직도 음식으로 굶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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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리는 이 끼니가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못했다.
그동안의 나는 본능적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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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기는 음식이 어떤 과정으로 처리되는지
한 끼를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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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나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마주보기 싫어 회피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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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좋아하는 만큼,
앞으로의 끼니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소망해본다.

Chaeg 편집부 지음
책 펴냄

2022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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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agonggan

나는 많은 하인들 중 가장 비천한 하인 앞에서도 두려워했고 동시에 그런 녀석까지도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가장 비천한 하인도 그림자를 갖고 있었고 태양 아래에서 자신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p. 4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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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 뒤에서 온 세상이 문을 닫아버리는 듯했다.
p. 8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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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황량했고 더이상 판단력이나 이해력을 갖추지 못했다.
p. 9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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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내 가슴을 절망으로 채웠다.
p. 96/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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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자네가 만약 사람들 가운데 살고 싶다면, 부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p. 15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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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그림자를 팔고, 금화가 무한으로 나오는 주머니를
얻게 된 슐레밀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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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나를 타인과 구별해 주는 자아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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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금화 주머니 중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그림자라고 책은 자명히 말하고 있지만, "정말 나는 그림자를 선택할 수 있을까?"라고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지음
열림원 펴냄

2022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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