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프라이즈 노벨, 문고X, 그리고 20세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앞에 있는 블랙웰 서점에는 특이한 장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서프라이즈 노벨(A Novel Suprise)이라는 이름의 매대이다. ‘서브라이즈 노벨’ 매대에는 각 나라에서 출간된 소설 가운데 블랙웰 서점의 직원들이 엄선한 작품들이 저자의 이름과 제목이 가려진 채 진열되어 있다. 봉인된 포장지에는 몇 개의 키워드 정도나 첫 문장, 발행한 나라의 이름정도만 적혀 있다. 이렇게 선입견 없이 책을 구매한 사람들은 표지를 구매하고 봤을 때보다 만족감이 훨씬 높다는 구매자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마케팅이 있다. 교토의 한 서점에서는 ‘문고X’라는 이름으로 책 전체를 전면 띠지로 가리고 랩핑하여 책에 대해 알 수 없게 만든 채로 판매하고 있다. 그곳 역시 책의 페이지수나 가격정도만 공개하고 이후의 내용을 볼지 안볼지는 오로지 구매자의 몫으로 남겼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20세기가 바로 서프라이즈 노벨이자 문고X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20세기를 보고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과거이니 구태여 숨길 것도 없고 더 알아볼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20세기를 회상하고 자꾸 꺼내어 보는 건 현재를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되살아나 우리 앞에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20세기를 보고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역사책이나 박물관에 들어설 때처럼 뚜렷한 경계를 긋고 보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건 20세기란 ‘멈칫’하게 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 가는 걸음을 멈춰 세우고 잠깐 생각하게 하는 힘. 그 힘이 시작되었던 혹은 만개했던 때인 2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려 책을 펼쳤다.
《친애하는 20세기》는 글과 기호로만 이루어진 지식 정보를 만화로 담겠다는 작가의 포부와 애정으로 시작된 책이다. 20세기라는 거대한 애증덩어리를 그러모아 한 권의 만화책으로 담았다. 한 세기를 담으려다 보니 방대한 주제를 담을 수밖에 없고 분명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친애하는’은 그런 부분에 대한 작가 나름의 방파제 같은 말이 아니었나 싶다. 좋아하는 것은 전체를 살피지 않는다. 20세기 중에서 작가가 좋아한(동시에 설득력을 갖춘)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바라보는 20세기가 어떤 모습인지 그림처럼(말 그대로) 보여진다.
P172 의자는 본래 아무나 앉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 권위와 힘을 나타냈던 의자는 신분과 권위에 걸맞게 휘황찬란했다. 지금도 소위 ‘회장님 의자’라고 하는 것들을 보면 아직 그 의미가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현대에 의자는 그저 ‘의자’로 보거나 혹은 그 위에 아무거나 올려 인테리어로 사용하는 등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었다. 몇 번의 전쟁과 혁명을 반복하며 다사다난한 100년으로 꽉 채웠던 20세기도 지금우리에게는 그저 ‘20세기’로 들린다. 22세기 사람들도 21세기 사람들을 이렇게 하나의 무언가로 지칭한다고 생각하면 20세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과거에서 미래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손자는 할아버지가 되어 다시 손자에게로 옛날이야기처럼 무릎베개를 하며 나때는~ 으로 시작하는 많이 주관적인 이야기.
《친애하는 20세기》는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주제를 재치있게 담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잡지와 다큐멘터리부터 디저트와 술, 건물과 인테리어, 디자인과 예술 등 언뜻보면 공통점이 없는 잡지식 같은 느낌이다. ‘지식채널E’나 ‘먼나라 이웃나라’의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 책들은 책의 하나의 목적이 담겨 있다. 지식의 전달 혹은 정보의 전달, 이 책 역시 전달의 목정을 띄고 있다. 하지만 그건 지식이나 정보라는 하나의 말로 담을 수 없는 ‘세기’의 전달이다. 그렇기에 장르가 없고 잡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 장르가 무수히 많은 이 생소한 키워드가 반가운 이유는 나를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글을 다 쓰고 보니 생각이 드는 게 사실 20세기가 21세기의 띠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읽고 싶었던 건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있고 과거는 미래를 철저하게 동봉한 채 매대 앞에 기다리고 있다. 21세기의 5분의 1이 지난 지금 22세기에 전달될 키워드는 과연 무엇이 될까 잠깐 멈추고 고민을 했다.
Q1.
여러분이 생각하는 20세기란?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으로)
Q2.
친애하는 20세기에 동양에서 근대화가 시작된 것들은 왜 실리지 못했을까요?(20세기 동양에서 먼저 ‘시작’한 것들을 알고 있나요?)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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