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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의 표지 이미지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이어 공간과 도시를 사유하는 유현준 교수의 책이다. 이 책에는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다 말하지 못한 건축과 도시에 비친 우리의 모습과, 건축가로서 실제로 우리를 둘러싼 공간들을 디자인하면서 알게 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매 페이지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책이다. 인간과 건축과 공간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인문학적 시선을 가질 수 있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총12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나와는 동떨어진 물질로만 건축물을 이해하려고 하면 우리는 건축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같은 집이지만 사용자에 따라 다른 집이 된다. 건축물의 의미는 사용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그 건축물을 이해하거나 평가하기는 어렵다. 사람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다. 건축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의미를 규정한다.

1994년 놀라운 발견이 하나 있었다. '괴베클리 테페'라는 터키 남동부 샤늘르우르파 외렌직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이다.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이 건축물은 기원전 1만~8천 년경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스톤헨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6천 년 이상이나 앞서 지어졌다.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이 그려진 것은 기원전 3만 5천 년부터 기원전 1만 1천 년 사이의 구석기 시대다. 그러니 괴베클리 테페는 구석기 때 인류가 동굴에 살다가 동굴 밖에 나오면서 짓기 시작한 최초의 건축물이다.

기후와 연결해서 살펴보면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지어진 것이다. 형태를 살펴보면 T 자형으로 생긴 돌기둥들이 가운데 서 있고 그 주변을 돌로 쌓아서 만든 벽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고고학자들은 이 건축물이 집이 아니라 장례식을 치렀던 신전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돌 하나의 무게가 자그마치 15톤 정도라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불을 사용하긴 했지만 바퀴는 없었고 짐을 운반할 가축도 없었다는 점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온전히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지어진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건축물이 기원전 7천 년경에 시작된 농업혁명 이전에 지어졌다는 점이다. 도시 발생에 관한 기존의 정설은 수렵 채집의 시기가 지나고 농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한곳에 머물러 살게 되어 도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의 발견으로 이 순서가 뒤바뀌게 되었다. 괴베클리 테페는 농업혁명이 시작된 시점보다 수천년 먼저 지어졌다.

이 건축물을 지으려면 60~70명의 사람이 6개월에서 1년 동안 매달려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건축물을 지으면서 한곳에서 생활하려면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원시적인 형태의 농업이 시작됐다는 가설이다. 농업으로 건축이 시작된 게 아니라, 건축을 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으로 시각이 바뀌었다.

괴베클리 테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아직도 우리 인류의 문명 형성 과정을 정확히 모른다. 지금껏 우리는 농사를 짓게 되면서 건축과 문명이 시작된 줄로 알았다. 농업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괴베클리 테페의 발굴로 인해 우리는 그 당시 종교성이 우선이었고,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라는 자의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교육하고 힘을 합치기 위해서 힘든 석조 건축을 시작하고, 그로 인해 농업혁명이 일어났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언제 또 어떤 유물이 발견되어 이 가설이 뒤집어질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건축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자신을 알아 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의 유적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건축을 관심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개천에서 용나기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학교와 교도소다. 둘 다 담을 넘으면 큰일 난다. 학교와 교도소 둘 다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 크기를 빼고는 공간 구성상의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교도소 혹은 연병장과 막사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교실로 구성된 대형 교사에서 12년 동안 키워지는 아이들을 보면 닭장 안에 갇혀 지내는 양계장 닭이 떠오른다. 남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실에서 자라난 사람은 똑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학교의 전체주의적인 성향은 최근 들어 더 심화되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똑같은 교복을 입고 다닌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밥을 배급받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식판에 똑같은 밥을 배급받아 먹는 곳은 교도소와 군대와 학교밖에 없다. 학교는 점점 교도소와 비슷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군대는 2년이면 제대하지만 학교는 12년을 다녀야 한다. 공간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는 12년 동안 아이들을 수감 상태에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고등학교 졸업생에게 꽃다발을 주기보다는 두부를 먹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양계장 같은 학교에서 12년 동안 커 온 아이들에게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교실의 낮은 천장고도 문제다.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조운 메이어스 - 레비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3미터 이상 높이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고 한다. 2.4미터, 2.7미터, 3미터의 천장이 있는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3미터 천장고에서 시험을 친 학생이 낮은 천정고의 학생에 비해 창의적 문제를 2배나 더 많이 풀었다는 연구 결과다. 이처럼 높은 천장이 있는 공간은 창의력을 향상시킨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교실 높이는 교육부에서 지정한 2.6미터로 동일하다. 우리의 학교에는 3미터가 넘는 경사 지붕의 교실도 있어야 하고 둥그런 천장의 교실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다양한 모양의 천장이 있는 교실에서 공부하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1인 가구가 사는 도시
아파트의 경우에도 10년 전에는 4인 가구가 주류였고, 중산층은 30평형대 아파트에 사는 것이 기준이었다. 이 경우 한 사람은 자신의 방과 더불어 거실 / 부엌 공간을 사용하게 된다. 일인당 약 20평가량의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1인 가구는 원룸에 살게 되면서 8평 이하의 공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인당 사용 공간이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과거에는 자기 방을 열고 나가면 거실이라는 공공의 공간에서 다른 사람, 즉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1인 가구는 여유 공간을 찾을 수 없는 원룸에 갇혀 살고, SNS를 이용해 사람을 만난다. 사용하는 공간보다 더 작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살게 된 것이다.

부모와 살면 친구를 집에 초대할 수 없고, 원룸에 살면 공간이 작아 초대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디 편하게 앉아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한 끼 식사비 정도로 비싼 커피 값을 지불하고 카페에 앉아야 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변화에 맞는 우리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들로 채워 갈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무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들이 다양하게 많아져야 한다.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의 부족은 청소년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학생들은 왜 편의점을 찾는가? 요즘 학생들은 항시 감시를 받으면서 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선생님과 학부모가 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 만났다. 학교와 가정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자녀 세대의 자유와 독립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원에 5분만 늦어도 학부모에게 문자가 도착한다. 학원은 고객인 학부모들과 공조하여 전방위로 학생을 감시한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아이들은 공간적으로 부모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1990년대에 삐삐가 보급되면서 직장인들이 상사에게 더 시달리게 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핵가족 형태도 청소년에게는 불리한 구조다. 청소년에게는 감시에서 벗어난 사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학생이 스타벅스에 가듯 10대들은 편의점에 간다. 천 원에 과자 한 봉지를 사면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의점은 점원과 CCTV 덕분에 안전하다. 중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자신들만의 안전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PC방도 이들의 용돈 내에서 빌릴 수 있는 공간이다. 1,500원가량이면 한 시간 동안 PC방을 전세 낼 수 있다. 학원과 집에서 그들만의 사적 공간을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은 PC방이나 편의점에 삼삼오오 모여 부모의 감시를 벗어난 자신들만의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쇼핑몰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 이유
대형 쇼핑몰에는 변화하는 자연이 없다 보니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쇼핑몰은 몇 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한다. 그리고 더 잦은 변화를 위해 수시로 변화하는 콘텐츠인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한다. 계절이 바뀌는 대신 상영하는 영화를 바꿔 주는 것이다.

로마는 천 년 이상 지속됐는데 몽골제국은 150년 만에 망한 까닭은?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몽골제국이 빨리 망한 것은 건축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제국이 정복지를 통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집트는 피라미드, 로마는 콜로세움, 중국은 만리장성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했다. 그런데 몽골인은 유목 민족이다. 유목민은 목초지를 따라 계속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텐트에서 지냈고, 무거운 건물을 짓지 않았다. 반면 로마인들은 정복지마다 콜로세움 같은 원형경기장을 지었다. 그렇다면 무거운 건축물을 남기는 것이 왜 제국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까?

무거운 돌을 이용한 거석문화는 권력의 상징이다. 더 무거운 건축물일수록 더 큰 권력을 나타낸다. 영국의 스톤헨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 건축된 것이다. 만리장성의 총길이는 9천 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전체 만리장성에서 한 군데만 뚫리면 8,999킬로미터의 만리장성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럼에도 그 거대하고 긴 장성을 건축한 것은 실질적인 방어보다는 ‘안팎으로’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주변 민족을 위협하고, 안으로는 반란을 꿈꾸는 세력을 잠재우기 위해서 말이다.

책의 마무리에서 저자가 바라는 점은 이렇다. 앞으로는 시에서 공원을 만든다면 어디에 들어서는 것이 좋은지 우리들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아파트가 재개발될 때 대형 상가가 들어오는 게 좋은지, 아니면 연도형 가게가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게 좋은지 생각해 보고 주민 회의에서 의견을 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 스스로가 자신이 살 곳을 더 화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도시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 힐링이 필요할 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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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컨텐츠팀에서 시리즈로 제작한 책으로 역사, 과학, 생활문화 그리고 경제로 총 4권의 시리즈인다. 이 책은 그 중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이다. 이 시리즈는 모두 5개의 장에 50개의 이야기들로 짧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에서 전혀 몰랐었던 새로운 사실들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읽으면서 놀랍기도 했고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나폴레옹은 정말 키가 작았을까?
실제 나폴레옹의 키는 작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키가 작다는 소문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나폴레옹 사후에 부검을 했는데, 그 부검 기록서에 기재된 나폴레옹의 키는 프랑스식 야드파운드법으로 5피에(pied) 2푸스(pouce)였다. 이것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5피트(feet) 2인치(inch)가 된 것이다. 즉,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것은 나라 간의 단위 차이로 생겨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1피에는 32.48센티미터이고 1피트는 30.48센티미터이므로 프랑스 피에는 영국의 피트보다 1.06배(약 2센티미터) 더 계산해야 한다. 프랑스의 5피에 2푸스를 미터로 계산하면 나폴레옹의 키는 약 169센티미터이지만, 영국의 5피트 2인치를 미터로 계산하면 약 158센티미터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키가 150센티미터대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실제 그의 키는 169센티미터였고, 당시 프랑스인 남자의 평균 신장이 164센티미터 정도였으니 오히려 큰 키에 속했다. 나폴레옹이 키가 작다는 소문이 확산하는 데 한몫한 것은 주변 환경 탓일 수도 있다. 황제가 된 후에 나폴레옹은 근위대와 늘 함께했는데 당시 근위대는 평균 170센티미터대 후반의 장신들이었다. 이들로 인해 나폴레옹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던 것이다.

아이작 뉴턴의 다른 직업
우리가 흔히 아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게는 독특한 직업이 하나 더 있었다. 그에겐 탐정이라는 독특한 이력도 있었다. 53세에 오랫동안 교수로 몸담았던 케임브리지 대학을 떠난 뉴턴은 런던으로 와서 영국 조폐국 감사직을 맡게 된다. 그는 사람이나 상황을 관리하는 일에 학식도 경험도 별 관심도 없었겠지만 조폐국 감사로서는 탁월했다.

그가 조폐국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당시 영국에서의 화폐문제가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전을 금과 은으로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상인들은 조폐국 내부 인사들과 공모해 무거운 동전을 사들여 녹인 후 가벼운 동전으로 만들거나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서 나온 금을 모으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당시 영국 재무장관 윌리험 라운스는 1695년 뉴턴에게 조언을 구했고 이렇게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하면서 화폐를 표준화하는 화폐 개혁을 추진했다. 위조화폐를 방지하기 위해 동전 테두리에 톱니무늬를 새겨넣게 했고 이렇게 하자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사람들이 사라져 위조화폐를 방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한 또다른 일은 위폐범들을 잡는 일이었다. 뉴턴은 위폐범들을 잡기 위해 수사관으로서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뉴턴은 1696년부터 3년간 조폐국 감사로 재임하면서 위폐범 수십명을 추적, 체포하고 기소했고 1699년부터 죽기전인 1727년까지 약 39년간 영국 조폐국장으로 일했다. 천재 과학자가 탐정으로 위페범을 추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달러는 미국의 돈이 아니다?
달러는 미국의 화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기축통화다. 그런데 달러는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달러는 원래 유럽에서 통용되던 은화를 가리키던 용어였다. 은화의 원조는 독일에서 화폐로 쓰던 요아힘스탈러(joachimsthaler)인데, 탈러(thaler, taler)라고도 불렀다. 이 이름은 지금은 체코의 영토인 보헤미아 지방의 도시 성 요아힘(St. Joachim)에 있는 한 골짜기에서 유래했다. 1516년 이 골짜기에서 양질의 은광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산골 촌락을 이루자 이 지역을 간단히 ‘골짜기(das Tal)’라고 불렀다. 몰려드는 인파로 주민 수가 약 5,000명에 달하자 루트비히(Ludwig) 왕이 이 촌락을 자유 산악도시로 격상하면서 ‘요아힘의 계곡’이라는 의미로 ‘요아힘스탈(Joachimstha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은화가 요아힘스탈을 따서 요아힘스탈러 또는 탈러그로셴(thalergroschen)이라고 부르다가 탈러로 통일된 것이다.

탈러의 품질은 전 유럽에서 호평을 받아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까지 다양한 탈러가 발행되었다. 탈러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주화로 떠오르면서 점차 화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탈러는 국경을 넘어 다른 고가 은화들의 이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에서는 ‘tallero’, 네덜란드에서는 ‘daalder’,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daler’, 영국에서는 ‘dallar’로 각국에서 발행하는 은화의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달러의 기원이 된 독일은 1873년에 탈러에서 마르크로 화폐 이름을 바꾸었다.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달러가 어떻게 미국 화폐가 되었는지는 미국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은 영국 식민지였던 시기는 물론이고 독립을 선언한 1776년 이후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될 때까지도 독자적인 화폐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1785년 7월 6일에 대륙 의회에서 “미합중국의 화폐 단위는 달러로 지정한다”는 내용을 공표했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등의 외국 화폐와 각 주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혼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92년 달러를 미국의 공식 화폐로 지정하면서 근대 국가 최초로 10진법 화폐체계를 도입했다. 그 후 1913년 미국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은행을 출범하고 흔히 달러로 일컬어지는 연방준비권을 발행하면서도 이 전에 발행된 국법은행권, 금증서, 은증서 등의 유통을 허용해 화폐체계는 여전히 복잡했다. 그러나 이후에 연방준비권을 제외한 나머지 화폐의 추가 발행이 중지됨에 따라 현재와 같이 유통 지폐의 99퍼센트가 연방준비권, 지금의 달러로 단순화된 것이다.

달러가 미국 공식 화폐로 채택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 파운드화에 반감을 갖고 있었기에
당시 에스파냐의 중남미 식민지 통화로 널리 유통되고 있던 다레라 은화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다. 다레라의 영어 발음이 바로 달러다. 미국이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반감으로 달러화를 채택했던 사실은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조선시대에도 국민투표가 있었다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기록이 조선시대에 이미 등장한다. 때는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때에 있었다. 1430년에 세종대왕은 조세제도의 개혁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세종대왕은 기존의 조세제도인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공법을 도입하고자 했다. 답험손실법은 관리나 토지 주인이 직접 농작의 상황을 조사해 보고하면 작황의 손결에 따라 세금을 덜어주거나 면제하던 세율 규정법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조사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조작과 부정부패가 많이 발생했다. 세종대왕이 추진한 공법은 전국 각 도를 토질에 따라 나누고 모두 27종의 전등에 따라 다른 세율을 적용해 조세하는 제도로 세종대왕은 이 공법의 제정을 두고 백성들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국민투표의 결과 찬성이 57.1%로 나왔고 세종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결국 시행까지 17년이 걸리게 되지만 백성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한 세종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 책의 장점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짧고 잠깐씩 읽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루하고 긴 역사책이 아니라 흥미롭고 짧고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어 출퇴근이나 이동 시 읽기에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EBS BOOKS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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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똑똑해지는 과학 속 바하인드 스토리

이 책은 EBS 오디오 콘텐츠님에서 만든 4군의 시리즈 중 한권이다. 이 시리즈의 모든 책들이 50개의 주제에 대해 5개의 챕터로 나눠 이야기해준다. 50가지의 다양한 이야기에서 처음 알게된 많은 사실들이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도 해결하지 못한 불치병
혹시 히포크라테스환이란 단어를 아는가? 히포크라테스는 환관들에게는 대머리가 없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래서 그는 탈모와 성의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불치병이다. 히포크라테스도 대머리로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머리인 사람이라도 머리가 남아있는데 옆에서 띠모양으로 뒷통수까지 이어지는 그 대머리의 머리 모양을 히포크라테스환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불태워 번식을 시도하는 식물
자살을 해서 오히려 종족을 번식하려고 하는 식물이 있다. 쉬오크와 뱅크스소나무가 그런 식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뿌리내린 터전에서 불이 나기만을 기다린다. 이 식물들은 200도 이상의 고온에서만 솔방울을 열어 씨앗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불이 났을 때 온도가 높아져 상승기류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은 이 식물들은 자신들의 씨앗에 날개를 달고 불로 만들어진 상승기류에 날개 달린 씨앗을 날려보낸다. 이 식물들이 불이 난 이후 씨앗을 퍼뜨리는 또 다른 이유는 경쟁자들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불에 타 죽으면 새로운 새싹은 경쟁자들이 차지했던 햇빛을 빼앗아 올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불타 죽은 경쟁자들은 거름이 되어 새싹의 생장을 돕는다.

쉬오크와 뱅크스소나무가 종족을 번식하려고 불을 이용하는 반면, 스스로를 불태워 자살을 택하는 꽃도 있다. 북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와 지중해 연안에 서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인 '시스투스'가 그 주인공이다. 시스투스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시스투스는 자신이 서식하는 주변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나 밀도가 높아지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주위가 빽빽해지고 외부 온도가 32도 이상 올라가는 여름 무렵이면 내부에서 오일을 만들어 뿜어낸다. 이 오일은 35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불이 붙는 강력한 휘발성 오일이다.

이 오일에 불이 붙어 시스투스의 몸이 불타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던 다른 식물들도 화재로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만다. 고온 건조한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가끔 자연발화로 불이 나는데 시스투스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시수트스가 자신만이 여유로운 공간에서 생존하고자 할 때 왜 자살을 선택할까? 그 이유는 바로 씨앗에 있다. 시스투스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기 전에 불에 타지 않고 잘 견디는 내화성 씨앗들을 몸속에 숨긴다. 시스투스는 알칼리 토양에 강한 식물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경쟁자들이 모두 불타서 없어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싹을 틔운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고 결국 재가 되어 후손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유독 고양이가 귀여운 이유
사람들은 고양이처럼 작고 둥글둥글한 동물 또는 아기를 보면 귀엽다고 생각한다. 이는 '베이비 스키마'라는 용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베이비 스키마는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정립한 개념이다. 스키마는 정보를 통합하고 조직화하는 인지적 개념 또는 틀을 의미하며 도식이라고도 한다. '유아도해'라고도 불리는 베이비 스키마는 사람이나 다른 영장류가 육아 행동을 일으키는 특징을 조합을 나타내는 도식이다. 육아 행동은 동물이 새끼를 기를 때하는 행동으로 젖을 먹이거나 외부 위협에서 보호하는 행위를 말한다. 포유류나 조류는 베이비 스키마의 특징을 갖고 태어난다. 태어난 후 일정 기간 어미의 보호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미에게 육아 행동을 유도하고 어미의 보호가 없어졌을 때 다른 동물에게도 보호 본능을 느끼게 하여 살아남기 위해 생긴 특징이다.

성체 포유류나 조류 또한 이런 유도에 반응하도록 신경체계가 조직화되어 있다. 그리고 성체가 되면 이러한 특징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성체가 되어도 베이비 스키마의 특징을 유지하는 동물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양이이다. 고양이가 성체가 되어도 귀여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색, 셸레 그린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색, 그 이면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의 당뇨, 클로드 모네의 실명, 빈센트 반 고흐의 정신병은 모두 이것을 즐겨 사용한 결과였다. 정복자 나폴레옹도 이것때문에 방 안에서 죽어갔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바로 '셸레 그린'이라는 초록색 물감이다.

셸레 그린은 19세기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물감, 벽지, 옷, 장신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흔히 쓰이던 녹색 안료이다. 비소를 연구하던 스웨덴의 과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1775년 녹색 화합물 비산구리를 발견한 데서 유래했다 셸레는 이 초록색에 자신의 이름을 따 '셸레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색은 곧바로 인기를 얻어 원단, 벽지, 종이 , 염료, 음식 색소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셸레 그린을 즐겨 사용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는데 많은 인상파 화가가 당시 물감에 쓰였던 수은, 납, 비소 등에 중독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세잔은 만성 비소 중독으로 당뇨병을 앓았고 모네는 눈이 멀었다. 반 고흐는 정신병을 앓았고 그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에 그는 물감을 직접 먹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이들이 비소에 중독되었다는 견해는 신빙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런 위험한 비소가 들어간 셸레 그린을 19세기엔 많이 사용했다.

19세기 초에는 영국의 거의 모든 주택에서 녹색 벽지가 사용되었다. 또한 초록색의 드레스를 많은 귀부인들이 입으며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죽음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20세기 말쯤에 와서야 셸레 그린이 죽음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됐다. 죽음의 녹색의 충격은 그 이후로 독극물을 상징하는 색이 되어 오늘날 독극물 표시에 녹색을 사용하게 되었다.

원래 빨대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만든 것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시원한 맥주이다. 요즘은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맥주를 컵에 따라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빨대가 원래 맥주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빨대는 기원전 3000년경 최초의 문명이었던 수메르에서 처음 사용했다. 수메르 유적 발굴 도중에 수메르인이 맥주를 제조하고 나서 큰 병에 맥주를 담아 긴 빨대를 꽂아 마시는 모습이 새겨진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신의 선물이라고 여겨 주식처럼 즐겼다. 당시 생산하는 보리의 40%가 빵이 아닌 맥주 제조에 사용될 정도로 맥주는 수메르문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럼 수메르인들이 맥주를 왜 컵이 아니 빨대를 사용해 마셨을까? 그 이유는 당시 맥주를 제조하는 방식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구운 빵을 가루로 만들어 물을 붓고 효모를 첨가해 맥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맥주에 침전물이나 부유물이 많았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다가 길고 가는 짚을 꺾어 중간층에 있는 맥주만을 섭취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풍습은 이집트로도 이어져 이집트의 왕들도 빨대로 맥주를 마셨고 이 빨대가 유적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우리가 빨대라고 부르지만 영어로는 짚이라는 뜻의 스트로를 쓰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다.

간단하게 살펴본대로 이 책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짧고 재미있는 50개의 이야기들은 잠깐잠깐씩 읽기에도 참 좋은 책이다.

알면 똑똑해지는 과학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EBS BOOKS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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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sejinyiwc

이별의 수법 - 와카타케 나나미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장편 소설이다. 한국에는 이 책보다 2년이나 후에 나온 단편집 [조용한 무더위]가 먼저 나왔고 이전 작품인 이 장편 소설이 뒤늦게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40대의 여성 탐정 하무라 아키라가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며 겪고 마주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탐정이지만 전에 일하던 탐정사무소가 문을 닫자 잠정 휴업중으로 살인곰 서점에서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게 된 하무라는 어느날 하무라는 서점 점장 도야마로부터 고서를 판매하겠다는 집으로 가서 책을 받아오라는 문자를 받는다. 그래서 자전거를 돌려 점장이 말한 집으로 간 하무라는 그곳에서 폐기물 처리를 위해 온 두 사람을 마주한다. 폐기물을 처리하며 집에서 발견된 책들을 정리하던 중 폐기물을 꺼내면서 무너진 균형으로 집 바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 현장에서 한 구의 백골 사체를 발견하게 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먼지를 마시고 사고를 당해 하무라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오래된 백골에서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온 것으로 보고 오래전 사라진 집주인의 남편으로 판단하지만 하무라는 예리한 추리로 그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의 정체를 밝힌다. 하무라의 조사로 그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파헤치게 되며 하무라는 무사히 병원을 퇴원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자가 찾아와 그녀에게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다. 의뢰를 한 의뢰인은 하무라가 입원한 병실에서 같이 있었던 노년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하무라에게 찾아온 여자는 바로 그 노년의 여인의 조카였다. 같은 병실에서 있으면서 하무라가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사건을 의뢰하려고 한 것이었다.
사건을 의뢰한 노년의 여인은 오래전에 유명했던 여배우였다. 왕년의 인기 여배우 후부키는 20여년 전에 사라진 자신의 딸 시오리를 찾고 싶다고 했다. 후부키가 자신의 딸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암 말기라 죽기전에 딸을 만나고 싶은 것이었다. 착수금으로 그녀에게 300만엔을 건내받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사건을 맡을 수 없는 하무라는 대형 탐정업체 도토에 의뢰하고 자신이 도토에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을 맡는다.

사건을 조사하게 된 하무라는 하부키가 20년 전에도 형사에서 정년퇴직하고 탐정을 개업한 이와고란 사람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건을 조사하던 그는 행방불명된 것이었다. 하무라는 그가 조사한 사건의 자료를 얻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를 만나 얘기를 듣는다. 그녀는 하무라에게 자신의 남편도 찾아봐 달라고 한다.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을 받고 사건을 조사하던 하무라에게 한 여자가 접근한다. 구라시마 마미라고 하는 여성으로 나이대는 하무라와 비슷한 40대로 그녀는 연애사기를 당했다는 얘기를 하며 살인곰서점에 나타나 하무라에게 접근하고 당분간 살 집을 구한다며 하무라가 사는 쉐어하우스에까지 입주하게 된다. 시오리의 행방을 조사하는 그녀에게 경찰의 도청이 시도된 것을 발견하고 경찰은 곧 그녀에게 탐정법을 위반했으니 자신들의 수사에 협조하라며 협박을 한다. 경찰들은 하무라에게 그녀를 감시하며 경찰에 정보를 줄 것을 요구한다.

하무라는 실종된 시오리를 찾는 수사를 진행하며 한편으로는 자신과 함께 살게 된 수상한 여인 마미를 감시하게 된다. 시오리의 실종과 관계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하무라는 시오리의 실종의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사건을 수사할수록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 책의 다음 이야기인 [조용한 무더위]에서처럼 작은 사건들이 여러개 나오는 단편이 아니라 한 여인의 실종에 대한 사건을 해결하는 장편이라 조금은 길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여성 탐정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활약을 보는 재미는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별의 수법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내친구의서재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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