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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본기

사마천 지음
민음사 펴냄

사기 본기 - 사마천(김원중, 민음사)

사기 본기는 사기 중에서 오제본기부터 효무본기까지의 본기 12편을 담았다. 이 책은 사기를 번역하고 강의하는 김원중 교수의 개정판이다. 역사적 순서에 의해 중국의 신화인 오제부터 시작해서 하-상(은)-주-춘추-전국-통일 진나라-한나라까지의 주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흔히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고 사기를 집필하던 때는 한무제의 시기라 한무제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본기에서 다루는 황제와 같은 인물의 배열에 황제는 아니지만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던 두 인물이 추가되어 있다. 초패왕 항우와 여태후가 그들이다.

오제본기
오제란 중국 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다섯 명의 제왕으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으로 오제란 사실상 신화나 전설에 가깝다. 초기 반인반수의 원고시대를 지나 인간들은 모계 중심의 사회에서 서서히 부계 중심의 사회로 바뀐다. 약 5,6천 년 전 중국의 넓은 땅에는 이족, 강족, 적족, 묘족들이 무리를 지어 살았다. 그들 부족은 작고 큰 나라를 이루어 수많은 제후국, 소위 부족 국가 형태로 존재했다.

당시 중국을 다스리던 사람은 염제 신농이었으나 덕이 부족하여 제후들이 서로 침략하고 약탈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이때 제후국 중 하나인 유웅국의 왕 소전의 아들 헌원은 세력을 키워서 신농의 세력과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이 중국 역사 최초로 기록된 판천대전이다. 이 전쟁으로 헌원이 중국의 천자가 되어 중국을 다스린다.

헌원이 중국을 다스릴 무렵, 강족의 후손 중이 치우라는 두령이 살았다. 치우가 다스리는 강족은 황하 북쪽에 살고 거란, 흉노, 말갈족 등이 모두 강족에 속했다. 중국에선 이들을 동이라고 불렀다. 헌원과 치우의 세력은 전쟁을 벌이고 이 전쟁에서 헌원이 승리하며 제후들은 그를 천자로 추대하고 황제로 불렀다.

중국의 역사의 삼황 오제에서 오제(5황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중 첫번째 인물은 바로 이 황제이다. 한자가 발명된 시기도 황제가 다스리던 시기로 황제의 사관인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톱자국을 모방해서 상형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 문명을 크게 일으킨 황제가 죽고 손자인 전욱이 제위에 오르고 그의 아들 곡이 제위에 오르고 또 그의 아들 방훈이 제위에 오르니 바로 그가 요임금이다. 요임금의 뒤를 이어 순임금이 제위에 오른다. 그리고 순의 뒤를 이어 우가 제위에 오른다. 우임금에 의해 하왕조가 시작되고 요순우에 의해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하왕조에 역사 최초의 폭군 걸왕이 등장한다.

걸왕은 하왕조 11대 천자였다. 하왕조의 시대에는 약탈혼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걸왕에게 한 간신이 미녀가 많은 유시국을 점령할 것을 제안한다. 군사를 이끌고 공략한 유시국은 살아남기 위해 걸왕에게 바칠 공녀를 모집한다. 이때 말희라는 여인이 공녀로 뽑히고 유시국왕은 걸왕에게 공물과 말희를 바치고 정전을 얻어낸다. 말희의 제안에 따라 걸왕은 대궐에 연못을 파고 그곳에 술을 채우고 나무에 구운 고기를 메달아놓고 3천명의 궁녀들을 나체로 만든 후 연못에서 술을 마시고 나무에 메달아 둔 고기를 먹게하고 그 모습을 술연못에 띄운 배에서 보며 즐겼다. 그 유명한 주지육림이다.



걸왕이 말희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충신인 관용봉이 간언하자 걸왕이 관용봉을 참수한다. 이를 본 신하인 이윤은 상나라(은나라)로 망명해서 탕왕에게 간다. 탕왕은 걸왕이 관용봉을 참수한 것을 비난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걸왕에게 잡혀서 옥에 갖힌다. 탕왕의 신하들이 말희에게 뇌물을 주고 풀려나게 해준다. 하나라의 십분의 일 정도인 상나라의 탕왕은 이윤의 의견에 따라 제후들을 이끌고 하나라를 공략한다. 요부 말희는 탕왕의 군사들에 의해 난도질당해 죽임을 당한다. 걸왕도 남소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하나라는 상나라의 탕왕에 의해 무너지고 은의 시대가 찾아온다. 탕왕은 은나라의 시조가 된다. 상나라가 은왕조로 바뀐것은 19대 반경 때의 일이다. 탕왕 이후 중국은 다시 혼란해진다. 반경은 쇠퇴한 국력을 일으키고자 도읍을 은허로 옮긴다. 이 때부터 상왕조를 은왕조로 부르게 됐다. 500년의 왕업을 이어오던 은왕조는 폭군 신(주왕)이 천자가 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주왕은 천자가 된 후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살았다. 은왕조의 이웃에 유소국이라는 작은 국가가 있었다. 유소국 왕 소후에게는 달기라는 딸이 있었다.

주왕은 소후에게 딸을 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하고 분풀이로 유소국을 공격한다. 이때 달기는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를 빌면서 주왕의 여자가 된다. 주왕의 여자가 된 달기는 걸왕의 주지육림을 만들고 싶다고 주왕에게 부탁하여 하나라 걸왕의 주지육림이 하나라에서도 만들어진다. 주왕과 달기는 궁녀들과 신하들을 모두 옷을 벗고 연못의 술을 마시고 나무에 메달린 고기를 먹게하고 음탕한 짓을 하게 만들고 그것을 구경하며 즐거워했다.



그 와중에도 옷을 벗지않고 주왕의 명을 따르지 않은 신하들에게는 달기가 제안한 형벌이 가해졌다. 포락형이란 형벌로 구운 구리쇠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기둥을 걸어가도록 한 것인데 기름이 발라진 구리기둥이라 미끄러지면 밑에 불구덩이에 떨어져 타 죽게 되는 형벌이었다. 은나라의 국력이 주왕과 달기에 의해 점점 약해지면서 은나라의 제후국 중 하나인 주나라의 희창은 작은 국가들을 병합하면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희창의 상부는 태공망 여상이었다. 여상이 태공망이라는 호가 붙은 이유는 바로 희창의 조부인 태공이 바라고 기다리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희창이 죽고 그의 아들 무왕이 주나라의 왕이 된고 태공망 여상의 도움으로 무왕은 제후국들을 모아서 부패한 은나라를 공략한다. 그리고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가 천자가 된다.

주나라의 세력이 점점 약화되면서 춘추시대에 약 139개의 나라들이 경쟁하며 주왕실을 받들며 다섯 개의 패자가 등장한다. 춘추 시대에는 강한 국가들이 작은 나라들을 흡수 통합하게 되고 전국 시대로 들어서면서 139개 정도의 나라들이 7개의 나라들로 크게 정리된다. 이때 일곱 개의 강국들을 전국 칠웅이라 불렀다. 이 시기에 사상적으로 다양한 학문들이 등장하고 소진과 장의의 합종과 연횡책으로 일곱 나라가 견재하고 공격하며 결국 진나라가 통일하게 된다. 전국 칠웅을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진나라의 소양왕의 손자 이인은 조나라에 볼모로 보내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유춘관이라는 요정을 찾은 이인은 요정의 주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가게 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위나라 대상인 여불위는 그를 보고 큰 뜻을 품게 된다. 이인을 이용하여 큰 이익을 얻을 계획을 세운다.


진나라 소양왕은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는 진나라 사람을 미워했으며 이인도 조나라에서 업신여김을 당하며 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여불위는 자신의 재산을 이용해 이인을 옆에서 보좌하며 그를 태자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소양왕의 부인인 화양부인에게 접근하여 그녀에게 이인을 양자로 맞도록 설득한다. 당시 장례 풍습에 따라 왕이 죽으면 가장 총애하는 후비를 함께 순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화양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었으 므로 이 점을 이용하여 이인을 양자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당시 여불위에게는 조희라는 첩이 있었는데 조희는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으나 이인은 조희를 사랑하게되어 여불위에게 조희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여 여불위는 조희의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이인에게 조희를 시집보낸다.


장차 이인이 왕이 되면 자신의 아이가 태자가 되어 진나라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 아이가 바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영정)였다. 여불위는 모든 장애요소들을 제거하여 결국 이인을 태자(왕의 후계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인(자초)가 왕이 된 후 3년만에 죽고 13세의 영정이 진왕이 된다. 모든 권력을 손에 얻은 여불위를 조희는 끊임없이 유혹하여 그는 자신의 식객 중 노애란 사람을 거짓으로 궁형을 한 것으로 꾸미고 조희의 몸종으로 보내어 유혹을 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만방자해진 노애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여불위에게 진압을 당한다. 이 일로 노애를 조희에게 보낸 사람이 여불위였다는 사실로 그는 귀양을 보내는 벌을 받는데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진시황은 전국 순행 도중에 사망하고 환관 조고와 이사의 계략으로 막내아들 호혜가 이세황제가 된다.

2세 황제가 즉위한 이후에도 축조사업은 지속되고 농민 징발은 심해지자 봉기가 일어난다.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나지만 오합지졸에 불과한 그들은 진나라 군대에 격파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반란 세력이 등장하는데 유방과 항우가 그 중 하나다. 여러 나라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항우가 초나라 회왕을 세우고 초나라가 독립운동의 중심세력이 된다. 초회왕은 함양을 먼저 점령한 자를 그곳의 왕으로 삼겠다고 선포하고 항우와 유방은 함곡관을 점령하기 위해 경쟁하지만 유방이 함곡관을 먼저 점령하자 항우는 40만 대군을 끌고와 유방을 공격할 준비를 하자 유방은 함곡관을 항우에게 내준다. 항우와의 결투에서 유방이 승리하고 기원전 202년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올라 한 고조가 되었다. 한나라는 섭정이었던 왕망이 세운 신나라에 의해 잠시 맥이 끊겼었다. 이 시기에 한나라는 전한(서한, 기원전 202년 ~ 8년)과 후한(동한, 25년 ~ 220년)으로 나뉜다.

92년 이후, 환관들의 정치 개입이 점점 심해졌고, 외척 세력과 황태후와의 권력 다툼 등으로 인해 결국 한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또한 왕조는 황건의 난과 오두미도의 난 등을 선동한 도교의 등장에 의해 위협받게 되었다. 후한 영제 (재위 168년 - 189년)의 죽은 후 환관들은 군인들에 의해 학살을 당하고 이후 귀족들과 장군들이 군주가 되어 국가를 나누어 가졌다. 위왕 조비가 후한 헌제의 황위를 빼앗음으로써 한나라는 멸망하게 되었다.

후한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환관이다. 특히 10명의 환관인 십상시의 횡포가 심해 농민 봉기가 시작되었고 불긔 기운을 타고 세워진 한나라 다음에는 흙의 기운을 가진 시대가 온다고 믿고 노란색 띠를 머리에 두르고 봉기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다. 12권 효무 본기에서는 사마천의 개인적인 감정이 실려 있다. 효무 본기는 한무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제는 한나라를 제국의 반석에 올려 놓았으나 이 편에서는 신선과 방사에 빠진 무능한 인물로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무제에 대한 감정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사기는 이렇게 본기로 시작해서 서, 세가, 열전으로 구성되는데 열전에서 다루는 인물들과 본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사기는 죽기 전에는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 인생이 재미 없을 때 추천!
2022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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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컨텐츠팀에서 시리즈로 제작한 책으로 역사, 과학, 생활문화 그리고 경제로 총 4권의 시리즈인다. 이 책은 그 중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이다. 이 시리즈는 모두 5개의 장에 50개의 이야기들로 짧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긴 책이다. 이 책에서 전혀 몰랐었던 새로운 사실들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읽으면서 놀랍기도 했고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나폴레옹은 정말 키가 작았을까?
실제 나폴레옹의 키는 작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키가 작다는 소문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나폴레옹 사후에 부검을 했는데, 그 부검 기록서에 기재된 나폴레옹의 키는 프랑스식 야드파운드법으로 5피에(pied) 2푸스(pouce)였다. 이것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5피트(feet) 2인치(inch)가 된 것이다. 즉,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것은 나라 간의 단위 차이로 생겨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1피에는 32.48센티미터이고 1피트는 30.48센티미터이므로 프랑스 피에는 영국의 피트보다 1.06배(약 2센티미터) 더 계산해야 한다. 프랑스의 5피에 2푸스를 미터로 계산하면 나폴레옹의 키는 약 169센티미터이지만, 영국의 5피트 2인치를 미터로 계산하면 약 158센티미터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키가 150센티미터대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실제 그의 키는 169센티미터였고, 당시 프랑스인 남자의 평균 신장이 164센티미터 정도였으니 오히려 큰 키에 속했다. 나폴레옹이 키가 작다는 소문이 확산하는 데 한몫한 것은 주변 환경 탓일 수도 있다. 황제가 된 후에 나폴레옹은 근위대와 늘 함께했는데 당시 근위대는 평균 170센티미터대 후반의 장신들이었다. 이들로 인해 나폴레옹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던 것이다.

아이작 뉴턴의 다른 직업
우리가 흔히 아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게는 독특한 직업이 하나 더 있었다. 그에겐 탐정이라는 독특한 이력도 있었다. 53세에 오랫동안 교수로 몸담았던 케임브리지 대학을 떠난 뉴턴은 런던으로 와서 영국 조폐국 감사직을 맡게 된다. 그는 사람이나 상황을 관리하는 일에 학식도 경험도 별 관심도 없었겠지만 조폐국 감사로서는 탁월했다.

그가 조폐국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당시 영국에서의 화폐문제가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동전을 금과 은으로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상인들은 조폐국 내부 인사들과 공모해 무거운 동전을 사들여 녹인 후 가벼운 동전으로 만들거나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서 나온 금을 모으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당시 영국 재무장관 윌리험 라운스는 1695년 뉴턴에게 조언을 구했고 이렇게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뉴턴은 조폐국에서 일하면서 화폐를 표준화하는 화폐 개혁을 추진했다. 위조화폐를 방지하기 위해 동전 테두리에 톱니무늬를 새겨넣게 했고 이렇게 하자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사람들이 사라져 위조화폐를 방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한 또다른 일은 위폐범들을 잡는 일이었다. 뉴턴은 위폐범들을 잡기 위해 수사관으로서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뉴턴은 1696년부터 3년간 조폐국 감사로 재임하면서 위폐범 수십명을 추적, 체포하고 기소했고 1699년부터 죽기전인 1727년까지 약 39년간 영국 조폐국장으로 일했다. 천재 과학자가 탐정으로 위페범을 추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달러는 미국의 돈이 아니다?
달러는 미국의 화폐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기축통화다. 그런데 달러는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달러는 원래 유럽에서 통용되던 은화를 가리키던 용어였다. 은화의 원조는 독일에서 화폐로 쓰던 요아힘스탈러(joachimsthaler)인데, 탈러(thaler, taler)라고도 불렀다. 이 이름은 지금은 체코의 영토인 보헤미아 지방의 도시 성 요아힘(St. Joachim)에 있는 한 골짜기에서 유래했다. 1516년 이 골짜기에서 양질의 은광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산골 촌락을 이루자 이 지역을 간단히 ‘골짜기(das Tal)’라고 불렀다. 몰려드는 인파로 주민 수가 약 5,000명에 달하자 루트비히(Ludwig) 왕이 이 촌락을 자유 산악도시로 격상하면서 ‘요아힘의 계곡’이라는 의미로 ‘요아힘스탈(Joachimstha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은화가 요아힘스탈을 따서 요아힘스탈러 또는 탈러그로셴(thalergroschen)이라고 부르다가 탈러로 통일된 것이다.

탈러의 품질은 전 유럽에서 호평을 받아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까지 다양한 탈러가 발행되었다. 탈러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주화로 떠오르면서 점차 화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탈러는 국경을 넘어 다른 고가 은화들의 이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탈리아에서는 ‘tallero’, 네덜란드에서는 ‘daalder’,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daler’, 영국에서는 ‘dallar’로 각국에서 발행하는 은화의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달러의 기원이 된 독일은 1873년에 탈러에서 마르크로 화폐 이름을 바꾸었다.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달러가 어떻게 미국 화폐가 되었는지는 미국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은 영국 식민지였던 시기는 물론이고 독립을 선언한 1776년 이후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될 때까지도 독자적인 화폐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1785년 7월 6일에 대륙 의회에서 “미합중국의 화폐 단위는 달러로 지정한다”는 내용을 공표했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등의 외국 화폐와 각 주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혼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92년 달러를 미국의 공식 화폐로 지정하면서 근대 국가 최초로 10진법 화폐체계를 도입했다. 그 후 1913년 미국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방준비은행을 출범하고 흔히 달러로 일컬어지는 연방준비권을 발행하면서도 이 전에 발행된 국법은행권, 금증서, 은증서 등의 유통을 허용해 화폐체계는 여전히 복잡했다. 그러나 이후에 연방준비권을 제외한 나머지 화폐의 추가 발행이 중지됨에 따라 현재와 같이 유통 지폐의 99퍼센트가 연방준비권, 지금의 달러로 단순화된 것이다.

달러가 미국 공식 화폐로 채택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 파운드화에 반감을 갖고 있었기에
당시 에스파냐의 중남미 식민지 통화로 널리 유통되고 있던 다레라 은화를 공식 화폐로 채택했다. 다레라의 영어 발음이 바로 달러다. 미국이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반감으로 달러화를 채택했던 사실은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임에 틀림없다.

조선시대에도 국민투표가 있었다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던 기록이 조선시대에 이미 등장한다. 때는 조선의 4대 왕 세종대왕때에 있었다. 1430년에 세종대왕은 조세제도의 개혁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세종대왕은 기존의 조세제도인 답험손실법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공법을 도입하고자 했다. 답험손실법은 관리나 토지 주인이 직접 농작의 상황을 조사해 보고하면 작황의 손결에 따라 세금을 덜어주거나 면제하던 세율 규정법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조사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조작과 부정부패가 많이 발생했다. 세종대왕이 추진한 공법은 전국 각 도를 토질에 따라 나누고 모두 27종의 전등에 따라 다른 세율을 적용해 조세하는 제도로 세종대왕은 이 공법의 제정을 두고 백성들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국민투표의 결과 찬성이 57.1%로 나왔고 세종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결국 시행까지 17년이 걸리게 되지만 백성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한 세종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 책의 장점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짧고 잠깐씩 읽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루하고 긴 역사책이 아니라 흥미롭고 짧고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어 출퇴근이나 이동 시 읽기에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EBS BOOKS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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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똑똑해지는 과학 속 바하인드 스토리

이 책은 EBS 오디오 콘텐츠님에서 만든 4군의 시리즈 중 한권이다. 이 시리즈의 모든 책들이 50개의 주제에 대해 5개의 챕터로 나눠 이야기해준다. 50가지의 다양한 이야기에서 처음 알게된 많은 사실들이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도 해결하지 못한 불치병
혹시 히포크라테스환이란 단어를 아는가? 히포크라테스는 환관들에게는 대머리가 없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래서 그는 탈모와 성의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불치병이다. 히포크라테스도 대머리로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머리인 사람이라도 머리가 남아있는데 옆에서 띠모양으로 뒷통수까지 이어지는 그 대머리의 머리 모양을 히포크라테스환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불태워 번식을 시도하는 식물
자살을 해서 오히려 종족을 번식하려고 하는 식물이 있다. 쉬오크와 뱅크스소나무가 그런 식물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뿌리내린 터전에서 불이 나기만을 기다린다. 이 식물들은 200도 이상의 고온에서만 솔방울을 열어 씨앗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불이 났을 때 온도가 높아져 상승기류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은 이 식물들은 자신들의 씨앗에 날개를 달고 불로 만들어진 상승기류에 날개 달린 씨앗을 날려보낸다. 이 식물들이 불이 난 이후 씨앗을 퍼뜨리는 또 다른 이유는 경쟁자들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불에 타 죽으면 새로운 새싹은 경쟁자들이 차지했던 햇빛을 빼앗아 올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불타 죽은 경쟁자들은 거름이 되어 새싹의 생장을 돕는다.

쉬오크와 뱅크스소나무가 종족을 번식하려고 불을 이용하는 반면, 스스로를 불태워 자살을 택하는 꽃도 있다. 북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와 지중해 연안에 서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인 '시스투스'가 그 주인공이다. 시스투스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 시스투스는 자신이 서식하는 주변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나 밀도가 높아지면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주위가 빽빽해지고 외부 온도가 32도 이상 올라가는 여름 무렵이면 내부에서 오일을 만들어 뿜어낸다. 이 오일은 35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쉽게 불이 붙는 강력한 휘발성 오일이다.

이 오일에 불이 붙어 시스투스의 몸이 불타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던 다른 식물들도 화재로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만다. 고온 건조한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가끔 자연발화로 불이 나는데 시스투스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시수트스가 자신만이 여유로운 공간에서 생존하고자 할 때 왜 자살을 선택할까? 그 이유는 바로 씨앗에 있다. 시스투스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기 전에 불에 타지 않고 잘 견디는 내화성 씨앗들을 몸속에 숨긴다. 시스투스는 알칼리 토양에 강한 식물이라서 시간이 지나면 경쟁자들이 모두 불타서 없어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싹을 틔운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불태우고 결국 재가 되어 후손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유독 고양이가 귀여운 이유
사람들은 고양이처럼 작고 둥글둥글한 동물 또는 아기를 보면 귀엽다고 생각한다. 이는 '베이비 스키마'라는 용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베이비 스키마는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정립한 개념이다. 스키마는 정보를 통합하고 조직화하는 인지적 개념 또는 틀을 의미하며 도식이라고도 한다. '유아도해'라고도 불리는 베이비 스키마는 사람이나 다른 영장류가 육아 행동을 일으키는 특징을 조합을 나타내는 도식이다. 육아 행동은 동물이 새끼를 기를 때하는 행동으로 젖을 먹이거나 외부 위협에서 보호하는 행위를 말한다. 포유류나 조류는 베이비 스키마의 특징을 갖고 태어난다. 태어난 후 일정 기간 어미의 보호가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미에게 육아 행동을 유도하고 어미의 보호가 없어졌을 때 다른 동물에게도 보호 본능을 느끼게 하여 살아남기 위해 생긴 특징이다.

성체 포유류나 조류 또한 이런 유도에 반응하도록 신경체계가 조직화되어 있다. 그리고 성체가 되면 이러한 특징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성체가 되어도 베이비 스키마의 특징을 유지하는 동물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양이이다. 고양이가 성체가 되어도 귀여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색, 셸레 그린
자연을 상징하는 초록색, 그 이면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의 당뇨, 클로드 모네의 실명, 빈센트 반 고흐의 정신병은 모두 이것을 즐겨 사용한 결과였다. 정복자 나폴레옹도 이것때문에 방 안에서 죽어갔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바로 '셸레 그린'이라는 초록색 물감이다.

셸레 그린은 19세기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물감, 벽지, 옷, 장신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흔히 쓰이던 녹색 안료이다. 비소를 연구하던 스웨덴의 과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1775년 녹색 화합물 비산구리를 발견한 데서 유래했다 셸레는 이 초록색에 자신의 이름을 따 '셸레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색은 곧바로 인기를 얻어 원단, 벽지, 종이 , 염료, 음식 색소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셸레 그린을 즐겨 사용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는데 많은 인상파 화가가 당시 물감에 쓰였던 수은, 납, 비소 등에 중독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세잔은 만성 비소 중독으로 당뇨병을 앓았고 모네는 눈이 멀었다. 반 고흐는 정신병을 앓았고 그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에 그는 물감을 직접 먹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이들이 비소에 중독되었다는 견해는 신빙성이 더욱 높아진다. 이런 위험한 비소가 들어간 셸레 그린을 19세기엔 많이 사용했다.

19세기 초에는 영국의 거의 모든 주택에서 녹색 벽지가 사용되었다. 또한 초록색의 드레스를 많은 귀부인들이 입으며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죽음의 원인을 알지 못했다. 20세기 말쯤에 와서야 셸레 그린이 죽음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됐다. 죽음의 녹색의 충격은 그 이후로 독극물을 상징하는 색이 되어 오늘날 독극물 표시에 녹색을 사용하게 되었다.

원래 빨대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만든 것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시원한 맥주이다. 요즘은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맥주를 컵에 따라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빨대가 원래 맥주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가? 빨대는 기원전 3000년경 최초의 문명이었던 수메르에서 처음 사용했다. 수메르 유적 발굴 도중에 수메르인이 맥주를 제조하고 나서 큰 병에 맥주를 담아 긴 빨대를 꽂아 마시는 모습이 새겨진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신의 선물이라고 여겨 주식처럼 즐겼다. 당시 생산하는 보리의 40%가 빵이 아닌 맥주 제조에 사용될 정도로 맥주는 수메르문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럼 수메르인들이 맥주를 왜 컵이 아니 빨대를 사용해 마셨을까? 그 이유는 당시 맥주를 제조하는 방식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구운 빵을 가루로 만들어 물을 붓고 효모를 첨가해 맥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맥주에 침전물이나 부유물이 많았다. 수메르인들은 맥주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다가 길고 가는 짚을 꺾어 중간층에 있는 맥주만을 섭취하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풍습은 이집트로도 이어져 이집트의 왕들도 빨대로 맥주를 마셨고 이 빨대가 유적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우리가 빨대라고 부르지만 영어로는 짚이라는 뜻의 스트로를 쓰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다.

간단하게 살펴본대로 이 책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짧고 재미있는 50개의 이야기들은 잠깐잠깐씩 읽기에도 참 좋은 책이다.

알면 똑똑해지는 과학 속 비하인드 스토리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EBS BOOKS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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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sejinyiwc

이별의 수법 - 와카타케 나나미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장편 소설이다. 한국에는 이 책보다 2년이나 후에 나온 단편집 [조용한 무더위]가 먼저 나왔고 이전 작품인 이 장편 소설이 뒤늦게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40대의 여성 탐정 하무라 아키라가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며 겪고 마주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탐정이지만 전에 일하던 탐정사무소가 문을 닫자 잠정 휴업중으로 살인곰 서점에서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게 된 하무라는 어느날 하무라는 서점 점장 도야마로부터 고서를 판매하겠다는 집으로 가서 책을 받아오라는 문자를 받는다. 그래서 자전거를 돌려 점장이 말한 집으로 간 하무라는 그곳에서 폐기물 처리를 위해 온 두 사람을 마주한다. 폐기물을 처리하며 집에서 발견된 책들을 정리하던 중 폐기물을 꺼내면서 무너진 균형으로 집 바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 현장에서 한 구의 백골 사체를 발견하게 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먼지를 마시고 사고를 당해 하무라는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오래된 백골에서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온 것으로 보고 오래전 사라진 집주인의 남편으로 판단하지만 하무라는 예리한 추리로 그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신의 정체를 밝힌다. 하무라의 조사로 그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파헤치게 되며 하무라는 무사히 병원을 퇴원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한 여자가 찾아와 그녀에게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다. 의뢰를 한 의뢰인은 하무라가 입원한 병실에서 같이 있었던 노년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하무라에게 찾아온 여자는 바로 그 노년의 여인의 조카였다. 같은 병실에서 있으면서 하무라가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사건을 의뢰하려고 한 것이었다.
사건을 의뢰한 노년의 여인은 오래전에 유명했던 여배우였다. 왕년의 인기 여배우 후부키는 20여년 전에 사라진 자신의 딸 시오리를 찾고 싶다고 했다. 후부키가 자신의 딸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암 말기라 죽기전에 딸을 만나고 싶은 것이었다. 착수금으로 그녀에게 300만엔을 건내받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사건을 맡을 수 없는 하무라는 대형 탐정업체 도토에 의뢰하고 자신이 도토에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을 맡는다.

사건을 조사하게 된 하무라는 하부키가 20년 전에도 형사에서 정년퇴직하고 탐정을 개업한 이와고란 사람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건을 조사하던 그는 행방불명된 것이었다. 하무라는 그가 조사한 사건의 자료를 얻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를 만나 얘기를 듣는다. 그녀는 하무라에게 자신의 남편도 찾아봐 달라고 한다.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을 받고 사건을 조사하던 하무라에게 한 여자가 접근한다. 구라시마 마미라고 하는 여성으로 나이대는 하무라와 비슷한 40대로 그녀는 연애사기를 당했다는 얘기를 하며 살인곰서점에 나타나 하무라에게 접근하고 당분간 살 집을 구한다며 하무라가 사는 쉐어하우스에까지 입주하게 된다. 시오리의 행방을 조사하는 그녀에게 경찰의 도청이 시도된 것을 발견하고 경찰은 곧 그녀에게 탐정법을 위반했으니 자신들의 수사에 협조하라며 협박을 한다. 경찰들은 하무라에게 그녀를 감시하며 경찰에 정보를 줄 것을 요구한다.

하무라는 실종된 시오리를 찾는 수사를 진행하며 한편으로는 자신과 함께 살게 된 수상한 여인 마미를 감시하게 된다. 시오리의 실종과 관계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하무라는 시오리의 실종의 미스터리를 풀어간다. 사건을 수사할수록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 책의 다음 이야기인 [조용한 무더위]에서처럼 작은 사건들이 여러개 나오는 단편이 아니라 한 여인의 실종에 대한 사건을 해결하는 장편이라 조금은 길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여성 탐정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활약을 보는 재미는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별의 수법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내친구의서재 펴냄

👍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추천!
202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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