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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공이 득점을 결정하지 않는다. 공이 플레이되는 동안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득점이 결정된다. 타자가 주자가 되고, 주자가 1루와 2루,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터치함으로서 득점이 기록된다. 공이 어디로 향하든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새겨진다. 공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야구는 희생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서 기리는 종목이다. 다른 단체 구기 종목에서 볼 수 없는 기록이다. 득점을 도와주는 패스에 기록되는 ‘도움’은 여러 종목에 존재하지만 ‘희생’을 공식 기록으로 남기는 종목은 야구가 유일하다. 자신의 타석, 안타를 칠 수 있는 기회를 희생하고 스스로 아웃을 감수하고 번트를 대서 주자를 진루시키는 행위에 대해 ‘희생번트’를 기록한다. 3루 주자의 득점을 위해 외야 멀리 때린 뜬공에 대해서도 ‘희생뜬공’을 기록한다. 아웃을 당했지만 타율에서 손해 보지 않도록 타수에서 빼는 식으로 공식 보상한다. 희생에 대해 야구가 갖고 있는 태도이다.
다른 종목들이 공을 가짐으로써 ‘공격권’을 얻는 것과는 달리 야구는 수비하는 쪽이 공을 들고 시작한다. 점수를 내는 쪽이 공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막는 쪽이 공에 대한 점유권을 갖는다. 공격과 수비에서 기존 개념의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야구의 복잡한 묘미가 발생한다. 공격과 수비의 주체 전도 현상은 미학적 가치의 변화를 함께 가져온다. 축구와 농구가 득점이라는 목표를 향해 공을 컨트롤하는 기술의 층위를 통해 미학적 가치를 발생시킨다면, 야구는 득점을 하려는 공의 움직임을 막는 행위, 수비를 통해 더 많은 미학적 가치가 발생한다. 야구라는 종목에서는 선수들이 드러내는 미학 차원에서의 발화는 공격보다 수비에서 더 많이 나온다. 공의 소유에 있어 공격과 수비의 전도는 야구에서 해체와 전도, 탈 개념화를 나타내고, 이는 인생과 세상의 비밀을 함께 보여준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은 공격과 수비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공격이 곧 수비이고, 수비가 곧 공격이다. 야구가 때로 인생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비틀림 때문일지도 모른다.
야구도 운명 같은 첫걸음이 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사랑과 운명의 사이. 어느 날 우연히 본 홈런 1개가, 삼진을 잡은 투수의 손짓 하나가 평생 그 팀의 팬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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