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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인문학 9

이용균 지음
경향신문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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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공이 득점을 결정하지 않는다. 공이 플레이되는 동안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득점이 결정된다. 타자가 주자가 되고, 주자가 1루와 2루, 3루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터치함으로서 득점이 기록된다. 공이 어디로 향하든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새겨진다. 공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야구는 희생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서 기리는 종목이다. 다른 단체 구기 종목에서 볼 수 없는 기록이다. 득점을 도와주는 패스에 기록되는 ‘도움’은 여러 종목에 존재하지만 ‘희생’을 공식 기록으로 남기는 종목은 야구가 유일하다. 자신의 타석, 안타를 칠 수 있는 기회를 희생하고 스스로 아웃을 감수하고 번트를 대서 주자를 진루시키는 행위에 대해 ‘희생번트’를 기록한다. 3루 주자의 득점을 위해 외야 멀리 때린 뜬공에 대해서도 ‘희생뜬공’을 기록한다. 아웃을 당했지만 타율에서 손해 보지 않도록 타수에서 빼는 식으로 공식 보상한다. 희생에 대해 야구가 갖고 있는 태도이다.

다른 종목들이 공을 가짐으로써 ‘공격권’을 얻는 것과는 달리 야구는 수비하는 쪽이 공을 들고 시작한다. 점수를 내는 쪽이 공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막는 쪽이 공에 대한 점유권을 갖는다. 공격과 수비에서 기존 개념의 주체와 객체가 전도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야구의 복잡한 묘미가 발생한다. 공격과 수비의 주체 전도 현상은 미학적 가치의 변화를 함께 가져온다. 축구와 농구가 득점이라는 목표를 향해 공을 컨트롤하는 기술의 층위를 통해 미학적 가치를 발생시킨다면, 야구는 득점을 하려는 공의 움직임을 막는 행위, 수비를 통해 더 많은 미학적 가치가 발생한다. 야구라는 종목에서는 선수들이 드러내는 미학 차원에서의 발화는 공격보다 수비에서 더 많이 나온다. 공의 소유에 있어 공격과 수비의 전도는 야구에서 해체와 전도, 탈 개념화를 나타내고, 이는 인생과 세상의 비밀을 함께 보여준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은 공격과 수비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공격이 곧 수비이고, 수비가 곧 공격이다. 야구가 때로 인생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비틀림 때문일지도 모른다.

야구도 운명 같은 첫걸음이 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 사랑과 운명의 사이. 어느 날 우연히 본 홈런 1개가, 삼진을 잡은 투수의 손짓 하나가 평생 그 팀의 팬으로 만든다.
2022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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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선 기세가 팔 할이야. 실령 승부에선 지더라도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차라리 감춰. 니 생가, 감정, 숨소리까지,,,, 그 어떤 것도 상대에게 드러내지 마."

"모든 것은 체력이다... 불쑥 손이 나가는 경솔함, 대충 타협하려는 안일함, 조급히 승부를 보려는 오만함... 모두 체력이 무너지며 나오는 패배의 수순이다. 실력도 집중력도, 심지어 정신력조차도 종국에 체력에서 나온다. 이기고 싶다면 마지막 한 수까지 버텨낼 체력부터 길러."

"그렇게 견디다가 이기는 거요. 쓰라린 상처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돋고! 그렇게 참다 보면 한 번쯤은 기회가 오거든.... 조국수. 바둑판 위에선, 한 번 피하기 시작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승부 각본집

윤종빈 외 1명 지음
스튜디오오드리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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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계속 살게 도와주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종교가 있으면 자살이 ‘그릇된 짓’이라는 생각이 윤리적 저지책 역할을 한다. 물론 죽음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칠 영향이나 모방 자살 염려도 자살을 저지한다. 또 앞에서 봤듯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진화적 항상성(내부와 외부의 자극에도 형태와 생리적 특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것 - 옮긴이)이라는 자기 보존 본능도 있다.
인지 붕괴에 빠지면 이런 장벽들이 하나씩 무너진다. 의미 있는 생각을 하는 사고력을 잃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만 몰두한다. 정상일 때는 고통의 숨은 의미를 찾는 생각이나 영적인 생각을 낳는 추상적인 사고를 한다. 그런데 자살 앞에서는 이런 사고가 놀랍도록 사라진다. 슈나이드먼은 "자살학에서 가장 위험한 어휘는 네 글자로 된 단어(욕설 fuck을 의미 - 옮긴이)뿐이다." 라고 말했다. 달리 말해 자살 의향자는 모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는다. 상황이 흑백이 되었고, 은유적 미묘함 따윈 없이 오직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

나는 죽으려고 했던 심리학자입니다

제시 베링 (지은이), 공경희 (옮긴이) 지음
더퀘스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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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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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인생은 게임'이라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간은 믿으면 안 돼."
신발장에서 로퍼를 꺼내는 마토는 웬일로 저기압이었다. 5교시 수학 시간에 하시모토 선생님이 잡담을 하다 꺼낸 한마디가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든 모양이다.
- 대학 입시에 취업 준비에 육아. 앞으로 많은 시험대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뭐든지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인생은 게임 같은 법이니까.
"마토는 그런 사고방식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어? 내가? 에이, 무슨 소리야, 고다. 오히려 그런 사고방식은 싫어하는 편이랄까."
"왜?"
"인생은 무를 수 없잖아."

지뢰 글리코

아오사키 유고 지음
리드비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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