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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zygy

신해욱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X축 위에는 사람이 없으니까
외줄을 타자.

​그럴까.

*

그런데 나는 어떤 길이의 릴레이에
이렇게 속하고 만 것일까.

​시간은 왜 이토록 따뜻하게
보통빠르기로 보조를 맞추는 것일까.

​초읽기에 들어가서도
나를 버리지 않는 것일까.

​*

​좌표를 잃은 것 같다.

​미래를 팔아 동정을 산 것 같다.

​썩은 동아줄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다.

​깊은 소외감을 추슬러
fuck, 나는 기껏 운다.

- ‘허와 실’, 신해욱


어제는 화요일.
내일은 수요일.
오늘은 음력의 비가 온다.

비를 피해
성모상의 엄지발가락을 문지르고 무릎을 꿇는
흉내를 낸다.

잘하면 은총의 빛이 퍼진다지만
(저는 믿음이 없으니까 보험에 들게 해주십시오)

나는 불신지옥이 무서웠다.

고개를 들면
우연에 중독된 얼굴이 천천히
거기 계실 것이었다.

맹목으로 윙크를 하실 것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강 같은 눈물을 흘리며

도무지 도무지
내일을 참을 수가 없게끔

오늘의 비가 액면 그대로
그칠 수가 없게끔

- ’홍수‘, 신해욱


검은 개가 똥을 먹었다.

검은 개의 혓바닥이 나의 영혼을 핥았다.

검은 개의 눈이 나를 피했다.

그것이 일종의
사랑이어서

나는 슬프고 더러웠다.

추문이 깊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비밀을
개와 나눌 수는 없었다.

- ‘개의 자리’, 신해욱
2022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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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1 Corinthians 13


말은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만 있을 뿐 재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느꼈다.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p. 285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지음
열린책들 펴냄

읽고있어요
2023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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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이렇게 은밀한 일을 벌이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래서 갑자기 죽어 버리면 그런 비밀이 전부 까발려져 마치 살아있던 것 자체가 커다란 음모였던 양 보이게 되는 걸까. - ‘음모’ - p. 171

인내상자

미야베 미유키 지음
북스피어 펴냄

2023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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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은 단지 말들을 떠돌게 하고 싶었다. 대단한 예술 작품, 베스트셀러, 히트작, 영원불멸의 클래식 따위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생각, 아이디어, 논평, 꿈, 일상, 작은 이야기, 소소한 논쟁들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슬프게 스치고 사라졌으면 했다. - p. 71


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약속과 의무라는 규약 너머의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폭력과 파괴, 선택과 충돌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극복할 수 있을까. - p. 115

…스크롤!

정지돈 (지은이) 지음
민음사 펴냄

2023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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