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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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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밭에 푹푹 빠지더라고 원하는 방향으로 걷고 싶은 만큼만 걸을 순 없을까. NM은 허위를 감춘 사막이고, NM 밖은 허위로 포장된 사막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어른만 되면 세상이 나를 알아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세상을 알아버리는 것이었다. 유 대리가 급히 돌아온 이유도 알 것 같다. 저 바깥세상이 언제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한 적 있었나. 소주가 목을 할퀴면서 넘어간다.

볕 아래 맘껏 내놓을 수 없는 사랑이었다. 내놓으면 내놓은 대로 힘든 사랑이었다. 기어이 구석에 처박으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사랑, 모두 꺼내어 볕에 널고 싶다. 누구라도 보송보송 잘 마른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누가 내게, 당신의 이십대는 어땠나요? 물으면, 대답이 마땅치 않다. 트렁크. 여행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좋았겠어요. 글쎄요. 십대 때 원한 이십대가 아니었다. 벌써 서른이다. 삼십대를 마치며 또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을 꾸역꾸역 구겨넣고 다녔던 트렁크를 버려야 한다. 손 안에 꼭 쥘 수 있는 금장단추,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그동안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 시간이 좀 더 흘러야 할 것 같다. 후회되는 삶이 모두 잘못 산 건 아닐 테니까.
2023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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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괜찮아요. 우리 집에서 아빠가 신경 쓸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아들은 사춘기고, 딸은 적당히 아빠를 멀리하고 있고.”
“말투가 참 거슬리네.”
“딱히 사춘기도 아니에요. 사춘기에는 말도 안 건대요. 저는 그래도 아빠랑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래요.”
“아까 재취업할 생각도 없는 집 아빠랑 비교하니까 그렇지.”
“세상은 전부 비교잖아요. 행복이라든지 불행이라든지, 다 상대적이죠. 그러니 비교대상은 최악일수록 좋고요.”

악의는 먹잇감을 가리지 않는다.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 호카리와 호카리 가족에게 송곳니를 드러낼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소문이라는 이름의 권총이 오오와 가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큰 세력인 제 삼자. 총알을 넣은 것은 아야 자신. 하지만 방아쇠를 당긴 것은 호카라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자신이 세간의 악의를 부추기는 입장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다. 아내도 아들도 딸도, 그리고 자신도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며 조용히 나이를 먹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가시의 집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블루홀식스(블루홀6)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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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형이 누구를.... 무엇을 연기했든 여전히 거짓말일 수 있어요.”
“알아. 믿기 쉬운 얘기는 아니잖아. 하지만.....”
나는 늘 ‘하지만’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기질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믿기 어려운 일만큼, 믿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어.”

새벽 2시의 코인 세탁소

박현주 지음
엘릭시르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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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uayt

인간은 누구나 효용감을 느껴야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욕구나 존경이나 사랑만큼 중요하다. 또 어떤 사람들, 특히 평생을 팀 스포츠에 바친 사람들에게는 효용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아이는 부모가 보낸 어린 시절의 피해자다. 모든 어른은 자기 자식에게 자기들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 아니면 누리지 못했던 것을 주려고 애를 쓰니 말이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우리가 만났던 어른들에 대한 반발 아니면 그들을 따라 하려는 시도로 전락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혐오하는 사람이 그걸 사랑하는 사람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이유가 그래서다. 힘든 시절을 보냈던 사람은 다른 현실을 꿈꾸지만 편안한 시절을 보낸 사람은 현실이 달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 애초부터 행복했던 사람은 그 행복을 당연하게 여기기 쉽다.

“다들 최고였어. 여기서도 리그에서, 훈련 캠프에서, 곳곳에서 좋은 선수들을 만나잖아. 하지만 거기서 만나는 선수들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최고로 꼽히는 선수들이야. 평생 그 드래프트를 준비해 왔겠지. 압박감이..... 압박감이 어마어마해.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네. 그 어느 때보다 압박감이 심했다고. 숨 막혀 죽을 것 같았어.”
슛을 날린 테드는 스틱에 몸을 기댄다.
“우리 아빠 말로는 압박감이 특권이래요. 압박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주변에서 기대를 품을 수 있을 만큼 값진 일을 한 적 없다는 뜻이라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 날씨가 거의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내 가을이 눈 깜빡하는 새 지나가고 마침내 겨울이 다시 들이닥친다. 삶은 계속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고 모든 게 다시 한 번 가능해진다.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하고 아름답고 엄청난 모험까지도.

위너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다산책방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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