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로우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
데런 브라운 지음
너를위한 펴냄
읽었어요
어떻게 해야 자기 이야기라는 집을 짓는데 최고의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삶의 청사진을 그리는 단계에서 최고의 조언을 미리 들어두었다면, 실제로 이야기 집을 지으며 마주치게 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저마다의 특징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하나로 모인 힘이 결국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얼핏 모순되게 느껴지는 여러 조언 사이에서도 최고의 조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건축가 단 한 사람에게 책임을 맡겨 모든 작업과 의사 결정을 일임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를테면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하는데 많은 사람이 거기에 매력을 느낀다. 애초에 숙고하는 삶에 수반되는 실존적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게 도와주는 완벽한 틀을 제공한다. 정답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심지어 완벽한 철학이 있다 해도 그 철학을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철학적 해답을 찾는 동안 우리는 늘 열린 마음으로 모순을 견디려고 애쓸 것이며, 삶은 항상 어떤 시스템이나 철학이 제안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존중할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은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닉슨은 교내 괴롭힘 문제에 깊은 관심을 쏟아왔다. 학생들의 발전을 가장 효율적으로 도와줄 만한 실질적인 방법을 찾고 있었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쉽게 무력함을 느끼고, 앞으로도 괴롭힘에 맞서려고 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어떤 일을 ‘잘하지 못했다’고 느낀 경험이 있으면, 다시 그 일을 맞닥뜨렸을 때 의욕 없이 수행하게 된다. 게다가 괴롭힘은 언제나 명백한 문제도 아니고 늘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도 아니다. 엄마가 딸의 외모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것도 괴롭힘과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바꿀 수 있다.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주인공은 성격이 정해져 있어서 행동을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과 다르게 평소 우리 성격에 맞지 않는 행동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보통 화가 났다는 것은 두려움을 느낀다는 뜻이다. 상대의 행동으로 우리가 무기력해질까 봐, 배신당할까 봐,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할까 봐, 버림받을까 봐, 자율성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형편없는 서비스에 화가 나는 이유는 종업원이 우리의 말을 제대로 안 듣고 무시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림받는 것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 받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불안감을 주고, 후자는 뒷걸음질을 하게 만든다.
분노는 분노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이 과정이 한번 시작되면 돌이키기 힘들다. 사건의 실상을 더 냉정하게 보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불행을 과장한 우리의 해석은 선과 악이 맞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남들의 끝 모를 어리석은 짓거리에 불쌍한 희생양으로 등장한다. 동화 속 등장인물들은 현실과 달리 일차원적이다. 그들은 특히 아이들의 정신에 강력한 힘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경향이 있다. 한편 우리의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우리만큼이나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그들의 의도를 동화 속 세상처럼 흑백으로 나누거나 우리의 미래가 우리 상상만큼 극적이거나 역할이 분명한 경우도 드물다.
즉흥적인 감정에서 한발 물러나 그 감정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아주 좋은 출발점이다. 스스로 자기 감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모든 일이 남 탓이고, 언제나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표현을 과장하고, 자기 연민을 드러내며, 늘 억울한 것처럼 군다. 이들이 치료를 받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거나 해결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돕고자 할 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한 걸음 물러서서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정확히 스토아식 원리다. 이 전략이 어느 정도 훈련이 되면 단지 그들의 불평에 공감하고 맞장구쳐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더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래도 괜찮아’의 힘이 효과를 발휘하는 상황은 많다. 주변에 누군가가 우리를 너무 짜증나게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해결할 방법이 있다. 먼저 그 사람의 행동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점을 인정해라. 그런 다음 자신에게 괜찮다고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해라. 이 말이 체화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에게는 조준하고 있는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까. 그 사람의 행동을 머릿속으로 반복 재생하거나 그 사람이 항상 그런 식으로 우리를 얼마나 짜증나게 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해서 상황을 악화시키지 마라. 괜찮다는 느낌을 완전히 몸속에 녹아들게 하자.
짜증을 억누르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분노를 품고, 공격성을 숨기고, 무리하게 상황을 바꾸려고 애쓰거나, 심지어 복수를 꿈꿀지 모른다. 이런 반응은 하나같이 문제를 키울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괜찮다고 말해보라. ‘괜찮아’라는 이 간단한 말은 그저 괜찮은 마음에 이르는 여정일지라도 성가시기 짝이 없는 우리 마음의 법석을 가라앉혀줄 것이다.
3
Lucy님의 인생책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