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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 (오늘의 행복을 찾아 도시에서 시골로 ‘나’ 옮겨심기)의 표지 이미지

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

리틀타네 (신가영)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나는 이 찬사받는 삶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자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모두의 응원을 받는 데 익숙해진 지 오래건만, 교복을 입는 나이가 되자 일제히 내게 냉정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아무거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시기가 와버린 것이다. 내가 잘하던 것들, 칭찬받던 것들, 좋아하던 것들은 진로와 연결되지 않으면 더 이상 응원받지 못했다.
"이거 대입에 도움 되니? 나중에 밥 벌어먹고 살 수는 있고?"
경제적 효용을 검증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고작 열네살 남짓한 나이에 벌써 집중해야 할 일과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때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행복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주 슬럼프에 빠진다. 그건 아마 우리가 위만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낄 때,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다고 느낄 때, 내가 먼저 나를 평가하기 시작할 때 좋아하는 일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하찮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려고 누력한다. 세상은 1퍼센트의 특별한 사람들과 99퍼센트의 평범한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는 걸. 1퍼센트의 사람들이 세상이 갈 방향을 정한다면, 그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건 99퍼센트의 사람들이라고.
우린 꼭 무엇인가가 되지 않아도,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일 수 있다.
완벽하거나 특별하거나 독보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나만의 세계에서 나만의 일을 하며 나만의 속도로 성장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분명 인생의 끝에는 어딘가 도달해 있지 않을까? 먼저 인생을 살아낸 세상의 다른 모든 이들처럼 말이다.

그틀의 눈에는 내가 아직도 철없는 아이 같은 걸까. 남들의 오지랖을 감내해야 하는 건 청소년기로 끝인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나이를 먹어도 그들의 잔소리는 끝날 줄을 몰랐다.
어리둥절했다. 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내 인생의 컨설턴트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인지? 그들은 늘 지금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조언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지금 한창나이인데 시골에 있으면 어떡해!"
"얼른 지금이라도 서울에서 직장 구해야지. 더 늦으면 그것도 못 해."
사람들은 내가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선 지금이 적기라고 했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선 시기상조라고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잔소리의 범위가 점점 넓어져갔다. 모두들 나도 모르는 내 인생의 스케줄러를 갖고 있는 걸까? 지금 꼭 해야 한다고 국가가 지정한 일들이 있는 걸까? 나이를 먹는 것도 서러운데, 잔소리에 눈칫밥까지 먹어야 한다는 것이 억울했다. 내 인생 드라마를 전개해나가는 데 주변 사람들을 꼭 설득해야 할 이유를 몰랐다. 그들에게 나라는 드라마는 그다지 즐겨 보는 프로그램조차 아닐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시청자 게시판을 닫기로 했다. 무소의 뿔처럼 기존의 기획의도를 밀고 나가는 드라마 작가마냥. 내 인생에 참견하는 무수한 이들에게 그저 댓글 하나를 달아주기로 했다.
"관심 있게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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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는 다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물학적인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이 세계와 다른 어딘가로 가 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들이 이곳에 돌아와 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포근해질까. 유령이라도 좋으니 이 식탁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준다면.
이뤄질 리가 없는 바람이 처량한 정적을 잠시나마 달래 줬지만, 그 바람은 이내 통한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건강했을적에 어째서 그 고마움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언젠가 영원한 이별이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어째서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까. 자신만을 남기고 모두가 떠나 버린, 견디기 힘든 이 현실 역시 가족을 소홀히 여긴 업보인 것 같았다.

"1년 내내 특종을 잡아내느냐 빼앗기느냐 소동을 벌이다 보니 그림을 그릴 여유 따윈 없었지."
"사회부 기자는 새해 첫날에만 쉰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응. 그조차 못 쉬는 해도 있었지."
요시무라가 동정하며 신음을 흘렸다.
"취직하고 30년이 흐르고 보니 화가가 아니라 기사쟁이로서 인생을 다 보냈더라."
마쓰다는 오로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만 소모해 왔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봤다.
"인생은 좀 더 재밌을 줄 알았어."

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황금가지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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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외 1명 지음
이나우스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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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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