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집은 현실 같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한데, 오히려 그 속에서 더 현실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브로콜리로 변한 남자친구의 손, 왜가리에게 배우는 공존의 자세,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꾸 웃게 되고, 또 멈춰 서게 된다.
비정상적 설정 속에서도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과 따뜻함은, 이 책이 단순한 유머나 기괴함을 넘어서게 만든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 속에서 오히려 삶의 본질적인 질문이 느껴졌다.
가볍지만 묵직하고, 유쾌하면서도 씁쓸하다.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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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3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다는 건 언젠가는 그걸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함께 얻는 것이었으므로.
P. 230
자기 보다 약한 사람에게 소리 지를 때, 그 고함의 절반은 자기 얼굴에 도로 가서 들러붙게 된다. 그것들이 얼굴의 곳곳마다 고이고 묵어서 꼭 저런 모양으로 남는 것이다.
P. 242
바깥에는 장대비가 계속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비를 휘몰고 다니는 거센 바람이 온 거리를 샅샅이 훑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문을 닫고 나자 어떤 빗방울도 집 안으로 들이치지 않았으므로 밖에 비가 오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지은이)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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