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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담은 그림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놓다 | 철학자가 그림으로 전하는 인생 읽기)의 표지 이미지

철학을 담은 그림

채운 지음
청림출판 펴냄

본래 예술이란 것이 수용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법이라지만 그림 만큼 해석이 다양한 장르도 흔치 않을 것이다. 표현에의 의지로 가득 찬 작가에 의해 평면의 캔버스 위에 응축되어 태어난 이 창작물은 그 특성 때문에라도 의도를 그대로 읽기가 쉽지 않다. 미술작품에 대해 아는 만큼 보인다거나 생각하는 만큼 볼 수 있다는 말이 따라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미술관에서 우르르 몰려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슨트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철학을 담은 그림>은 그림을 통해 독자들을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가는 도슨트처럼 보인다. 저자는 이 에세이에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등장시키며 그로부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관심가질 만한 이야기로 이어나간다.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로부터 현대인의 피로를 읽고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의 모습을 찾으며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핀 연못>으로부터 매 순간의 가치를 역설하는 식이다. 모두 4개의 장으로 이뤄진 책에는 20개가 넘는 작품들이 등장하는데 파울 클레처럼 저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에는 보다 깊이있는 해석과 설명이 이뤄지기도 한다. 파울 클레는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이 기묘한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인데 저자는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저 나름의 방식으로 정면돌파하는 그의 그림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미술에 특별히 조예가 깊지 않은 독자라도 쉽고 편하게 그림을 읽어주는 저자의 친절함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한 일상에 지쳐 당장이라도 휴식을 청하고 싶은 이라면 추천할 수 있는 썩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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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500루블일 때 불행했던 것이 5000루블일 때 즐거워지는 모습이 이반 일리치의 온 생애 동안 계속된다. 가만 보면 죄다 허상이다. 주변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가치 하나를 그의 삶 가운데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이 중한가. 책은 삶 가운데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묻도록 한다. 이반 일리치의 온 생애에 걸쳐 그 허망하고 괴로운 죽음을 목도한 뒤 독자는 그의 삶과 제 삶을 관통하는 진짜로 중한 것, 삶의 의미를 직시한다. 비교하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것이 존재하는지를, 온 생을 바쳐 살아낼 삶이란 것이 있는가를 묻도록 한다.

책은 끝내 그를 언어로 포착해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돌아보도록 이끈다. 이반 일리치가 그러했듯,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깨닫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일 테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창비 펴냄

1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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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정치는 폭망했다. 한때 비례대표 투표율 10%를 넘나든 진보정당, 또 교섭단체까지 바라봤던 정의당의 오늘은 국회의원 0명, 대선 득표율 0%대다. 노동, 생태, 복지, 소수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페미니즘 의제만 붙들고 있단 시각도 팽배하다.

저자는 비례위성정당 난립, 재정적 파탄, 청년여성의원에 쏟아진 비난, 코로나19로 조직이 멈춘 영향, 당대표의 성추행, 물질적 기반 해체로 인한 악순환 등을 하나씩 풀어간다. 이어 진보정당이 영향력을 키우기 어려운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짚는다.

실망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목이 얼마 없단 게 그렇다. 페미니즘이 다른 의제를 압도한 사실에 대해서도 문제 없단 입장을 견지한다.

납득할 수 없다. 세상이 정의당을 망치기 전에, 그 스스로 망쳤다고 여겨서다. 반성과 분석을 원했으나 변명과 항변 뿐. 정의당, 또 그 지지자와 먼 거리만을 확인한다.

조현익의 액션

조현익 지음
편않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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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은 불행한 아이의 방어기제다. 두터운 외피를 갑주처럼 두르는 일이다. 판단할 수 없는 걸 판단하고 감내할 수 없는 걸 감내하려 힘을 다해 쌓은 벽이다.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생장을 바꾸는 것이다. 성벽 바깥, 찬란한 미래를.

<새의 선물>은 성장담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다. 생엔 의미가 있고 사랑은 아름답다 말하는 이와 소설 속 진희는 대척점에 있다. 기대하지 않음으로 실망하지도 않는 것이 열둘, 또 서른여덟 진희의 생존법이다. 열둘 진희가 외가를 제 집으로 여길 때쯤 아버지는 찾아온다. 서른 여덟 진희는 여전히 사랑을 믿지 않는다. 구태여 처음과 끝에 불유쾌한 연애를 둔 것도 마찬가지. 성벽 바깥, 그러니까 생이란 늘 악의적이니.

나는 반대한다. 기대 않고 실망도 않기보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그 또한 확신할 수 없는 건 나 역시 생에는 이면이 있다고 믿고 있는 탓이다. 진희처럼.

새의 선물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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