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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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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서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다른 펴냄

저자는 집필에 앞서 19세기 포경산업 전반을 폭넓게 조사했을 뿐 아니라 태평양 섬들의 식인풍습과 굶주림의 생리학과 심리학, 항해술, 해양학, 향유고래의 생태학 등 이야기를 재구성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바운티호의 선상반란, 섀클턴 경이 조난상황에서 보인 리더십, 영화 <얼라이브>로 잘 알려진 안데스 산맥 조난자들의 사례, 수컷 향유고래의 행동양식 등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에식스호 조난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위해 들인 너새니얼 필브릭의 노력은 <백경>을 쓰기 위해 허먼 멜빌이 들인 노력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에식스호의 비극으로부터 독자들은 재난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교훈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책에는 리더십과 용기, 인내와 신뢰가 어떻게 인간성을 지키고 위기에 맞설 힘을 불러일으키는지가 잘 나타나 있으며 동시에 각종 역경이 어떻게 인간을 무너뜨려가는지도 설득력 있게 묘사되어 있다. 독자들은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가 마치 에식스호의 조난당한 선원이 된 듯 절실한 생존본능에 휩싸이기도, 무력감과 절망감에 젖어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어리석음과 오만, 아집이 어떻게 잘못된 선택을 이끌어내는지를 깨닫고 이를 경계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서스펜스로 가득한 논픽션 도서 <바다 한가운데서>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2023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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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정치는 폭망했다. 한때 비례대표 투표율 10%를 넘나든 진보정당, 또 교섭단체까지 바라봤던 정의당의 오늘은 국회의원 0명, 대선 득표율 0%대다. 노동, 생태, 복지, 소수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페미니즘 의제만 붙들고 있단 시각도 팽배하다.

저자는 비례위성정당 난립, 재정적 파탄, 청년여성의원에 쏟아진 비난, 코로나19로 조직이 멈춘 영향, 당대표의 성추행, 물질적 기반 해체로 인한 악순환 등을 하나씩 풀어간다. 이어 진보정당이 영향력을 키우기 어려운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짚는다.

실망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목이 얼마 없단 게 그렇다. 페미니즘이 다른 의제를 압도한 사실에 대해서도 문제 없단 입장을 견지한다.

납득할 수 없다. 세상이 정의당을 망치기 전에, 그 스스로 망쳤다고 여겨서다. 반성과 분석을 원했으나 변명과 항변 뿐. 정의당, 또 그 지지자와 먼 거리만을 확인한다.

조현익의 액션

조현익 지음
편않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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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은 불행한 아이의 방어기제다. 두터운 외피를 갑주처럼 두르는 일이다. 판단할 수 없는 걸 판단하고 감내할 수 없는 걸 감내하려 힘을 다해 쌓은 벽이다.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생장을 바꾸는 것이다. 성벽 바깥, 찬란한 미래를.

<새의 선물>은 성장담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다. 생엔 의미가 있고 사랑은 아름답다 말하는 이와 소설 속 진희는 대척점에 있다. 기대하지 않음으로 실망하지도 않는 것이 열둘, 또 서른여덟 진희의 생존법이다. 열둘 진희가 외가를 제 집으로 여길 때쯤 아버지는 찾아온다. 서른 여덟 진희는 여전히 사랑을 믿지 않는다. 구태여 처음과 끝에 불유쾌한 연애를 둔 것도 마찬가지. 성벽 바깥, 그러니까 생이란 늘 악의적이니.

나는 반대한다. 기대 않고 실망도 않기보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그 또한 확신할 수 없는 건 나 역시 생에는 이면이 있다고 믿고 있는 탓이다. 진희처럼.

새의 선물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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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 이은혜와 마주 앉은 일이 있다. 그는 영화제가 끝나면 곧 출국할 예정이라 했는데, 한국에선 결혼을 할 수가 없는 때문이라 했다. 동성 간 결혼을 한국은 막고, 미국은 허용한단 이야기. 그러고보면 몇년 전 그런 뉴스를 접한 것도 같았다.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 결정으로 50개 주 모두에서 합법화된 동성결혼 이야기를 나는 저기 케냐 북부 자연보호구역에서 기린 개체수가 급감한다는 사실처럼 여겼다. 그건 내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테니까. 그러나 가까운 이들마저, 존중하고 존경하는 이들까지도 동성애에 혐오를 감추지 않으니 나는 이것이 더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혐오가 인간을 잠식하는 비결이 무지와 무관심, 쫄보근성에 있단 걸 알기에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레즈비언도 산부인과도 관심 없는 내게 이 또한 사람과 병원의 이야기란 걸 알게 해줬다. 여기까지.

레즈비언의 산부인과

이은해 지음
이프북스 펴냄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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