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 팔로우
권력의 종말 (다른 세상의 시작)의 표지 이미지

권력의 종말

모이제스 나임 지음
책읽는수요일 펴냄

읽었어요
<포린 폴리시>의 편집장으로 유명한 모이제스 나임의 저서 <권력의 종말>은 권력이 더욱 강화된다는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그는 책에서 미시권력의 출현과 함께 권력이 크기와 규모의 족쇄에서 풀려나올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양적증가혁명, 이동혁명, 의식혁명'을 이야기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양적증가혁명이란 인류가 과거에 비교해 전반적으로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고 필수품도 더 잘 제공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더 풍족한 삶을 살 때, 그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는 게 양적증가혁명이 가져오는 변화의 핵심이다. 이동혁명이란 인종, 종교, 직업에 따른 이주의 증가, 사상, 자본, 신념의 전파 등이 과거보다 훨씬 쉽게 이루어지고 이로부터 포박된 수용자가 소멸하게 된 현상을 가리킨다. 의식혁명은 앞의 두 가지 변화와 연계된 개념으로 선진국 뿐 아니라 개발 도상국과 후진국의 시민들도 점차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 등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모이제스 나임에 따르면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이같은 혁명적 변화는 기존 권력을 공고히 하던 장벽을 무력화하고 구멍을 뚫으며 침식시킨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불법이민이나 밀무역을 막지 못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마약유입을 저지하지 못하는 것, 가톨릭 교회 등 관습과 윤리적 의무에 호소하는 기존의 권력이 여러 부분에서 점차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예로 들며 이를 입증한다.

그는 과거엔 무시되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시권력micropower들이 이같은 혁명적 변화 속에서 각 분야를 지배했던 거대권력, 대규모 관료조직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고립시키는 경우가 잦아질 것이라 예측한다. 미시권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득권 세력을 지치게 하고 활동을 방해하고 기반을 무너뜨려 권력의 붕괴를 촉진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권력이 규모와 무관해지면서 권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했던 거대한 관료조직이 무의미해지는 현상은 이제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게 그의 일관된 인식이다.

저자는 세계적인 중국전문가 밍신 페이의 말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명료하게 표현한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들은 지나간 호시절을 공공연히 이야기해요. 그때는 전임자들이 수많은 블로거, 해커, 국적을 초월한 범죄, 부패한 지방 관리, 해마다 18만 건씩 민중 항의를 조직하는 사회운동가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시절이죠. 과거에는 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이 나타나면, 그들을 처리하려고 정치 지도자들이 더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어요. 오늘날 지도자들도 권력은 있지만 수십 년 전만큼 강하지는 않지요. 이 사람들의 권력은 꾸준히 약해지고 있어요."
0

김성호님의 다른 게시물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연봉 3500루블일 때 불행했던 것이 5000루블일 때 즐거워지는 모습이 이반 일리치의 온 생애 동안 계속된다. 가만 보면 죄다 허상이다. 주변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가치 하나를 그의 삶 가운데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이 중한가. 책은 삶 가운데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묻도록 한다. 이반 일리치의 온 생애에 걸쳐 그 허망하고 괴로운 죽음을 목도한 뒤 독자는 그의 삶과 제 삶을 관통하는 진짜로 중한 것, 삶의 의미를 직시한다. 비교하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것이 존재하는지를, 온 생을 바쳐 살아낼 삶이란 것이 있는가를 묻도록 한다.

책은 끝내 그를 언어로 포착해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돌아보도록 이끈다. 이반 일리치가 그러했듯,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깨닫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위대한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일 테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창비 펴냄

1일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한국 진보정치는 폭망했다. 한때 비례대표 투표율 10%를 넘나든 진보정당, 또 교섭단체까지 바라봤던 정의당의 오늘은 국회의원 0명, 대선 득표율 0%대다. 노동, 생태, 복지, 소수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페미니즘 의제만 붙들고 있단 시각도 팽배하다.

저자는 비례위성정당 난립, 재정적 파탄, 청년여성의원에 쏟아진 비난, 코로나19로 조직이 멈춘 영향, 당대표의 성추행, 물질적 기반 해체로 인한 악순환 등을 하나씩 풀어간다. 이어 진보정당이 영향력을 키우기 어려운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짚는다.

실망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목이 얼마 없단 게 그렇다. 페미니즘이 다른 의제를 압도한 사실에 대해서도 문제 없단 입장을 견지한다.

납득할 수 없다. 세상이 정의당을 망치기 전에, 그 스스로 망쳤다고 여겨서다. 반성과 분석을 원했으나 변명과 항변 뿐. 정의당, 또 그 지지자와 먼 거리만을 확인한다.

조현익의 액션

조현익 지음
편않 펴냄

1개월 전
0
김성호님의 프로필 이미지

김성호

@goldstarsky

조숙은 불행한 아이의 방어기제다. 두터운 외피를 갑주처럼 두르는 일이다. 판단할 수 없는 걸 판단하고 감내할 수 없는 걸 감내하려 힘을 다해 쌓은 벽이다.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생장을 바꾸는 것이다. 성벽 바깥, 찬란한 미래를.

<새의 선물>은 성장담이 아니다. 차라리 그 반대다. 생엔 의미가 있고 사랑은 아름답다 말하는 이와 소설 속 진희는 대척점에 있다. 기대하지 않음으로 실망하지도 않는 것이 열둘, 또 서른여덟 진희의 생존법이다. 열둘 진희가 외가를 제 집으로 여길 때쯤 아버지는 찾아온다. 서른 여덟 진희는 여전히 사랑을 믿지 않는다. 구태여 처음과 끝에 불유쾌한 연애를 둔 것도 마찬가지. 성벽 바깥, 그러니까 생이란 늘 악의적이니.

나는 반대한다. 기대 않고 실망도 않기보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그 또한 확신할 수 없는 건 나 역시 생에는 이면이 있다고 믿고 있는 탓이다. 진희처럼.

새의 선물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1개월 전
0

김성호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