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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옥중서간)의 표지 이미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

담장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던 간절한 사유들. 합당하지 않은 권력의 횡포에 감옥 안에서 보내야만 했던 그 길고 긴 세월을 오직 생각을 깊이 하는데 쓰겠다 다짐하였던 그의 마음자세. 깊은 통찰과 여유있는 마음으로 옥중의 삶을 관조하며 스스로를 조금씩 깊게 하였던 그 고운 사색의 시간들.

그러나 결코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부모며 형제며 친구며. 그를 사랑하는,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담 밖에 놔둔채 수십번의 여름과 수십번의 겨울을 온전히 홀로 견뎌내야 했던 수감생활의 무게는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려우니까.

문득 한학과 서도에 조예가 있는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을 그의 성장과정이 궁금해진다. 문체에서 느껴지는 고아한 선비같은 인상이 그의 문체뿐 아니라 사유의 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거라 생각하기에 그의 성장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의 글은 대부분 담박하고 깊은 사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일부에선 실천없는 지식에 대한 비판이 때로 실천이 따르지 못한 지식에 대한 과도한 평가절하로 흐르는듯한 인상을 받았고 옛것, 자연, 노동에 대한 막연한 옹호로써 젊음과 도시, 그리고 문명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데서는 약간의 고리타분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채 검열된 짧은 서간만을 보고 짐작하는 인상이란 너무도 부정확한 것이어서, 내가 그의 글에 대해 받은 부정적 인상은 고작 단편적인 느낌 정도에 불과하다.

더불어 검열을 거쳐야 했던 편지문의 특성상 민감한 주제에 대한 날 선 사유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그저 삶에 대한 관조와 통찰만이 남아있었다는 것이 신영복이란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깊은 사유의 편린들, 그 가운데 빛나는 통찰들은 신영복이란 인간이 어떤 고뇌를 가지고 살아갔던 존재였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어 어느정도 만족스러웠다.

[세상이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퇴화한 집오리의 한유(閑遊)보다는 무익조(無翼鳥)의 비상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휠씬 훌륭한 자세이다.]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실천의 중시, 다른 수많은 작가의 글에서도 보여졌던 '행하는 것이 행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라는 확신. 어느정도는 이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굳이 '어째서 당신들은 세상이 실천의 대상이라 확신하는 것입니까'라고 묻고 싶었던 것은 왜일까. 누구도 이에 대해 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기독교에 대한 사유에서 보여졌던 근원적인 물음이 이에 대해서도 보여졌다면 더욱 만족스러웠을텐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2023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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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이 거세된 공정에 집착하고, 경쟁에 따른 성과에 호의적이며, 페미니즘에 발작적으로 대응하는 집단이 이대남의 정체성으로 제시된다. 그 원인으로 지목된 건 '남성 마이너리티', 사상 최초로 젊은 남성 집단이 스스로를 차별받는 약자로 여긴다는 진단이다. 살피자니 과연 그럴 법도 하단 생각이 절로 드는 가운데, 이대남을 한심하게 여기는 저자들의 오만한 태도와 해석이 은근히 비어져나와 마음을 불편케 한다.

생각할수록 이대남의 피해의식을 마땅한 결과라 여기게 된다. 그러나 어느 세대라고 스스로가 사회적 과실을 누렸다며 감격해할까. 전쟁을 겪은 이들과 전후세대, 독재와 투쟁한 586, 지난 시대 불평등을 감내해온 여성들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짐을 지고서 버텨온 것이 바로 이 세상이다. 사회적 자산은 유한하고 성장동력은 꺾여버린 암울한 환경 가운데 시시한 문제에 분노하는 여유없는 세대의 등장이 꼭 한국의 미래인 것만 같아 한숨만 난다.

20대 남자

정한울 외 1명 지음
시사IN북 펴냄

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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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의 이십대는 우울과 슬픔과 분노로 가득했다고 전한다. 심리상담을 받고 병원을 다니기도 했으나 꾸준하진 않았다. 서른이 넘고 삶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야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안정감이며 무덤덤한 마음을 얻는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가사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창작 활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 창작자의 삶이라 해도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 삶 가운데서 곡이 태어나는 것이다.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는 곡이.

책은 매 장마다 애리의 노래가 태어난 배경을 적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르러 곡의 가사와 함께 곡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QR코드까지 삽입해 놓았다. 말하자면 곡과 에세이의 기묘한 결합이다.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닌 음악가의 글인지라 조금 정돈되지 않고 감성에 따라 마구 나아가는 듯한 인상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특정한 곡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만큼, 읽는 이는 음악과 삶이 관계를 맺는 방식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겠다.

수많은 내가 다른 곳에 살고

애리 지음
편않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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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감상을 절로 일으키는 그림체 위로 들어찬 글은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세계, 그 순환을 비춘다. 그러나 순환과 재생에서 그치지도 않는다. 생명이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닿음,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지식으로는 닿지 못한 연결성을 내보인다.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세 히데코의 책은 그림책이 그저 십분이면 후딱 넘기게 되는 애들 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만든다. 짧게 보아도 오래도록 생각나는 장면, 그런 순간을 선사한다. 삶에 쉼표를 찍고 물음표를 남긴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와 물음표, 그것이 그림책의 역할이 아닐까. 사색이 귀해진 시대, 여백을 채우는 온갖 콘텐츠들 사이로 그림책을 찾는 이들이 어떠한 마음인지를 알겠다. 이따금 그림책을 펼칠 기회를 가져봐도 좋겠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김소연 지음
천개의바람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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