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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열린책들 펴냄

결코 적은 기대가 아니었음에도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다. 해학소설 중에선 고금을 통털어 세계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사망했다는 이유로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셰익스피어와 비교되고 또 평가절하되었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그러나 나는 오늘부로 셰익스피어에 앞서 세르반테스의 자리를 마련해두려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감성을 꿰뚫는 섬세한 표현력과 비범한 필력이야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생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진지한 자세와 여러 에피소드의 묶음으로 주제를 구현하는 구성력, 그리고 이야기를 균형있게 풀어나가는 솜씨와 간간이 터져나오는 위트에 있어서 셰익스피어는 결코 세르반테스의 맞수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꼭 그가 이야기 속에서 적어놓은 것처럼 그의 작품은 그 엄청난 화형식으로부터 피난되어 마땅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독서일기>에서 소개했던 '기사도 서적의 화형식'부분이 너무도 인상적이었고 야콥 부르크하르트도 그의 저서에서 이 작품을 최고의 소설 중 한 편으로 꼽은 바 있었기에 기꺼이 찾아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막상 찾고 보니 900p에 가까운 분량이 조금은 압박스러웠고 중반부까지는 글도 쉬이 읽혀지지 않아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극찬을 하는 이유가 있을 듯하여 참고 읽었는데, 과연 중반을 넘어서며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무척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을 통해 단순한 풍자와 해학의 골계미를 넘어 생의 가치추구에 대한 실존적 고민과 여러 대비되는 덕목들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소설 속에 구현해 놓고 있다. 소설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돈 키호테의 광적인 기사도 여정 자체로써 이미 왜곡된 인간이성이 가져오는 파국, 즉 비현실적 이상주의의 최후를 그려내고 있으며, 나아가 돈 키호테의 여정과 연계되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삶 속에서 추구하게 되는 여러 가치들에 대해 재치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기사도 책의 화형식이나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의 몇번 쯤의 투닥거림, 그리고 여관에서의 이야기 등이 대단히 압도적이어서 무척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나는 일부 비평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돈 키호테라는 캐릭터 자체에게서 실존적 의의를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돈 키호테가 일으키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가치를 찾아볼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인간과 인간이 삶 속에서 추구해 마땅한 덕목들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나는 돈 키호테의 캐릭터 자체에서는 거의 마비에 가깝게 왜곡된 이성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소통 불가능의 바보만을 찾을 수 있었지만,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의 캐릭터를 넘어 그가 일으키는 소동극을 통해 이 책의 주제의식을 구현하려 했으며 그렇기에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시각을 단지 주인공의 캐릭터에 한정하지 않고 전체 구조를 통해 보아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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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이 거세된 공정에 집착하고, 경쟁에 따른 성과에 호의적이며, 페미니즘에 발작적으로 대응하는 집단이 이대남의 정체성으로 제시된다. 그 원인으로 지목된 건 '남성 마이너리티', 사상 최초로 젊은 남성 집단이 스스로를 차별받는 약자로 여긴다는 진단이다. 살피자니 과연 그럴 법도 하단 생각이 절로 드는 가운데, 이대남을 한심하게 여기는 저자들의 오만한 태도와 해석이 은근히 비어져나와 마음을 불편케 한다.

생각할수록 이대남의 피해의식을 마땅한 결과라 여기게 된다. 그러나 어느 세대라고 스스로가 사회적 과실을 누렸다며 감격해할까. 전쟁을 겪은 이들과 전후세대, 독재와 투쟁한 586, 지난 시대 불평등을 감내해온 여성들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짐을 지고서 버텨온 것이 바로 이 세상이다. 사회적 자산은 유한하고 성장동력은 꺾여버린 암울한 환경 가운데 시시한 문제에 분노하는 여유없는 세대의 등장이 꼭 한국의 미래인 것만 같아 한숨만 난다.

20대 남자

정한울 외 1명 지음
시사IN북 펴냄

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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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의 이십대는 우울과 슬픔과 분노로 가득했다고 전한다. 심리상담을 받고 병원을 다니기도 했으나 꾸준하진 않았다. 서른이 넘고 삶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야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안정감이며 무덤덤한 마음을 얻는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가사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창작 활동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 창작자의 삶이라 해도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 삶 가운데서 곡이 태어나는 것이다.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는 곡이.

책은 매 장마다 애리의 노래가 태어난 배경을 적는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이르러 곡의 가사와 함께 곡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QR코드까지 삽입해 놓았다. 말하자면 곡과 에세이의 기묘한 결합이다.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닌 음악가의 글인지라 조금 정돈되지 않고 감성에 따라 마구 나아가는 듯한 인상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특정한 곡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만큼, 읽는 이는 음악과 삶이 관계를 맺는 방식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겠다.

수많은 내가 다른 곳에 살고

애리 지음
편않 펴냄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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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감상을 절로 일으키는 그림체 위로 들어찬 글은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세계, 그 순환을 비춘다. 그러나 순환과 재생에서 그치지도 않는다. 생명이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닿음,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지식으로는 닿지 못한 연결성을 내보인다.

이야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세 히데코의 책은 그림책이 그저 십분이면 후딱 넘기게 되는 애들 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만든다. 짧게 보아도 오래도록 생각나는 장면, 그런 순간을 선사한다. 삶에 쉼표를 찍고 물음표를 남긴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와 물음표, 그것이 그림책의 역할이 아닐까. 사색이 귀해진 시대, 여백을 채우는 온갖 콘텐츠들 사이로 그림책을 찾는 이들이 어떠한 마음인지를 알겠다. 이따금 그림책을 펼칠 기회를 가져봐도 좋겠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김소연 지음
천개의바람 펴냄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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