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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습관 (세계적인 석학 33인의 삶을 바꿔놓은 단 하나의 습관)의 표지 이미지

고수의 습관

허병민 지음
열림원 펴냄

발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에게 독서는 훌륭한 선택지다. 나보다 먼저 삶을 경험한 선배로부터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지식을 넘어 삶을 바꾸는 동력까지 얻을 수 있을 테니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늘도 서점가를 점령한 수많은 책들이 주장하는 것도 이와 얼마 다르지 않다.

삼십대 초반의 겨울, 때 아닌 슬럼프에 허덕이던 내게도 누군가의 조언이 간절했다. 당면한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는 작은 단서라도 잡고 싶은 시절이었다. 그때 한 권 책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고수는 자기만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고 주장하던 바로 이 책이다. 한국 독자를 위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각계 전문가 서른세 명이 쓴 글을 받아 엮었다고 했다. 이름하야 <고수의 습관>. 서른셋 가운데 하나쯤은 내게 작은 영감이라도 줄지 모른다는 기대가 이 책을 집도록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본래 타인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다르므로, 그의 해답이 나의 해답과 다를 것이므로 자기계발서를 신뢰하지 않았던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책이 전한 습관 가운데 몇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내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몇은 작지만 큰 변화를 나의 일상 가운데 만들어가고 있다.

책 이야기로 들어가자. <고수의 습관>이 특별한 점은 외국에서 유명한 자기계발서를 그대로 번역해 들여온 책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출판과 기획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허병민 씨가 예술·과학·경제·경영 등의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세계적 명사들과 접촉해 제 삶을 바꾼 습관을 소개한 글을 받아 엮었다.

필진은 확고한 팬층을 가진 스포츠기고가 데이비드 엡스타인, 세계적인 PR회사 케첨의 CEO 롭 플라어티, 전 유엔 사무차장 샤시 타루르 등 소위 아는 사람은 알 만한 이들로 꾸려졌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톱스타’는 없다지만 믿을 만한 기획자가 직접 선별한 만큼, 새로운 명사의 글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도리어 더 매력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실린 글은 각기 서너 페이지에서 열 페이지 사이의 짧은 에세이로, 저마다 스스로를 성공으로 이끈 습관을 꺼내어 소개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서로 같은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끼리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전혀 다른 습관과 가치관을 내보이기도 하는데 이를 함께 읽다보면 같은 문제를 겪어낸 고수들과 한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고수의 습관>에서 가장 중요한 첫 장은 데이비드 엡스타인의 차지가 됐다. 워낙 맛깔나게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대학시절까지 육상선수로 활약했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일류 기고가이자 집필가, 강연가가 된 오늘까지 이어진 습관 하나를 이끌어 낸다. 엡스타인의 습관에 이름을 달자면 ‘한 명을 위해 경기하기’ 정도가 될까. 대학시절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을 찾은 단 한 명, 아버지를 위해 달렸던 그날의 경험에서 깨달음을 얻어 그는 자신만의 습관을 만들어 삶의 순간순간에 적용해왔다고 털어놓는다. 이를테면 강연장에서 어느 한 명의 청중을 지정해 모든 말을 그에게 한다는 상상을 하고, 글을 쓸 때면 어느 하나의 독자를 특정해 쓴다는 것이다.

단 한 명을 위한 것이 모두에게 가장 이로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이 작은 습관이 그의 삶을 정확히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습관의 이로움을 믿고 오늘도 그 습관을 적용하는 한 사람의 선택이 내게는 제법 매력적으로 느껴졌단 점을 적을 뿐이다.

데이비드 엡스타인에 이어 시각미술가 제임스 크록은 제 안의 점쟁이를 몰아내라는 팁을 독자에게 전한다. 새로운 시도를 위험한 시도로 여기게끔 하는 부정적 점쟁이들이 모두 안에 들어있지만 실제 결과는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요지다. 그가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든 사례, 그러니까 월터 홉스와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의 신화적 성공기는 독자에게 일종의 짜릿함까지 맛보게 한다.

고졸 학력의 한 남자가 군에 입대하지만 기초훈련도 이겨내지 못하고 최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아내의 예술사 학위를 도용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술관을 시작한다. 그는 첫 전시회 기회를 예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쇼윈도 디자이너에게 제공한다. 디자이너는 예순일곱살의 늙은 체스 애호가에게 야채수프들을 그린 그림을 전시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지 않은 체스 애호가는 철물점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전시하려 한다.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사태의 연속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당신이 비관적인 점쟁이의 예언에 휘둘린다면 분명히 참담한 결과, 실패자들이 연 최악의 전시회를 예측할 것이다. 그런데 화랑을 시작한 미술상은 월터 홉스, 수프 통조림을 전시한 예술가는 앤디 워홀, 체스 애호가는 마르셀 뒤샹이었다. 현재 수십억 달러의 예술 시장에서 거의 20퍼센트가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거래하고 있고, 마르셀 뒤샹은 팝아트와 개념예술의 창시자로 여겨지며 지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가 되었다. 월터 홉스는 그 후로도 20세기를 아름답게 수놓은 많은 전시회를 기획함으로써 빛나는 경력을 쌓아갔다. -본문 38p

모두 안에 살고 있는 점쟁이가 크록의 이야기처럼 훌륭한 도전을 저지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작은 가능성을 보고 분투하는 어떤 젊음들에게 흔치 않은 용기를 전할 수 있는 사례일 수 있진 않을까 싶다.

작가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솅크와 루 메리노프의 조언을 함께 읽는 것도 재미있다. 이들은 서로 상반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접점이 있는 습관을 제시하는데 글을 포함해 무엇이든 창작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에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듯하다.

데이비드 솅크는 ‘작품의 질이 전부다’라 이름 붙은 글에서 완전함을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래 글이 실리는 매체나 원고료에 따라 글에 들어가는 노력을 다르게 설정했던 자신이 모든 글이 완전해질 때까지 노력을 퍼붓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이와 같은 습관이 더 높은 성공으로 자신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책꽂이에 머무는 시간이나 원고료와 상관없이, 글이 끝나는 때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질이었다. (...) 젊은 작가들이 나에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책 한 권, 글이나 기사 한 편을 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게 적당하냐는 것이다. 적당한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굳이 대답하자면, 걸리는 시간만큼 걸린다. 마셜과 운명적인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책 출간 제안서를 작성하는 데만 꼬박 1년을 보냈고, 한 푼의 강의료도 없는 테드 강연을 준비하는 데 6개월을 보냈다. 또 적절한 표현을 사용해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 한 단락을 몇 주 동안 다듬은 적도 많았다. -본문 93p

반면 루 메리노프는 ‘위대한 것은 작은 것들의 합이다’라는 글에서 데이비드 솅크와 확연히 다른 습관을 제시한다. 그는 모든 위대함은 작게 시작한 것이므로 설사 불완전해 보일지라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게 시작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언젠가는 위대함에 이를 수 있으리란 게 그의 주장이다. 완전해지기 전엔 발표하지 않는 작가와 거듭 만들어내다 보면 위대함에 이를 수 있으리란 작가의 사이에서 독자들은 흥미로운 고민에 빠질 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노자의 조언대로, ‘작게’ 시작해야 한다. 당면한 과제의 논점을 한 문장으로 공들여 작성해보는 것이다. (...) 글쓰기를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로 무척 유용하다. 리포트보다 더 ‘큰’ 과제에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책을 쓰는 작업은 엄청난 과제로 여겨질 수 있다. 특히 처음에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희비극적 역할을 맡은 말단 공무원 조제프 그랑의 모습을 통해 이를 표현했다. 그랑은 ‘위대한’ 소설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첫 문장을 넘기지 못한다. 첫 문장이 완벽해질 때까지 쓰고 또 쓰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본문 104p

책에 실린 서른세 가지 습관 가운데 일부는 당장 우리의 삶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많은 것들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서야 조금씩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어려운 것들이다. 중요한 건 이들이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믿는 습관들로부터 현재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들에 대한 힌트를 얻어내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오늘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가. 때로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고, 오늘의 통념에 반하며, 가끔은 저희끼리도 대립되는 수많은 습관들로부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감을 얻는다면, 이 책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2024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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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 이은혜와 마주 앉은 일이 있다. 그는 영화제가 끝나면 곧 출국할 예정이라 했는데, 한국에선 결혼을 할 수가 없는 때문이라 했다. 동성 간 결혼을 한국은 막고, 미국은 허용한단 이야기. 그러고보면 몇년 전 그런 뉴스를 접한 것도 같았다.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 결정으로 50개 주 모두에서 합법화된 동성결혼 이야기를 나는 저기 케냐 북부 자연보호구역에서 기린 개체수가 급감한다는 사실처럼 여겼다. 그건 내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테니까. 그러나 가까운 이들마저, 존중하고 존경하는 이들까지도 동성애에 혐오를 감추지 않으니 나는 이것이 더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혐오가 인간을 잠식하는 비결이 무지와 무관심, 쫄보근성에 있단 걸 알기에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레즈비언도 산부인과도 관심 없는 내게 이 또한 사람과 병원의 이야기란 걸 알게 해줬다. 여기까지.

레즈비언의 산부인과

이은해 지음
이프북스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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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의 일기장을 구했대도 이따위로 써놨다면 고이 덮으리. 나의 사랑이 부족하다 힐난한다면 그 사랑마저 반납하리. 책장을 건너 사랑을 이루기엔 내 인내심이 턱없이 박약하니.

당대 사교계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를 들춘다. 문제는 독자로 하여금 그 의미없음을 모자란 인물의 관점에 갇혀 동행토록 한다는 것. 전권에 걸쳐 독자는 이 덜떨어진 놈이 후회하는 일생을 그 시야에 갇힌 채 함께 걸어야 한다. 오로지 가석방 없는 12년 형을 받고 비좁은 감방 2인실에 경멸하는 인간과 함께 갇혔다 만기출소한 이만이 나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나이 먹어 시든 여자와 타고 나길 못난 여자를 향한, 또 멍청해 재미 없는 남자와 성공 못해 돈 없는 남자에 대한 모욕적 묘사가 많다. 찾아가 한 따까리 하고 싶은데 일방적으로 들어야 한다. 심지어 품위 있는 척 쓰는 꼴은 참아내질 못하겠다.

드디어 디뎠다. 문학의 바닥을.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1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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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간 9편의 영화를 내놓고 은퇴한 벨라 타르다. 타르의 세계를 구성한 작품들은 슬로우시네마의 거장이란 평가와 함께 다른 누구와도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했다. <사탄탱고>는 <토리노의 말>과 함께 타르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며, 그 지루함과 난해함에 있어 악명이 자자한 작품. 러닝타임 내내 졸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네필임이 검증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실린 글은 벨라 타르의 특징들, 이를테면 롱 쇼트의 적극적 활용, 시간과 날씨를 그대로 반영하는 선택, 관객의 의식을 프레임 바깥으로 확장케 하는 연출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영화를 찍는다는 행위가 벨라 타르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케 하고, 그가 그를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확인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벨라 타르가 영화예술계, 나아가 관객에게 어떤 가치를 갖는지를 사유하게끔 이끈다. 한국 유일 벨라 타르, 또 <사탄 탱고>의 입문서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사탄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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