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헤드님의 프로필 이미지

더블헤드

@deobeulhedeu

+ 팔로우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연작 소설)의 표지 이미지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쓰다 펴냄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

다음 책을 고르는 시간은 흥미로웠다. 토지를 읽었던 그 긴 시간 동안 그새를 못 참고 사버린 책이 한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다 읽고 싶어서 산 책이지만 우선 외국 소설을 제외했다. 최근 작품들도 손에 가지 않았다. 토지의 여운을 한 번에 깨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다음 읽을 책의 선택은 그전에 읽은 책의 영향을 받는다. 전 여친이 다음 연애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언젠가 동인천의 헌책방에서 발견한 원미동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한 제목이었다. 그런데 작가가 양귀자? 작가님의 #희망 #나는소망한다내게금지된것을 읽었고 특히 #모순 은 내가 읽어본 장편 소설 중 최고로 뽑는 책이기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오! 역시는 역시다.

원미동이란 지명, 많이 들어보았는데. 성북동 비둘기가 생각난 걸까? 왠지 강북 어딘가 동네이겠거니 했다. 앵? 아, 여기가 부천이었구나. 인천에 사는 내게 참 가까운 동네. 원미동. 그래서 오가며 본 표지판에서 분명히 봤을 것 같은 동네 이름이 낯설지 않았나 보다.

아차 싶었다. 난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하소설을 좋아할 만큼 친숙해진 캐릭터와 쉽게 이별하는 것이 싫은데 단편은 익숙해질만하면 끝나버리니. 꼭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기승전이 대단하다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스토리 때문에 완성도 높은 단편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 물론, #칵테일러브좀비 라는 책의 #오버랩나이프나이프 라는 단편은 기가 막혔지만.

원미동 사람들은 단편이 아니었다. #러브액츄얼리 처럼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모든 이야기가 원미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등장인물들 역시 서로 서로 얽혀있는 내용이다. 거기에 한 겨울에서 시작해 계절이 바뀌며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지기에 읽기 편했다. 책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네. 양귀자 연작소설집.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 좋았던 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 속 서로 이어지는 플롯, 진진이의 화법, 거기에 90년대라는 정감 가는 배경이었다. 원미동 사람들은 그보다 더 과거인 80년대. 내가 꼬마 어린이였던 시절의 부천 원미동이라는, 도시라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한 동네. 또 다들 뭔가 부족함이 있는 서민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삶은 솔직했고 정감 있고 애틋하기까지 하다.

덕분에 원미동을 가봤다. 소설 속 감흥을 간직한 채 가본 원미동은 내겐 그리 멀지 않은 아름다운 동네였다. 80년대와는 많이 바뀌었겠지만 조마루 감자탕 본점의 뼈해장국은 맛있었다. 원미산에서 만난 개냥이가 반가웠고 원미구청 앞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가 소설 속 배경으로 잘 찾아왔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러다 소설 읽을 때 마다 그 배경 다 찾아다니겠어…ㅋㅋ
2024년 1월 12일
1

더블헤드님의 다른 게시물

더블헤드님의 프로필 이미지

더블헤드

@deobeulhedeu

“목소리요. 작가의 목소리. 문장이 다소 서툴러도 좋은 목소리를 가진 작가의 글을 읽으면 힘이 느껴지잖아요. 좋은 문장이 중요한 건 이 목소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문장이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주거든요.” P148
⠀⠀⠀⠀⠀⠀⠀
⠀⠀⠀⠀⠀⠀⠀
서점이 있고 북토크가 있고 글쓰기 강의가 있다. 로맨스도 있다. 어쩌면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 주변의 뻔한 이야기. 소설 작가가 쓸 만한 평범한 이야기. 그래서 슴슴한 평냉 같은 소설이지만 그 평범함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
#북스타그램 #책 #독서
#bookstargram #bookreview #book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클레이하우스 펴냄

1개월 전
0
더블헤드님의 프로필 이미지

더블헤드

@deobeulhedeu

  • 더블헤드님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게시물 이미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클레이하우스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0
더블헤드님의 프로필 이미지

더블헤드

@deobeulhedeu

잠에서 깨어나면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동작은, 잠결에 일어서 있는 그의 페니스를 쥐고 마치 나뭇가지에라도 매달린 듯 그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이걸 쥐고 있는 한 이 세상에서 방황할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지금 와서 이 문장을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 말고는, 이 남자의 페니스를 손으로 꼭 감싸쥐는 것 말고는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지금 그는 다른 여자의 침대에 있다. 아마 그녀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뻗어서 그의 페니스를 쥘지도 모른다. 여러 달 동안 그 손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그 손이 내 손인 것만 같았다. p10
⠀⠀⠀⠀⠀⠀⠀
⠀⠀⠀⠀⠀⠀⠀
자극적인 첫 문단에 동공이 커지고서야 경주의 작은 도서관에서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띠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처음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누군가 한 명은 매해 받았을) 노벨문학상 수상작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기간제 베프가 이 작가의 책을 권하여 이 작가의 책을 세 권이나 샀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놈의 노벨문학상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한강 작가의 어둡고 우울한 전개도, 아니 에르노의 이 끈적하고 적나라한 (글자 그대로의) ‘집착’은 마치 처음 맛 본 홍어와 과메기같이 기분 나쁜 거부감이 든다. 다만 집착이라는 소재 하나로 장편 소설 전부를 다이내믹하게 이끌어 가 끝을 내버리는 확장성은 작가의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감탄하게 된다.
⠀⠀⠀⠀⠀⠀⠀
⠀⠀⠀⠀⠀⠀⠀
#북스타그램 #책 #독서
#bookstargram #bookreview #book

집착

아니 에르노 (지은이), 정혜용 (옮긴이)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0

더블헤드님의 게시물이 더 궁금하다면?

게시물 더보기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