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적 진화의 극치! 오픈소스
WEIRD 심리와 그에 따른 문화적 진화가 극단으로 효율화 되어 있는 곳은 바로 오픈소스(open source)라고 생각한다. 오픈소스는 말 그대로 공개된 프로그래밍 코드(소스)이다.
1993년 이전에는 운영체제 같은 프로그램들은 모두 특정 회사나 대학교 연구실에서 개발됐다. 그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완성된 결과물만 받아서 사용했지, 프로그램의 코드를 직접 볼 수 없었다. 마치 우리가 냉장고를 구매할 때 냉장고 설계도는 받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그램 코드들은 각 공동체 내에서만 수정됐으며 그렇기에 발전 속도가 더뎠다. 대표적으로 운영체제 UNIX 가 있다. 상용으로 팔리고 있었고, 돈을 받고 팔아야 하기에 당연히 설계도를 공개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3년 핀란드 청년 리누스 토발즈에 의해 LINUX 라는 운영체제가 세상에 나온다. LINUX 는 UNIX 와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설계도를 누구나 볼 수 있고 수정도 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그리고 당연히 무료였다. 전 세계의 수백 수천 명의 개발자들이 달려들어 코드를 함께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기성 개발자들은 의심했다. 본디 운영체제 개발이란 소수의 전문가가 코드를 꼼꼼하게 잘 설계해야 하는데, 지리적으로도 떨어진 수천명의 난잡한 기여로 고품질의 운영체제를 만들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품질의 운영체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소수의 천재들이 30년 동안 만들어왔던 UNIX 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수천 명의 개발자가 수년 동안 만든 LINUX 에게 밀렸다. 이 수천 명 중에는 아마추어와 학생들도 많았을 것이다. 집단지성이 극도로 발휘된 것이다. 지금도 여러분이 사용하는 웹과 앱의 서버는 상당수 LINUX 에서 돌아가고 있다. LINUX 가 바로 오픈소스의 첫 성공 사례이며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LINUX의 성공 이후로 오픈소스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인터넷에 코드를 공개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사실 오픈소스 위에 IT 기술이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이 알려진 프로그래밍 언어들과 인프라 기술은 대부분 오픈소스이다. 그리고 그 기술들로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Python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오픈소스인데 나는 이 언어의 코드를 바꾸자는 제안을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오픈소스는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코드 변경을 할 수 있다. 내가 제안한 것이 python 관리자들에게 승인된다면, 나는 전 세계 프로그램의 기반이 되는 기술에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16세기에 유럽 편지공화국에서 서로 생각에 대한 기여를 하고 명망을 얻었던 것 처럼. 오픈소스에 기여한 개발자도 명망을 얻는다.
2005년에 코드 버전 관리 도구 Git 그리고 2008년에는 Git 호스팅 서비스 GitHub이 나오면서 오픈소스는 문화적 진화의 효율을 극단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코드의 모든 변경 사항이 기록되어 코드 한줄 한줄의 히스토리를 전부 추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이전에도 코드 버전 관리 도구는 있었지만 git 만큼 좋지 않았다). 누가 언제 어디를 수정 했는지도 알 수 있게 됐다. 과거에는 문화적 진화에서 누가 어떻게 얼마나 기여했는지 판단하는 게 항상 문제였다. 기여도의 경계선이 굉장히 모호했고, 누군가 기여를 가로챌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픈소스는 누가 언제 무엇을 기여했는지 데이터로 남기 때문에 너무도 명료해진다. 탈취당할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기여할 수 있게 됐다. 한마디로 내가 기여한 만큼의 명망이 보장된다는 말이고. 이것은 재능 기여를 더욱 유도한다.
저자 조지프 헨릭은 문화적 진화의 중요한 요인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정신을 몰두하는 인구가 많을수록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LINUX 의 사례로 설명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세대를 뛰어넘는 개인들의 상호연결이 더 확대될수록 문화적 진화가 빨라진다고 한다. 이것도 오픈소스에서 볼 수 있다. 자신 이전에 코드를 수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처음 생성될 때 부터의 모든 변경 사항을 다 볼 수 있다. 이전 세대의 입과 행동을 타고 내려와 알게 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정말 과거 코드에 가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2008년부터 시작된 오픈소스라면 내가 22년 전에 코드를 수정한 사람의 기록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중간 전달자 없이). 모든 히스토리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문화적 진화를 가속화한다.
오픈소스는 내가 아는 한 가장 WEIRD 하게 느껴진다. 통계를 알지 못하지만 전 세계 오픈소스 활동 분포를 조사한다면, 아마 WEIRD 심리가 강한 사회가 더 활동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처음 오픈소스를 시작한 LINUX의 아버지 리누스 토발즈도 북유럽 사람이었다. 결국 오픈소스 문화라는 씨앗도 WEIRD 라는 토양이 있었기에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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