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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1 (정지아 장편소설)의 표지 이미지

빨치산의 딸 1

정지아 지음
필맥 펴냄

읽었어요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가 쓴 빨치산 이야기. 곡성군당을 맡아 지도했던 유혁운을 중심으로 한 1부, 지리산의 이름난 다른 빨치산 이야기들을 엮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2권의 1/3쯤까지 이어진다.

먼저 1부 소개.
시간의 흐름대로 차곡차곡 기록된 그 이야기들이 처음엔 사건 일지를 읽는 것 같아 몰입이 힘들었지만 볼수록 유혁운이라는 인물에게 빠져들고 애정이 갔다.

6.25 발발 이후 인민군이 광주까지 내려오자 사람들은 언제 준비했는지 국도변을 붉은 인공기로 가득 채우며 열렬히 환영했다. 국군은 후퇴하면서 보도연맹 사람들과 형무소 정치범 등 7백여 명을 사살하고 갔다. 확실히 이승만의 질서는 폭압적이었다.
아무래도 지주 아닌 보통의 사람들은 다같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준다는 인민군을 지지한 게 사실인가보다. 말썽 일으키는 싸움꾼을 보면 "공산당 만들어야 사람 된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하였다.

그랬던 빨치산은 다시 국군이 점령하자 식량 보급 문제 때문에, 그리고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고 교육을 받기도 해서 점차 민심을 잃는다. 휴전 이후 북측은 남로당을 나몰라라 해 버리고 국군의 집중 공세까지 더해져 54년 마지막 빨치산이 체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혁운에겐 빨치산 활동이 그로서는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없던 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에겐 분명히 옳은 일이었다.

'그렇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는 어디에도 없다. 역사에도 남아 있지 않고 더러는 자신의 호적에조차 남아있지 않다. 후손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아예 살다 간 흔적조차 지워버린 것이다.'
- 그렇게 한 후손마저도 살기 위해 어쩔수 없었던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도 옳은 일이었을 것이다.

형무소에서 전향서를 쓰고 나온 사람들에겐 일거수일투족 감시가 붙었다. 마지막까지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은 천여 명 정도 남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아버지는 위장전향한 빨치산이었다. 농담을 잘하기도 했던 아버지는 언제나 인민을 위해 산다고 하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죽허면'이란 말로 다 퉁쳤다.

'묻혀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

이제 역사 속의 그들을 온전히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단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그나마 이런 이야기를 양지에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 다행이다. 작가가 이 책을 처음 출간했을 때보다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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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saebyeokbit

경제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쉽게 쓰려고 최선을 다한 책 같다.
모든 장은 요리의 재료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건 요리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 본격적으로 경제 이야기가 나온다.
경제에 관심이 있으나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웠던 분들이라면 이 책은 끝까지 볼 수 있으실 듯. 각 장마다 최소 여러 페이지는 음식 이야기로 훌훌 넘어가니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경제학 도서가 있었던가.

장하준은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쉬운 책을 썼을까?
목적은 대중에게 경제를 알리려고.
대중이? 경제를? 왜?
그야 투표를 해서 정치인을 선출하는 사람들이 대중이기 때문이다. 글의 앞머리에서 정책의 중요성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모른다. 정책은 어떤 주의나 도덕, 사상(청교도 윤리, 유교 등)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현재 보수 진영이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실제로 과거에 남미와 아프리카의 개도국들을 수렁으로 빠뜨렸고, 미국과 영국조차 무역 초기엔 강한 보호무역을 펼쳤다. 아시아는 나름 대처를 잘 해서 피해를 크게 입지는 않았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보호 무역은 필수다.
그외 인프라도 중요하고 미래 먹거리도 중요하다.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어떤 정책을 중시해야 할지까지 다양한 주제가 음식 이야기로 시작한다.

음식에 대한 지식도 넓히고 경제 지식도 넓히는 여러 모로 이로운 책이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장하준 지음
부키 펴냄

읽었어요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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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saebyeokbit

집을 주요 소재 또는 배경으로 한 여덟 편의 단편집인데 평범한 듯한 삶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송곳 같은 예리함으로 독자의 마음을 찌르기도 하고 뜻밖의 상황에서 불꽃 같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 중 첫 번째 소설인 <미애>는 《2022년 젋은작가상 수상집》에서 만났던 작품이다.
주인공인 미애는 이혼하고 6세 딸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다. 아파트 임대동에 거주하면서 독서모임에 나가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해져서 종종 딸을 맡아 달아는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좋은 가치의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선우라는 이름의 모임원은 정말 친절하고 미애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어느날 미애가 딸을 맡겼을 때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자기 딸이 미애의 딸과 함께 사라지는 일이 나자 그날 이후로 미애와 거리를 둔다. 미애는 선우 말고는 딸을 맡길 곳이 없었기도 하고 선우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으므로 오해를 풀고자 노력하지만 선우는 자기에게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조금도 미안해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기 딸이 미애의 딸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다.

내가 미애였다면 어찌 했을까. 절박한 마음에 끝까지 두드려 보았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치사하다 생각하고 더이상 미련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했을 거라고 장담을 못하겠다. 그런데 내가 선우였다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선우의 모습에서 내 벌거벗은 모습을 들킨 것 같아 화끈거렸다. 좋은 사람이고자 하지만 막상 닥치면 편견이라는 안락하고 쉬운 방패 뒤에 숨어버리고 말았으리라.

그래도 미애의 딸은 선우의 딸에게 카드를 쓰자며 엄마 손을 잡아 이끌며 소설이 끝난다. 선우가 부디 그 카드를 받고 마음을 풀어 주면 좋겠다.

마지막 소설이면서 책의 제목인 <축복을 비는 마음>엔 입주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이 주인공이다. 낮은 곳에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트집을 잡아 일당을 깎는 사람들, 힘든 일을 피하는 얌체 팀원들, 청소 약물로 인한 알 수 없는 통증들, 항의하면 깐깐한 직원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일을 배당해 주지 않는 업체 사장들 등등 이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언급된다.
이삿짐이 드나들 때마다 이 분들의 손길이 필요한데, 좋은 사람들도 있으나 어떤 사람들은 무례하다. 집을 엉망으로 해 놓고 간 집을 청소할 때의 마음을 인선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뭐. 깨끗하게 청소해 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 주는 거죠."
이렇게 맘씨 좋은 인선과 짝을 이루는 경옥은 또 반대로 부당한 경우에 따질 것을 따지는 사람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바로 그 인물. 소설의 결말에선 이 둘이 같이 청소 업체를 차려보자고 의기투합한다.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두 가지 방식 - 불합리에 항의하기, 미워하지 않기 -이 나라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조화를 이룬다면 어떤 궂은 일에도 굴하지 않고 버텨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외 소설들에서는 재개발을 둘러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목화맨션>),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갈등(<이남 터미널>),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 중개자로서의 모습(<산무동320-1번지>)가족과 동료와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등하는 모습(<자전거와 세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집에 대한 가능성(<사랑히는 미래>)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복도를 걷는 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지는 것이 다만 눈에 보이는 저 낡은 주택들만은 아닐 거라고 말이다.' <목화맨션>

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읽었어요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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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

@saebyeokbit

표지는 동화 같은데 책장이 넘어갈수록 무섭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인간도 동물이다'라는 인식에서 바라보면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나, 현재 우리가 가축을 식용하기 위해 도살장에서 살처분하는 거나 별 다를 게 없었다.

사랑과 관용, 연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해왔으면서, 전장연(전국장애인연합회)의 시위를 오가며 봐 왔으면서, 많은 비거니즘을 마주쳤으면서 여지껏 난 너무 무지했구나. 무지한 것조차 모르고 지내왔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부끄러웠다.

종이 신문이나 포털 사이트에 뜨는 인터넷 매체에서 접한 전장연 소식들은 알맹이를 뺀 껍질 같은 뉴스들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멈추고 오체투지하며 시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알았다. 그리고 최근 이슈가 된 탈시설 문제도 왜 중요한지 알았다. 우리 비장애인들은 우리의 자유를 위해 정말 많은 장애인들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 채 살아왔다. 이들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는 궁벽한 장소에 위치한 감옥이나 다름없는 시설에서 자유를 뺏긴 채 살아왔다. 누구에게나 일상을 누릴 기본권이 있는데 우리는 이들을 안 보이는 곳에 묶어 두고 잊어버린 건 아닐까.

선진국에 비하면 국내의 장애인 처우는 너무나 열악한 편이라 갈 길이 멀다. 장애인이 권리를 요구하며 세상으로 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 조금씩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며 '요구를 하나 들어 주니 다른 것을 요구한다'며 파렴치하다고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종의 동물들이 인간을 위해 품종개량되어가는 이야기나 컨베이어벨트에 묶여 기계적으로 도축되는 이야기들도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진실이다. 글쓴이와 모든 면에서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으니 꼭 한 번 읽기를 권한다.

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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