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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정보라 지음
래빗홀 펴냄
읽었어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정보라 작가는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빌어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이전에 읽었던 《저주토끼》와 《그녀를 보았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는데 시야를 더 넓혀서 바닷속까지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문어,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가 있었다.
모두 여섯 편의 연작 소설이 실려 있는데 첫 번째 소설인 <문어>에서는 대학에서 '고등교육법(강사법) 개정안' 문제로 시위를 하던 위원장님을 방문했다가 복도에서 마주친 거대 문어 때문에 말도 안되는 일에 휩쓸리게 된다. 일이 일어나는 모든 장면이 블랙 코메디.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이상하다가 웃다가 화가 났다가 또 웃게 된다.
가장 좋았던 한 편을 꼽자면 네 번째 소설 <개복치>로, 그 중 가장 밝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곱디곱게 자란 11세 소년이고 아버지와 잠수함 여행을 떠났다가 신기한 모험(고생?)을 하게 된다. 모험 뒤에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가 좋았다.
마지막 소설은 <고래>. 포항 구룡포 계단과 용 아홉 마리 조각상이 있는 장소가 중요하게 나오는데 몇 해 전 좋은 기억으로 다녀왔기에 내겐 더 특별했다. 반면 이 좋은 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너무나 무거운 후쿠시마 원전 폐수 해양 투기를 주제로 한다. 특히 작가가 정권을 직접적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장들이 있어서 얼마나 이 일에 분노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처음 바다에 오염수를 폐기하던 그날, 우린 얼마나 분노했었는지. 그런데 지금 우린 또 그 사실을 잊어가고 있다.
매번 크고작은 사건들을 일일이 기억하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잊지 말라고 종을 울려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계속해서 폐수를 몰래 내버리고 누군가는 화물을 과하게 실어나르다 사고를 낼 테고 누군가는 공사비를 빼돌려 건물과 다리가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우리 삶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망가져버릴지도 모르니까. 정보라 작가는 모두를 위해 경종을 울려 주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투쟁.
'바다는 우리의 것. 우리가 지켜야 한다.'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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