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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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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지음
문학동네 펴냄

모든 사람에게 흥미롭지 않은 혼자만의 세계
2024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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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기웃거리는 마음이 필요해


나는 정치적 색깔이 강한 책을 경계한다. 내가 정치적인 주장에 휘말려 편협한 마음을 가질까 두려웠다. 조금 겁이 난 마음으로 읽은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는 정치적 주장이 강한 소설이 아니었다. 정치적 주장을 펼치지만, 편협한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했다. 자칫하면 과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덜어내 매력적인 장편소설이었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매력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소설과 현실의 연결이다. 소설 속 이야기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논리를 통해 강조한다. 자식을 낳았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부여되는 책임의 차이가 있다. "성씨도 친권도 남자들이 자식을 인정한 후에 마치 지참금처럼 그들에게 바치는 예우 같은 것이구나 하고 혼자 읊조렸다.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자식은 아버지에게는 선택적으로, 어머니에게는 의무적으로 귀속된다. (p.83)" 작가는 자식을 낳았을 때 생기는 여성의 "의무적인" 책임을 발견한다. 소설은 억지로 주장을 주입시키지 않고,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지적한다. 소설 속 세계와 바깥 세계를 연결하며 과한 정치적 주장이 되지 않도록 한다.

두 번째, 소설은 입체적인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한다. 알리나는 아이를 낳느라 여기저기 몸이 상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남편과 마를레네가 바람을 피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보모 마를레네의 몸매를 보면서 질투한다. 그리고 마를레네가 진심으로 이네스를 사랑하는지 의심한다. 그 의심은 흔히 불륜 치정물로 가는 전개처럼 보이지만, 소설은 흔들리지 않고 어머니와 아이를 지킨다. 남편은 아내의 의심을 사랑으로 감싸주며, 마를레네와도 이네스의 사랑으로 모여 가족이 된다.

즉,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는 공동체의 돌봄에 대해 말한다.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라우라가 니콜라스를, 마를레네가 이네스를 돌보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돌봄에는 그저 신경 쓰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라우라가 이웃 니콜라스에게 하는 듯 지금 우리 사회에는 기웃거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 마음은 "일어나야 할 일"을 피하지 않고 맞서게 해준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조금 더 사랑하도록 만든다.


*그밖에 라우라와 알리나의 우정, 이네스 가족을 비둘기 가족에게 비유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아쉬운 점: 후반부에서 라우라와 도리스의 관계가 우정에서 사랑으로 뻗어나가는 건 급발진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https://m.blog.naver.com/hj5544m/223976011410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과달루페 네텔 지음
바람북스 펴냄

1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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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편지로 키스하는 사람들

카톡과 음성은 쉽다. 간단한 메시지를 적은 뒤, 전송 버튼을 누른다.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어 음성을 낸다. 할 말은 쉽게 전할 수 있는 시대다. 다만, 이때 전한 마음은 오해받기 쉽다. 나는 카톡과 전화, 음성으로 싸워본 적 많지만, 편지로 싸워본 적은 없다.

왜 편지는 마음이 잘 상하지 않을까. 왜 편지는 더 진심처럼 느껴질까. 지금까지 못 했던 말을 하게 만들까.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김사월과 이훤이 나눈 편지를 담은 에세이다. 편지의 내용은 거창하지 않다. 요새 고민, 지금 편지를 쓰는 장소에 대한 말, 지금 하고 있는 일, 상대에게 배우는 점, 상대를 향한 질문으로 채워진다. 대단한 내용과 고백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고상하고 천박하게』가 다른 에세이보다 더 진심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편지의 속성 때문이다.

편지는 따뜻하고 느리다. 카톡과 음성보다 조금 더 생각하고 한 글자를 쓰도록 만든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야 하기에, 느리게 전달된다. (손 글씨라면 직접 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고상하고 천박하게』의 느리고 따뜻한 속성은 김사월과 이훤이 "주고받는" 언어에서 나온다. 혼자 내뱉는 말이 아니라, "주고받아야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김사월은 음악에 관해 슬픔을 팔아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가끔은 이 모든 게 가짜 같다고도 덧붙인다. 이에 이훤은 답장한다. 가장 중요한 걸 내어줬으니 슬픔을 팔아서 받은 것들로 행복해도 된다고. "그 노래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움찔했는지, 얼마나 많은 새 눈빛이 태어났는지 아니"라고 말하며 김사월이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편지는 서로를 감싸는 도구가 된다. 특히 앞서 언급한 부분에선 내가 김사월도 아닌데, 이훤의 말에 심히 감동했다.

또, 김사월과 훤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어떤 느낌을 받았냐는 대화를 나눈다.



훤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던 골격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뭐라고 해야 하지, 서로의 살점 일부를 배우고 뭔가 나눠 가지게 되는 느낌.


사월 되게 진짜 죄송한데요……. 되게 키스 같다고 생각해요.​



편지로 키스를 나눈다니. 이훤의 표현을 보면 김사월의 비유가 조금 더럽지만 찰떡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그들의 키스를 울고 웃으며 봤다. 마치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서로 좋아하는 걸 깨닫고 키스를 나누는 장면처럼. 둘이 우정을 나누는데 괜히 뿌듯했다.

그러나 책에서 편지의 형식을 끝까지 활용하지 않는다. 뒤로 갈수록 편지보다 각자 쓴 메모가 이어진다. 어떤 질문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답을 보여주기도 하고, 주제나 질문 없이 짧은 메모로 한 페이지를 채운다. 갑자기 편지의 형식에서 벗어나서 당황했다. 한 사람의 짧은 메모보다 두 사람이 호흡하는 언어가 더 매력적이어서 더 아쉽다.

블로그의 밑줄긋기를 읽으면 알아채겠지만, 김사월의 이훤의 말을 잔뜩 꾸몄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동네에서 꾸밈 3단계로 맞추고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담백한 감정을 기대한다면, 과한 언어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고상하고 천박하게』를 읽으면 누군가와 깊게 편지를 나누고픈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김사월과 이훤의 우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만큼은 카톡과 음성보다 편지로 마음을 전해야겠다. 키스까진 안 해도 더 느리게, 더 생각하며 전달하는 우정이 잘 상하지 않는 법이니까.

https://m.blog.naver.com/hj5544m/223980822171

고상하고 천박하게

김사월 외 1명 지음
열린책들 펴냄

1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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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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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

신이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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