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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지음
문학동네 펴냄

모든 사람에게 흥미롭지 않은 혼자만의 세계
2024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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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판권면을 열어봤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름을 읽었다.

내가 직접 책을 만들기 전까지 판권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예쁜 책 표지와 강렬한 제목, 믿을만한 출판사와 가득히 담은 저자의 이야기. 그게 책을 다 설명해준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게 책의 겉모습이라면, 『출판하는 마음』은 책의 속을 구석구석 탐색한다.

책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제목을 짓는 일이나 표지를 만드는 일보다 세세히 결정해야 하는 디테일들이었다. 책의 제목을 어디에 배치하고, 쪽수의 위치는 어디에 두고, 목차는 어떻게 나눠야 할지 등 책을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하나씩 결정하는 일 등 디테일한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하는 마음』은 디테일한 책의 속내를 잘 털어놓은 책이다.

『출판하는 마음』은 문학 편집자부터 북디자이너, 출판제작자, MD, 책방 주인, 1인 출판사 등 우리가 책을 고르고 읽을 때 숨겨진 조력자를 조명한다.

흔히 인터뷰집은 질문과 답변으로 반복된 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출판하는 마음』은 반복된 구조가 아닌, 은유 작가가 섬세한 표현력에 가미된 이야기로 편집해두었다. 어떤 질문에서 인터뷰이의 답변이 나왔느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터뷰이의 답변을 잘 들릴 수 있도록 하나의 스토리로 옮겨두었다. 솔직한 답변은 은유 작가의 언어를 거치지 않고, 큰따옴표로 처리해 인터뷰이의 말을 그대로 옮겨둔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집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가 없다. 인터뷰집은 질문에 따라, 답변을 따라 흐름이 쉽게 바뀐다. 아무리 주제가 있더라도 그 중심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출판하는 마음』은 "출판"에 단단히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흐름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박흥기는 야구 마니아다. 쉬는 날엔 아들딸과 함께 야구 관람을 가거나 사회인 야구팀 활동을 한다. 2008년에 출판단지 내 인쇄소, 제본소 직원들과 '제작자들'팀을 만들었다. 그의 포지션은 감독인데 투수 빼고 다 한다. 야구팀이 있는 몇몇 출판사와 시합을 할 때도 있다. 다음 주에도 게임이 있다고 말하는 눈빛에 설렘이 스친다."

야구 이야기는 출판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이를 엮어내는 은유 작가의 언어로 "출판이야기"라는 중심을 잡는다.

인터뷰집은 인터뷰어보다 인터뷰이에게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출판하는 마음』은 인터뷰이만큼이나 한 사람의 삶을 흥미롭게 담으려고 애썼을 인터뷰어에게 더 마음이 갔다.

출판하는 마음

은유 지음
제철소 펴냄

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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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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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하는 마음

은유 지음
제철소 펴냄

읽었어요
7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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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900408

"그들과 나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 머물고 있었다."


1년 전, A를 만났을 때 '저 모습이 진짜가 아닌 것 같아'라고 느낀 적 있다. 그때 나는 A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전화도 하고, 만나도 보고, 인터뷰까지 했던 적 있다. 그래서 A의 진짜 모습을 보았는가? 아니다. 진짜 모습은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어쩌면 A 자신조차도.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면 자주 "나는 나를 모르겠어"라는 말이 나온다. 답변 모두 기록해야 하는 일의 입장에서 애매한 말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대답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질문에 있어서 나를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용기는 마치 진짜처럼 느껴져서.

​우리는 서로를, 나를 다 안다고 착각한다. 내가 아는 나는 전부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진짜'는 진짜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일기에 쓰는 말이 다 진짜인가? 나를 꾸미고 정의내리고 쓰는 말들은 모두 진짜가 아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진짜라고 믿어온 것들"일 뿐이다. (드라마 <안나>의 유명한 문구,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유미의 행동 안에서 도덕과 외모로 운운하는 건 이 책 안에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다. 『친밀한 이방인』은 경찰이 유미의 범죄를 처벌하려는 내용도, 범죄의 허술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소설은 화자를 통해 유미의 행적을 쫓아가면서 지금까지 믿어온 것들이 진짜냐고 물음표를 던질 뿐이다. 나는 그 물음표만으로 읽을 이유가 충분했고, 충실히 이야기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었다.

내가 A의 진짜 삶을 알 수 없었듯, 인터뷰에 모르겠다고 답변을 하듯 나는 진짜 유미의 삶을 몰라도 될 것 같았다. 마침내 카페에서 서로의 삶을 모르는 것에 안도하는 화자처럼.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지음
문학동네 펴냄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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