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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
김사월 외 1명 지음
열린책들 펴냄
편지로 키스하는 사람들
카톡과 음성은 쉽다. 간단한 메시지를 적은 뒤, 전송 버튼을 누른다.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어 음성을 낸다. 할 말은 쉽게 전할 수 있는 시대다. 다만, 이때 전한 마음은 오해받기 쉽다. 나는 카톡과 전화, 음성으로 싸워본 적 많지만, 편지로 싸워본 적은 없다.
왜 편지는 마음이 잘 상하지 않을까. 왜 편지는 더 진심처럼 느껴질까. 지금까지 못 했던 말을 하게 만들까.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김사월과 이훤이 나눈 편지를 담은 에세이다. 편지의 내용은 거창하지 않다. 요새 고민, 지금 편지를 쓰는 장소에 대한 말, 지금 하고 있는 일, 상대에게 배우는 점, 상대를 향한 질문으로 채워진다. 대단한 내용과 고백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고상하고 천박하게』가 다른 에세이보다 더 진심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편지의 속성 때문이다.
편지는 따뜻하고 느리다. 카톡과 음성보다 조금 더 생각하고 한 글자를 쓰도록 만든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야 하기에, 느리게 전달된다. (손 글씨라면 직접 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고상하고 천박하게』의 느리고 따뜻한 속성은 김사월과 이훤이 "주고받는" 언어에서 나온다. 혼자 내뱉는 말이 아니라, "주고받아야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김사월은 음악에 관해 슬픔을 팔아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가끔은 이 모든 게 가짜 같다고도 덧붙인다. 이에 이훤은 답장한다. 가장 중요한 걸 내어줬으니 슬픔을 팔아서 받은 것들로 행복해도 된다고. "그 노래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움찔했는지, 얼마나 많은 새 눈빛이 태어났는지 아니"라고 말하며 김사월이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편지는 서로를 감싸는 도구가 된다. 특히 앞서 언급한 부분에선 내가 김사월도 아닌데, 이훤의 말에 심히 감동했다.
또, 김사월과 훤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어떤 느낌을 받았냐는 대화를 나눈다.
훤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던 골격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뭐라고 해야 하지, 서로의 살점 일부를 배우고 뭔가 나눠 가지게 되는 느낌.
사월 되게 진짜 죄송한데요……. 되게 키스 같다고 생각해요.
편지로 키스를 나눈다니. 이훤의 표현을 보면 김사월의 비유가 조금 더럽지만 찰떡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그들의 키스를 울고 웃으며 봤다. 마치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서로 좋아하는 걸 깨닫고 키스를 나누는 장면처럼. 둘이 우정을 나누는데 괜히 뿌듯했다.
그러나 책에서 편지의 형식을 끝까지 활용하지 않는다. 뒤로 갈수록 편지보다 각자 쓴 메모가 이어진다. 어떤 질문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답을 보여주기도 하고, 주제나 질문 없이 짧은 메모로 한 페이지를 채운다. 갑자기 편지의 형식에서 벗어나서 당황했다. 한 사람의 짧은 메모보다 두 사람이 호흡하는 언어가 더 매력적이어서 더 아쉽다.
블로그의 밑줄긋기를 읽으면 알아채겠지만, 김사월의 이훤의 말을 잔뜩 꾸몄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동네에서 꾸밈 3단계로 맞추고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담백한 감정을 기대한다면, 과한 언어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고상하고 천박하게』를 읽으면 누군가와 깊게 편지를 나누고픈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김사월과 이훤의 우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만큼은 카톡과 음성보다 편지로 마음을 전해야겠다. 키스까진 안 해도 더 느리게, 더 생각하며 전달하는 우정이 잘 상하지 않는 법이니까.
https://m.blog.naver.com/hj5544m/22398082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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